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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집회서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6,692 추천수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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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서 입문

 

 

집회서가 번역자들과 독자들에게 던지는 중대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집회서는 지혜문학에 속한 책으로서(잠언의 입문 참조) 그 구성과 내용이 오랜 세월에 걸쳐 복잡하게 완성되었다. 집회서의 전수 과정은 파란곡절을 겪었다. 가톨릭에서는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이 책을 제2경전으로 받아들였으나 개신교에서는 팔레스티나 유다교의 전통에 따라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으로 다루었다. 집회서의 히브리어 본문은 유실되어 오랜 세기 동안 잊혀졌다가 19세기 말엽부터 단편들로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집회서의 역본들도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되어 가면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풍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 책이름과 저자

 

집회서는 구약성서에서 (예언서들은 제외하고) 저자가 자기 책 안에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유일한 책이다. 저서에 저자 자신의 소개를 담는 풍습은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보인다. 집회서의 저자는 자기 이름을 “시라의 아들 예수”(50,27; 51,30)라 밝힌다. 히브리어 이름으로는 벤 시라요 그리스식 이름으로는 시라키데스이다. 늦어도 성 치프리아노 시대 이후부터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책의 이름을 라틴어로 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 교회의 책 또는 모임의 책)라 부르면서 새로 입교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데 이 책의 가르침을 이용하였다. 우리말의 명칭도 여기서 유래한다. 한편 유다 문학 전통에서는 이 책의 이름을 ‘벤 시라의 잠언’ 또는 단순히 ‘벤 시라의 책’이라고 불렀다. 전자의 이름은 이미 예로니모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주요 그리스어 수사본들은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 또는 ‘시라의 지혜’라는 책이름을 전해 준다. 

 

우리가 벤 시라로 알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율법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 예루살렘의 명문 율사로서 학교를 열어(51,23) 자신의 오랜 명상의 결실(32,15)과 삶의 체험을 다른 사람들, 특별히 귀족 집안의 젊은이들에게 전해 주고자 고심하였다(24,34; 33,18). 그 자신이 지혜의 열렬한 탐구자로(51,13-30) 외국을 돌아다니며 숱한 여행 경험을 통하여 귀중한 교훈들을 많이 얻었다(34,9-11). 그가 외국생활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외교에 관련된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39,4). 그는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맞았으나 그때마다 주님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34,12; 51,1-7). 그러나 전반적인 그의 일생은 현모양처(36,21-27)와 가정교육을 올바로 받아 훌륭하게 자란 자녀들(30,7-13; 42,5)에 둘러싸인 비교적 평탄한 삶이었다. 어떤 대목을 보면(33,19) 그가 한때는 예루살렘에서 고위 관직에 올라(39,4) 대사제의 감독하에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조직체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성전과 사제직과 경신례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50,5-21)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제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는 말년에 인생살이와 관련된 수많은 교훈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결심하고 “사람들이 율법에 따른 삶 안에서 더 큰 정진을 이룰 수 있도록”(머리글 10) 자신의 가르침을 글로 적어 발표하였다. 이 글에서 그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는 그 당시 유다교가 직면한 역사적 상황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2. 저술 연대와 역사적 상황

 

벤 시라는 기원전 200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살았고 그의 저서는 기원전 180년경에 기록되었다. 이 사실은 집회서의 그리스어 본문이 전해 주는 두 가지 정보에 의해서 확인된다. 본문 머리글에 보면 이 책의 번역자인 벤 시라의 손자는 프톨레매오 7세(170-116년)인 유에르게테스 임금 치세 38년, 곧 기원전 132년부터 에집트에 머물면서 이 책을 번역하는 일에 손을 댄다. 따라서 그와 할아버지 벤 시라의 나이 차이를 감안하면 이 책이 그로부터 50년 전에 쓰여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해진다. 

