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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4,489 추천수0
파일첨부 아가입문.hwp [760]  

아가 입문

 

 

1. 아가의 문제점

 

여덟 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책은 구약성서에서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들 중의 하나를 안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아가가 구약성서 안에서 갖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이 사랑의 시(또는 연애시집)는 도대체 구약성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 아가는 매우 관능적인 표현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느님이나 어떤 신앙 조목, 또는 사랑의 윤리적 의미라든가 사랑의 결과로서의 출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오로지 육체적인 아름다움에만 전념한다. 그 안에는 타민족들의 연애시에 가까운 내용과 형태뿐만이 아니라, 이교(異敎)와 신화의 잔재들도 들어 있다. 게다가 해석을 위한 명백한 열쇠는 하나도 제공되지 않는다. 이 책은 누구에 의하여 언제 쓰여졌는가? 독립적인 노래들의 모음인가, 아니면 하나의 노래인가? 민속 노래인가 아니면 서정시인가? 또 무엇 때문에 쓰여졌는가? 만일 아가가 단순한 실수로 인해서 성서 속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후대에 유다인들의 과월절 축일 전례 때 불리워졌을 정도로 경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는가? (아가는 기원후 시대에 유다인들의 주요 축제 때 봉헌되었던 다섯 개의 ‘축제 두루마리’ 곧 축제 오경 가운데 하나이다.)

 

 

2. 구조

 

이 책의 구조는 절과 주제 및 이미지와 상황이 되풀이되고, 연결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현대적 의미의 문학적 구성이 결핍되어 있어 규명해 내기가 어렵다. 어떤 이들은 혼인 잔치 때 쓰이는 시가들의 모음일 따름이고, 거기에다 반드시 결혼 노래만은 아닌 사랑의 노래들을 단순하게 배열한 것이라 본다. 다른 이들은 몇 개의 긴 개별 시가들 사이의 일정한 순서와 질서를 구별해 낸다. 또 다른 이들은 아가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연계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예컨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행동의 전개라든가, 아니면 남녀 사이에 전개되는 사랑의 경과를 구성해 내는 것은 본문의 내용과 순서에 대한 과감한 수정과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확실한 바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아가의 많은 노래들도 전부 단일한 주제 곧 관능적 사랑을 다룬다는 사실이다.

 

 

3. 저자와 시대

 

아가의 저술 시기를 솔로몬 시대 또는 그 조금 후인 고대 왕정 시대로까지 올리려는 시도가 없지 않지만, 여기에 쓰인 언어와 문체는 매우 후대의 것으로 보여 페르샤 시대(기원전 5세기) 또는 헬레니즘 시대(3세기)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곧바로, 문학의 발전 경과로는 반드시 설명될 수 없는 바로서, 낱말과 표현의 선택에 있어서 자주 드러나는 의고주의(擬古主義)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설사 후대에 저술되었다 하더라도 아가는 고대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아울러서 전원 또는 도시, 북부 이스라엘 또는 남부 유다에 속하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으로 잠언, 코헬렛<전도서>, 그리고 지혜서와 같이 아가도 1열왕 5,12와 아가 자체의 1,1; 3,7.9.11; 8,11.12에 솔로몬의 이름이 나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저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솔로몬이 저자가 아님은 분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아가 1장의 경우에서 솔로몬은 총칭적인 명칭으로서 쓰였거나, 또는 잠언과 코헬렛<전도서>과 지혜서에서와 같이 문학 양식의 일종인 픽션으로 쓰여졌을 뿐이고, 3장의 경우는 옛날의 결혼 축가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가 있으며, 8장은 이상적인 임금은 역사의 솔로몬이 아니라는 아가의 근본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아가는 부분적으로는 유배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노래들, 그러나 최소한 그 주제에 따라 크게 ‘한 작품’을 이루는 노래들을 유배 시대 이후에 편집하여 편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4. 경전화와 해석

 