 

다른 한편 벤 시라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대사제 시몬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50,1-24). 시몬은 안티오쿠스 3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할 당시(198년)에 대사제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 안에는 시몬의 아들 오니아 3세가 폐위된(174년) 후에 일어났던 비극적 상황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175-164년) 치하의 극심한 박해에 대한 어떤 암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사실은 집회서의 저술 연대를, 유다인들이 외세의 지배에 있었지만 아직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있었던 시절과 마카베오 집안의 봉기(167년)로 시작된 격렬한 저항 시절의 중간으로 잡게 만든다. 

 

팔레스티나는 1세기가 넘는 기간을(301년 이후부터) 에집트의 프톨레매오의 지배를 받았고 그뒤 기원전 198년에 시리아의 셀류코스 집안에 주권을 빼앗겼다. 안티오쿠스 3세(223-187년)와 그의 후계자 셀류코스 3세(187-175년)는 유다인들에게 호의적인 정책을 폈다. 여러 가지 특권을 그들에게 허락했고 세금을 감면해 주었으며 성전의 재건과 경신례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2마카 3,3). 성전의 재건에 대한 50,1-4의 기록은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다. 

 

알렉산더의 정복 사업은 헬레니즘이라는 말로 묶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새로운 생활 양식에 적응하려는 ‘보편적인’ 경향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헬레니즘은 다양한 문화의 혼합, 종교적 통합주의, 종족과 종교의 경계를 없애려는 보편주의, 그리고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문화를 찬양하는 경향들 때문에 그 자체로서 유다교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벤 시라는 스토아 철학의 개념들과 같은 그리스 문화의 유익한 관습들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사상과 풍습 안에서 자신의 종교가 요구하는 본질적인 규범이나 원칙에 위배되는 요소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에 휩쓸리지 말라고 경고한다(2,12-14). 그는 당대의 경건한 유다인들이 느끼던 불안을 함께 나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안목과 사상이 더 이상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는다. 또한 그는 가까운 장래에 예루살렘 자체 안에서 사제 계급과 고위 관직에 속한 사람들이 배교로 치닫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두 세계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게 된다(1마카 1-2 참조).

 

 

3. 저술 목적

 

이런 위험 앞에서 벤 시라는 유다이즘의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애국심, 하느님과 세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 및 선민의식을 변호하기 위하여 집필에 손을 대었다. 그는 동료 종교인들에게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계시된 율법을 통하여 참 지혜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만연된 헬레니즘 문명의 불명료한 사상을 조금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하여 전통적인 종교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지혜를 종합하고 여기에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덧붙여 논증을 한층 심화시킨다. 이처럼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충실한 한 유다인의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서는 그리스어 역자의 노고로 “이국 땅에 살면서 배우기를 즐겨하고, 율법에 맞는 생활습관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머리글 30)에게까지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생존과 정기를 말살시키려는 헬레니즘 앞에서 협약을 맺어야 한다고 부추긴 민족 내부의 반역이나 어떠한 외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1마카 1,11-15)!

 

집회서의 저자는 변화된 세상 안에서 새로운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유다인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다 전통의 총체적 가르침을 전수하고자 한다. 그는 유다교의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이면서도 현실이 어떤 것인지, 새로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이 책에 언급된 수많은 사상들을 간단하게라도 소개하기란 매우 어렵다. 인생의 문제들 중 다루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우정, 자선, 자녀 교육, 여성 또는 아내, 의학과 질병, 부와 가난, 종을 다루는 법, 잔치와 밥상 예법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옛 역사, 제사와 경신례, 하느님, 율법, 창조, 인간의 자유,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 모든 주제에 앞서 이스라엘 안에서 이미 옛 전통의 상속자로 자처하는(33,16-18) 지혜에 대한 글(1,1-10; 24; 50,27; 51,13-30)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와 관련하여 집회서가 욥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보다는 이 책이 잠언을 주석해 주는 구실을 맡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8,29 참조). 집회서는 간결한 이행시로 되어있는 잠언의 사상을 해설하고 부연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집회서는 지혜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선보이고 있다. ‘조상들에 대한 칭송’(44,1-49,16; 바룩 3,9-4,4 참조)에서 보듯이, 시대를 뛰어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련하여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24장에서 지혜가 인격화되어 있는데 이 대목은 잠언 8장 및 욥기 28장과 비교할 수 있겠다. 이 인격화 속에서 앞으로 지혜와 정의는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 앞에 같은 실재로 나타날 것이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주제는 집회서에서 너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이 이 책의 중심 사상을 이루지 않나 여길 정도이다. 이 주제는 종교적 삶을 강조하는 2,15-17에 분명히 표현된다. 이 대목에는 지극히 선하신 절대자 앞에서 취해야 할 개인적 신심이 언급되는데 그분의 성덕 자체가 순명을 통하여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주님을 경외함은 율법에 대한 충성으로 표현되고 넓은 의미에서 지혜의 개념과 동일시된다. 이 경외심 안에서 지혜의 길을 보는 전통적인 사상은 이제 율법이 명시한(1,26; 6,37) 구체적인 삶의 규범을 따르는 것으로 수렴된다. 율법과 지혜에 대한 연구는 유다이즘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로 자리잡게 되었다. 여기서 집회서 저자는 지혜의 특성과 기능, 즉 하느님께 기원을 두는 것, 창조 안에서 하는 역할, 인격화 등을 율법에도 적용시킨다. 랍비 문학에서도 지혜의 선재사상과 연관시켜 율법의 선재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집회서 저자가 표현한 개념을 좀더 발전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율법에 집착하는 벤 시라의 태도를 놓고 그를 율법주의적 종교의 사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하느님에 대한 그의 개념과 그분이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사변적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체험에 기초를 둔 것이고, 따라서 그의 진솔한 신심을 충분히 밝혀주고 있다. 집회서 저자는 당시 유행하던 사조에 맞서서 전통적인 신앙을 변호한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하고 유일하시며(18,1; 36,4; 42,21) 그분께서는 완전한 창조의 주인이시다(42,21.24). 창조의 감추어진 신비와 명백하게 드러난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벤 시라는 시편 작가처럼 피조물 앞에서 감탄과 경의를 남김없이 표현한다(16,24-18,14; 39,12-35; 42,15-43,33).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다(42,18-25). 그분은 ??전부??라는 낱말로 표현된다(43,27). 그분께서는 우주를 정의와 섭리로 다스리시고(16,17-23) 만물의 제 시간을 미리 정해 놓으시고 정확하게 그 가치를 평가하신다(33,13). 그분께서는 또한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2,11). 한마디로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시며 이스라엘만을 위한 아버지가 아니라(24,12; 27,17) 인간 각자의 아버지도 되신다(23,1). 이 마지막 관점은 유다교 신학에서 중요한 발전으로 볼 수 있다. 창조에 대한 집회서 저자의 태도는 그의 기도 안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신앙심은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적이다(30,21-25). 그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온갖 어려움과 인생과 그 운명에 장애가 되는 제약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당대의 철학적 사조는 인간의 자유와 악의 실존을 전선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접목시키려고 고심하였다. 이에 대해 벤 시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실재를 동시에 받아들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창조되었다(15,14). 악의 근원(21,27; 25,24)은 인간 안에 있는 것이지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15,11-13). 인간의 마음에는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생각은 랍비 문학의 인간론 안에서 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을 통제하는 주인으로 남을 수 있으며(31,10) 그가 승리할 때 하느님께 정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집회서 안에서 이 보상의 개념은 전통적인 사조에 따라 아직 지상의 물질적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보상은 건강과 장수와 많은 자녀들과 안락한 생활과 명예를 의미한다. 저자는 그의 선대 사람들처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인간이 죽으면 셔올(지하세계)에 머물면서 생명의 빛으로 나아갈 희망을 상실한 채 허약해진 목숨을 희미하게 연명해 갈 뿐이다. 불사불멸과 부활에 대한 개념은 그가 죽은 지 오래지 않아 그리스 사상과 페르샤 사상의 영향 아래서, 그리고 극심한 종교박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서 한층 명백하게 떠오르게 된다(2마카 7,9; 다니 12,2-3). 그리스어 역자가 자기 할아버지의 저서를 재해석할 때 이 같은 개념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48,11). 저자의 손자는 저세상에서 불경한 자들이 받게 될 벌에 대해서도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7,17). 그러나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한 강조(8,7; 14,17; 28,6; 41,3)와 인간의 비참한 실존에 대한 반성(40,1-11)을, 히브리어 원문의 저자인 벤 시라 자신이 “불사불멸에 대한 확고한 기대”(지혜 3,4)를 지니고 있었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잘못이다. 