선입관 없이 읽었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세속적이고 관능적으로 여겨지는 아가가 어떠한 근거와 까닭으로 경전에 속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 확실하게 알 길이 없다. 외적으로는 당시 오래된 솔로몬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용상으로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전거가 없기 때문에, 아가가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였다고 우유(寓喩; 알레고리)적으로 해석된 때문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여하간 이 책의 원 뜻이 이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시가는 본디 혼인 잔치 때 불렸는가? 기원후 1세기 말에 아키바 랍비가 이를 반대한 바도 있지만, 연회장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관습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유다인들의 과월절 전례 때의 사용은 기원후 5세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다. 그 원뜻이야 어떠했던간에,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온 아가는 거룩한 노래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노래인가? 달리 표현하여, 이 책은 구약의 경전으로서 제자리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해서 들어온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아가의 해석은 구약성서의 그 어떠한 책에 대한 해석보다도 변화가 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설명들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네 가지를 다시 우유적 해석이냐 사실적 해석이냐에 따라 둘씩 구분지을 수 있다.

 

가. ‘우유적 해석’은 경우에 따라서는 적어도 기원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방법으로서,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당혹감을 불러일으켰던 이 관능적 연가(戀歌)의 이해에 대한 걸림돌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해석은 아가에 나오는 젊은 남녀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또는 신비주의적으로 이해한다. 역사적 이해의 경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제시된다. 첫째 가능성은 역사상 일정 기간에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과 다른 민족 사이의 만남이다. 두번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중 유배에서 귀환했을 때와 같이 특정한 시대나 구원의 역사 전체를 통한 야훼 하느님과 당신의 선택된 백성 사이의 관계, 또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대변되어 온) 그리스도와 당신 교회 사이의 관계이다. 

 

신비주의적 이해 역시 두 가지 길을 제공한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그리스도와 인류 사이의 집단적 관계와(이것이 신비주의적 이해를 앞의 역사적 해석 방법과 연결시키는 구실을 한다),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와 인간의 영혼, 더 나아가서는 성령과 마리아 또는 그리스도와 마리아, 또는 솔로몬과 지혜를 결부시키는 개별적 관계이다.

 

나. ‘제의적(祭儀的)-신화적 해석’은 우유법(알레고리)의 또 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이 해석은 아가를 수메르`-`아카디아의 종교적 신화의 배경에서 이해한다. 이 종교에서는 겨울에 모든 자연이 죽은 듯이 보였다가 봄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종교-신화적으로 이해하였다. 겨울은 탐무즈라는 신이 죽어감을 뜻한다. 죽어 사라진 이 신을 그의 애인인 이쉬타르라는 여신이 찾아나선다. 온갖 난관을 거치면서 저승까지 가서 애인을 찾고 결국 둘은 결혼하게 된다. (신들 사이의 이 특별한 결혼을 그리스말로 된 전문 용어로 히에로스 가모스라 하는데 성혼<聖婚>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이 결합의 결과가 봄 곧 자연의 소생이다. 이는 비단 메소포타미아만이 아니라 에집트를 포함한 고대 중동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신화로서, 지방에 따라 두 신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 신화는 제의를 통하여 재현된다. 곧 임금과 여자 대제관 또는 남녀 제관에 의하여 구현되는데, 이들의 ‘성혼’은 신들의 결합을 상징하고 새해에 자연의 풍요다산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성적(性的) 결합이 더 이상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니지 않고,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일이 되어 아가의 관능이 지니는 걸림돌이 제거된다고 하겠다. 가나안에서는 이쉬타르와 탐무즈 대신 아세라 여신과 바알 남신 사이의 관계로 변형되는데, 이 제의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므나쎄 임금 시대 유다가 아시리아에 예속되던 8세기에 예루살렘에 정식으로 도입되었다고 추측된다(2열왕 21 참조). 이러한 이교의 풍요다산을 비는 제의가 후대에 와서, 마치 농경 사회의 축제였던 누룩 없는 빵의 축제가 과월절의 역사적 신앙을 표현하기 위하여 재해석되었듯이, 다소간의 수정을 거쳐 이스라엘의 신앙에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다. ‘극적 해석’은 장면과 상황의 변화 그리고 제삼자들을 포함한 연인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창(對唱)을 근거로 해서 이 책을 일종의 연애극(戀愛劇)으로 이해하고, 예컨대 솔로몬과 수넴 출신 처녀 아비삭(7,1과 각주 참조) 또는 여타의 가상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이 해석은 아가의 성적(性的)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배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감으로써 걸림돌이라고 염려되는 바를 피해간다. 외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성적 묘사를 피하기 위하여 이 책을 구태여 신비주의적이나 우유법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가가 성(性) 그 자체보다는 사랑에의 충실과 성실성에 더 관심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을 솔직담백한 사랑의 묘사로 이해한다. 더 나아가서, 둘이 아니라 세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곧 자신을 강탈하려는 솔로몬에도 불구하고 남자 애인에게 충실한 여인의 드라마를 보여줌으로써, 관능적 욕구에 대하여 일정한 불신의 눈길이 던져지게 한다. 이렇게 일종의 대표적인 유형들을 등장시키는 유형론적(類型論的) 형태 아래, 이 해석은 우유법의 일정한 요소들을 취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리스도교적-우유법적 해석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오리게네스(253/254년 서거)는 아가를,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인간의 영혼과 하느님 말씀 사이의 사랑의 종교적 신비로 이해하는데, 구체적으로 아가를 배역에 따라 할당하고 연극 감독과 같은 지시 사항을 덧붙이기도 한다.