 

벤 시라의 종말론적 기대 역시 지상적이고 정치적, 민족주의적인 지평을 넘어서지 못한다. 메시아 사상이 이스라엘 안에 폭넓게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다윗식 메시아 사상의 흔적을 정확하게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이다. 메시아 사상은 36,1-17의 기도에만 반향되고 있을 뿐이며 이 대목의 해석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집회서 저자가 경신례와 사독 집안의 사제직(히브리어 본문 51,12 참조)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고 다른 한편 바리사이파 안에서 중요하게 부상하게 될 부활 사상과 메시아 사상을 명백하게 언급하지 않은 사실은 학자들이 그를 사두가이 사상의 선구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쓰여진 율법에 집착한 보수주의자 또는 민족주의자들의 대열에 그를 놓는다. 그러나 그를 복음서 저자들과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소개한 본격적인 의미의 사두가이들과 단순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유다교 안에 아직 독특한 성격을 지닌 파당이 생겨나기 이전이었다. 

 

벤 시라는 이방 민족들에 대하여 언급할 때 이미 유다식으로 굳어진 태도를 견지한다. 예언자들이 고취시킨 보편주의가 퇴색하고 유배 이후 시대의 어려운 상황이 이스라엘을 특권주의로 몰고 갔다.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율법에 따른 생활 관습들(할례, 금식일 준수, 음식 규정과 정결례 등)을 점점 더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갔다. 인간을 우주의 한 시민으로 보는 헬레니즘의 인간관도 저자의 선민의식에 대한 긍지를 침해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지혜가 이스라엘 민족 안에 자신의 안식처를 마련했다(24,7 이하)고 생각한다. 그는 선민과 불경한 자들을 근본적으로 분리시킬 것을 주장한다(11,33; 12,14; 13,17). 이러한 분리는 쿰란의 에센파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발전시켰고 바리사이들(분리된 자들)도 여기서 자신들의 이름을 끌어내었다. 이 세상은 두 종류로 구분되는데 선한 이들의 세상과 악한 자들의 세상, 또는 지혜로운 이들의 세상과 어리석은 자들의 세상이 그것이다(21,11-28). 다른 한편 집회서 안에는 유다이즘에서 볼 때 새로운 생각(사상의 자취)들이 드러나 있다. 용서에 대한 저자의 진보적인 생각(27,30-28,7)은 복음서의 내용과 흡사하다. 죽을 몸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이 서로 비슷한 처지라는 생각(28,4-5)은 이미 사해동포 개념을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레위 19,18)는 옛 율법서의 계명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서 나온 반성일 것이다.

 

 

5. 집회서의 구조

 

주석가들마다 이 책의 구조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집회서 저자가 셈족으로서 우리 시대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원칙에 따라 지혜의 말씀들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저술을 위해서 사료를 수집할 때 주로 구전을 모았고 구전에 포함된 사료들을 같은 주제로 분류하면서 본 주제에서 벗어나는 사료들도 함께 모아들였다. 사료들을 배열하는 데에도 저자는 일정한 구조를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회서 안에서 조직적인 구조의 틀을 찾아내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크게 구분하면 1-23장과 24-50장으로 나눌 수 있다. 각 부분의 첫머리에는 지혜에 대한 찬미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51장은 감사 찬미가와 지혜의 탐구에 관한 시를 담고 있는 부록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혜에 대한 칭송(1,1-20; 4,11; 6,18; 8,8 등)을 중심으로 지혜와 관련된 온갖 주제들을 모아 첫 부분(1,1―42,14)으로 분류하고, 창조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위업에 대한 명상(42,15-50,29)을 두 번째 부분으로 정한다. 이 번역에서는 집회서의 구조를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머리글 