 

라. ‘자의적(字義的) 해석’ 역시,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기원후 1세기 말에 연회장에서 아가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노래하였다는 에피소드가 말해 주듯, 적어도 민속적인 형태 아래 부분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이에 반대한 아키바 랍비는 이 책을 우유법적으로 이해하였다). 현대적 방법으로서의 ‘자의적 해석’은 현재 아랍인들의 연애 또는 결혼 노래에서 출발하여, 아가를 쓰여진 그대로 현실적인 사랑 노래들의 모음으로 이해한다. 아가는 이와 유사한 점들을 드러내는 에집트의 세속적 연가 또는 아랍의 민속가 모음처럼 사람들이 보존해 온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또는 지난 세기 말까지도 요르단 동부 지방과 레바논에서 볼 수 있었던 시리아인들의 혼인 잔치 예식(결혼식이 끝난 후 일주일 동안 신랑 신부는 임금과 왕비와 같이 행세하고 축하객들과 동네 사람들도 그들을 그렇게 대해 준다) 순서에 따라 배열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예컨대 솔로몬과 파라오의 딸 사이의 결혼을 정당화하기 위한, 세속적인 작품일 뿐이라고 여기고(이 견해의 창시자는 이미 ‘안티오키아 학파’의 지도적 학자였던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 주교<350-428>라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외설적 노래가 잘못해서 경전에 속하게 되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다른 이들은 아가를 순진무구한 민간 시가로 받아들이고, 솔직한 사랑의 윤리적 의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유형론 또는 예형론(豫型論)이나 극적 해석을 통하여 위에서 언급한 입장들을 자유롭게 보태기도 한다.

 

마. 어느 한 가지만 정당하고 다른 것들은 틀리다고 제거해 버릴 수 없는 이상의 여러 요소들이 달리 결합되어서 다섯번째 해석 방법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네번째 설을 이어받아, 아가는 인간적 연가인데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결혼으로 서술하는 예언자들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예언자들의 언어 대신 ‘성혼’의 묘사에 쓰이는 언어의 영향을 강조한다.

 

이상의 네 가지 주요 학설들의 두 그룹은 아래와 같이 접목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째와 둘째 학설에서 아가의 일차적 의미는 종교적이고 우유적인데, 이는 이 책이 단순하게 성적(性的)이고 세속적인 의미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사실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셋째와 넷째 학설에 있어서 아가의 일차적 의미는 성적이며 세속적인데, 이는 우유법의 도움을 피하고자 하는 데서 오는 결과이다. 그러나 종교와 세속의 영역을 분리시켜 종교적 연가와 세속적 연가가 서로 독립적으로 생성 발전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둘 다 하나의 공통된 시가(詩歌) 전통에서 유래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되었던 것이다. 