제1부:지혜와 현명과 기타 금언(1,1-16,23) 

제2부:하느님과 창조와 기타 금언(16,24-23,28) 

제3부:지혜와 율법과 기타 금언(24,1-32,13) 

제4부:하느님 경외와 처세(32,14-42,14) 

제5부:하느님의 영광(42,15-50,29) 

부록(51,1-30)

 

 

6. 집회서의 중요성

 

집회서는 이스라엘이 구약성서의 종교에서 발전하여 유다교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증언하는 중요한 책으로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유다교의 특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집회서 안에는 성서의 종교와 유다교의 특징들이 서로 조화되어 나타난다. 벤 시라는 우리에게 복합적 양상을 띤 유다교의 근본 요소들을 전해 주고 있는데 이들 안에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집회서는 바리사이파에 큰 영향을 미쳤던 랍비 유다교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구약성서의 묵시문학과 유다 사막에서 발견된 쿰란 문헌과 공통된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헌들과 함께 연구해야 한다. 헬레니즘과 유다이즘의 대치 상황에서 집회서는 한편으로 헬레니즘적 요소들을 빌려오기도 하고 다른 한편 그 요소들을 경계하고 극단적으로 배척하기도 한다. 

 

벤 시라는 또한 구약성서의 거의 완성된 경전의 구조에 대하여 중요한 증언을 하고 있다. 머리글에서 그는 히브리 성서의 전통적 구분, 곧 “율법서와 예언서와 그외의 기록들”(39,1-3 참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모세오경, 여호수아서,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욥기(히브리어 본문 49,9),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열두 소예언서(명시적으로 말라기서와 하깨서), 그리고 느헤미야서 등으로부터 다소 분명하게 인용하고 있다. 그는 시편의 저자를 다윗으로, 잠언의 저자를 솔로몬으로 주장한다. 

 

벤 시라는 유다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저자들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의 책은 탈무드에 자주 인용되었고 중세의 저자들에 이르기까지 유다 문학의 결정적인 고전으로 평가되었다.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에 대한 폭넓은 언급과 유다 옛 고전들의 풍부한 인용은 집회서 저자가 전통주의자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창고에서 옛것과 새것을 꺼낼”(마태 13,52) 줄 아는 지혜로운 율법학자였다. 

 

또한 집회서 덕분에 속죄일 축제와 같은 유다교의 각종 경신례를 다룬 중요한 성서 본문들이 새롭게 재인식되었다. 36,1-17의 기도문은 ‘십팔축복기도’와 매우 유사하다. 

 

신약성서 안에도 집회서와 연결된 수많은 병행구들이 등장하는데(특히 야고보서), 이는 이 책이 초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집회서라는 이름 자체가 시사하듯 일찍부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약간의 망설임 끝에 교회의 책으로 인정받고 경전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 책이 종교서적의 모음집에 정식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이처럼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이 책은 성서의 다른 책들에 비해 그 기원이 늦다는 점과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이 기원후 70년 이후에 정립된 정통 유다교리와 여러 가지 면에서 완전하게 부합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리사이파에 의해서 배척되었다. 바리사이파의 이 결정은 초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잠시나마 이 책을 경전으로 받아들이기를 망설이게 한 요인이 되었다. 망설임의 또 다른 요인은 집회서 본문의 복잡한 전수과정이다.

 

 

7. 본문의 전수과정

 

집회서 원문은 히브리어로 작성되었고 적어도 4세기에 예로니모 성인이 그 필사본 하나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 히브리어 수사본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고 유다교 랍비들의 문헌과 시선집에서나 그 단편적인 본문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 말엽(1896-1900년) 카이로에 있는 유다 회당의 부속건물인 게니자(쓸모없다고 버린 수사본들을 모아놓은 창고)에서 그리스어 본문 3분의 2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본문의 단편들이 발견되었다. 이 단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1910년 캠브리지 대학의 탈무드 히브리어 전문가 쉐흐터(S. Schechter)에 의해 출판된 수사본 A와 B이다.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히브리어 수사본의 작은 단편들도 뒤이어 수사본 C, D로 분류되었다. 이 수사본들은 10-12세기에 쓰여진 것이다. 1931년 마커스(J. Marcus)는 미국 유다 신학교(The Jewish Theological Seminary of America)의 아들러 게니자 수사본 보관소에서 집회서의 또 다른 히브리어 수사본을 발견하였고 이 수사본을 수사본 E라 이름지었다. 카이로 수사본들은 1962-1965년에 베이예(M. Baillet)와 샌더즈(J.A. Sanders)에 의해서 출판된 쿰란 수사본들과 1965년 야딘(Y. Yadin)에 의해서 출판된 마사다 요새(73년 로마인들에게 함락된 유다 최후의 항전지)의 수사본들(39,27-44,17을 포함)이 그 진정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들 수사본들은 본질적인 면에서 서로 일치하고 있다. 

 

이제까지 입수된 히브리어 본문의 수사본들을 바탕으로 복원한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1,19-20(쿰란) 

3,6-16,26 

18,31-19,2 

20,5-7. 13 

25,8. 13. 17-24ㄱ

26,1-3. 13-17

27,5-6. 16 

30,11-34,1 

35,11-38,27ㄴ

39,15ㄱ-51,30

 

발견된 히브리어 본문의 수사본은 두 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나는 매우 오래된 수사본으로서 벤 시라의 손자가 에집트에서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G I) 대본으로 삼았던 기원전 130년경의 수사본(H I)이고 다른 하나는 기원후 130-215년에 나온 그리스어역 수정본(G II)이 참고 대본으로 삼았던 기원후 50-150년 사이에 만들어진 히브리어 수정본의 수사본(H II)이다. 이 두 번째 수사본에서는 바리사이파의 사상적 편린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히브리어 수정본은 시리아어 역본으로 입증되었다. 

 

그리스어 본문 G I은 대자 수사본 A(알렉산드리아 수사본), B(바티칸 수사본), C(에프렘 수사본), S(시나이 수사본)들과 같은 계열의 흘림체 수사본들에 포함되어 있다. 다른 그리스어 본문 G II는 히브리어 본문을 새롭게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이미 번역된 G I을 충실히 전달하면서 히브리어 본문의 보충판(H II)을 참고삼아 필요한 부분을 G I에 삽입하였다(A. 치글러의 견해). 한두 낱말을 바꾸거나 첨가시키는 것 이외에 G II는 G I에 없는 약 300개의 행을 덧붙였다. G II의 수사본 증인들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오리게네스의 육경에 등장하는 O  - 그룹과 루치안의 수정본 L - 그룹(주요 그룹), l - 그룹(가지 그룹)과 L??(L 과 l 이 일치하는 경우)이다. O  - 그룹에 속하는 수사본들로는 흘림체 253, Syh(시로헥사플라), 대자 수사본 V(베네투스 수사본)와 Sc(7세기의 시나이 수사본의 수정본)가 있고, L - 그룹에는 248, 493, 637이 있으며, l - 그룹에 속하는 수사본들로는 106, 130, 545, 705가 있다. G I은 전반적으로 히브리어 본문에 충실하지만 벤 시라의 손자가 히브리어 표현과 어법을 잘못 이해한 경우가 적지 않고 본문의 전수 과정에서도 필경사들의 수많은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으로 후에 히브리어 본문의 수정본 H II를 참조하여 펴낸 G II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동시에 히브리어 수정본들을 대본으로 G II를 참고삼아 번역한 시리아어 역본과, 자매 역본들 가운데 G II의 중요한 증인으로 알려진 불가타의 전신인 고대 라틴어 역본과 아람어 역본의 증언도 중요하다. 본 역자는 필요할 경우 이 역본들의 내용도 번역하여 각주에 소개하였다. 