 

구약성서 전체를 볼 때, 아가의 중심을 이루는 ‘신부(新婦)의 주제(모티프)’는 대충 두 개의 영역에서 익히 사용되는 바이다. 첫째, 예언자들은 야훼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관계를 일종의 결혼으로 묘사한다(예컨대 이사 54,4-10; 62,4-5; 예레 2,2; 에제 16,8; 호세 2 등). 둘째, 지혜문학서에서 ‘지혜’는 여인-신부로 서술된다(잠언 4,6-8; 7,4-5; 집회 15,1-8 등 참조).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아가를 우유적으로 이해함이 전혀 근거가 없는 작업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유적으로 아가가 말하고 있는 모든 사항들을 만족할 만큼 설명할 수가 없음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자의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음도 분명하다. 예컨대 아가에서는 여자가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데, 이는 고대 사회의 현실 또는 당시의 세속적 연가의 관점에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점이다. 또한 아가를 종교와는 무관한 극(劇) 노래로 이해하는 ‘극적 해석’에서도, 결과론적으로 볼 때, 자의적-세속적 이해의 열쇠로 충분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이 해석 방법에 따라 아가를 극으로 꾸미기 위해서는 본문의 많은 부분들의 순서를 뒤바꾸어야 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의적-신화적 해석’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아가에 제의적-신화적 요소들이 상당히 들어 있고 또 이 해석 방법이 많은 부분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대한 정통 신앙과 부합할 수 없었던 이교의 우상숭배적인 풍요다산의 제의에서 유래하는 노래 모음을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아가 안에 들어 있는 노래들을 구체적으로 누가 불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또한 이 노래들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도 의견의 일치를 이룰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번역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두 주인공을 “남자”, “여자”로 구분해 보았다. 아울러서 제삼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누구인가는 더욱 불분명하기 때문에 항상 물음표를 덧붙인다. 그리고 누가 불렀는지 모른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물음표만을 찍는다.

 

 

5. 아가의 의미

 

아가의 사랑은 인간적인 것으로서 성적이며 동시에 거룩한 것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면 중에서 하나를 인식하지 못할 때, 한편으로는 세속적 의미에만, 다른편으로는 우유적 의미에만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아가는 - 창세 2,23-24에 대한 일종의 주석으로서 - 인간적인 사랑을 하느님의 선한 창조 사업 안에서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서술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을 묘사하기 위하여 이 책은 다소간 의식적으로 에집트의 연가라든가 당시 중동 지방에 두루 퍼져 있었던 이교적 ‘성혼’ 의식의 요소들을 채택한다. 그러나 아가는, 사랑의 진실한 기능은 하늘과 땅이 또는 두 신이 종교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상호보완적으로 창조하신 두 창조물이 결합하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자연의 풍요다산을 비는 제의(祭儀)를 철저하게 탈신화화한다.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싼 민족들과 문화들은 대부분 성(性)을 신성시하였다. 이들은 성을 신성한 신비와 신적인 현상으로 여겨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이를 재현하였다. 이에 반하여 아가는 완전히 탈신성화한 사랑 곧 극히 인간적인 현상으로서의 성과 사랑을 노래한다. 이는 성의 신성화, 또는 신을 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구약성서적 종교의 입장에서 볼 때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이 갈구하던 자연의 풍요 역시 인간들에 의하여 대행된 신적인 성의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과 사랑의 계약을 맺으신 야훼 하느님, 그분 혼자만에 의해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가는 진정한 육적 사랑(잠언 2,16-17; 말라 2,14)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 마치 에페 5,25에서 바울로가 다시 말하는 바와 같이 -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렇게 아가의 영성적 의미는 이 책의 자의적 의미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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