 

그리스어 역본은 히브리어 본문의 가장 중요한 증인이다. 유다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이 후대에 전수시킨 수사본은 바로 이 그리스어 역본이었다. 이 그리스어 본문을 히브리어 본문과 비교하여 관찰해 보면 이스라엘의 신학적 사상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알 수 있다. 변천하는 신학적, 역사적, 지정학적, 사회적 맥락에 부응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그리스어 수사본들 안에서 엿볼 수 있다. 역자는 이런 다양한 시도의 동기가 무엇인지 각주 안에서 힘닿는 데까지 밝혔다. 이러한 시도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있는 공동체의 요구에 맞추어 구체화시킴으로써 성서를 미라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미드라쉬적 경향에 힘입은 것이다. 

 

우리말의 번역 대본은 랄프스(A. Rahlfs)가 편집한 슈투트가르트 판(1935년)이 아니라 철저한 본문 비평을 바탕으로 새롭게 편집한 치글러(J. Ziegler)의 괴팅겐 판(1965년)이다. 이 치글러의 그리스어 본문에는 위에서 언급한 G II의 첨부된 내용들이 본문 안에 들어와 있는데, G I과 구별하기 위해 작은 글자로 나타난다. 이 번역에서는 이를 기울어진 자체로 바꾸어 구분하였다. 

 

치글러의 괴팅겐 판은 각 장의 절을 구분하는 데에서 대부분 랄프스의 슈투트가르트 판과 일치하지만 30-36장에서 매우 다르다. 이 대목에서 랄프스가 대다수 그리스어 수사본들의 장/절 구분을 무시한 반면 치글러는 그것을 그대로 채택하였다. 아래 표에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어 수사본들은 33,13ㄴ―36,16ㄱ을 30장 24절과 25절 사이에 놓고, 30,25―33,13ㄱ을 36장 16ㄱ절과 16ㄴ절 사이에 놓았다.

 

<랄프스>              <치글러>

30,24                     30,24 

30,25                     33,13ㄴ 

31                         34 

32                         35 

33,1-16ㄱ               36,1-16ㄱ

33,16ㄴ-33             30,25-40

34                         31 

35                         32 

36,1-10ㄱ               33,1-13ㄱ 

36,10ㄴ-27             36,16ㄴ-31 

37                         37

 

이 번역은, 각 장의 순서는 히브리어 본문과 시리아어 역본과 불가타를 따른 랄프스의 것을 받아들이되 같은 장 내의 절 구분은 치글러의 것을 받아들였다. 

 

히브리어 본문의 단편들은 그리스어 본문이 문법적으로 또는 의미상으로 모호할 때, 그리고 자체로서 그리스어 본문의 내용과 전혀 다른 종교적 견해를 드러낼 때 우리말로 번역하여 각주 안에 소개하였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 곧 그리스어 역자가 명백하게 히브리어 본문을 잘못 읽었거나 도무지 해독할 수 없는 표현을 담고 있는 경우에는 그리스어 본문 대신 히브리어 본문을 취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 범위를 낱말 한두 개로 국한시켜 되도록 그리스어 본문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진정한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유다교 고유의 문헌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오랫동안 유다교 전통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쳐왔던 이 지혜의 책, 집회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 역시 2,000년 동안 명상과 기도의 주제들을 무수히 발견해 왔다. 또한 집회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성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더구나 서구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동방의 다양한 고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 책은 그것이 입고 있는 이질적인 문화와 표현의 옷에도 불구하고 오랜 인생경륜과 깊은 지혜를 전달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메시지가 매우 친숙하게 전달되어 온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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