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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요나 입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4,227 추천수0
파일첨부 요나입문.hwp [793]  

요나 입문

 

 

1. 구성

 

요나서는 히브리 말 성서에서 예언서들 가운데에 들어가 있지만, 언뜻 보기에도 다른 예언서들과 다르게 여겨진다. 일련의 신탁으로 구성된 일반 예언서들과는 달리, 요나서는 서로 연결된 세 장면의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예언자는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두 장면에서 요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과묵하고 고독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반면에 그의 상대자들, 곧 선원들, 그리고 이어서 니느웨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일뿐더러, 요나보다 훨씬 더 종교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로써 독자는 바로 그들에게서 자기들의 모습을 보고 또 그들의 모범을 따르도록 자극을 받는다. 드디어 세 번째 장면에서는 요나 혼자 하느님과 대면한다. 이 부분이 바로 요나서의 절정이다. 그것은 곧 요나 예언자의 가장 중요한 기도, 그리고 그의 사명에 관한 하느님의 가장 큰 계시이다. 이러한 전체 맥락에서, 영감을 받은 어떤 저자가 훗날에, 그러나 요나서의 상황에 꼭 맞는 방식으로, 이 책의 종교적, 예언적 가치를 더해 주는 시편을 2장에 삽입한다.

 

 

2. 목적

 

이러한 요나서는 두 가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첫째, 예언자가 전인적으로 겪는 내적 체험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려고 한다. 예언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기의 직무를 시작한다. 동시대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이러한 사명은, 예언자에게 극히 고통스러운 일일뿐더러 그를 다른 이들에게서 소외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예언자가 자기가 전해야 하는 메시지의 중압에 억눌려서 두려운 나머지, 사람들에게 감히 말을 하지 못한다거나(1,1-16) 체념한 설교가로 전락한다 하더라도(3,1-10), 그가 전하는 또는 전해야 하는 말씀은 선원들과 바다, 바람과 큰 물고기, 니느웨인들, 그리고 짐승들과 초목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의도하였던 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예언자는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자기의 사명을 벗어 던져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그가 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하느님의 말씀은 동물과 자연을 포함한 온 세상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요나서의 두 번째 가르침은, 주님께서 선포하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의 내용과 그 말씀을 받는 자들의 자질을 통하여 드러난다. 이스라엘에게 “자비롭고 너그러운” 분으로 당신을 계시하신 하느님(탈출 34,6-7), 달리 말하면 선하신 구원자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니느웨인들 곧 이방인들도 위하신다고 선언하신다. 여기에서 니느웨 성읍,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어림수, “사흘”과(3,3) 주민 “십이만 명”은(4,11), 그러한 하느님의 구원 계시의 보편적 효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채택된 것이다.

 

 

3. 문학 유형과 집필 시기

 

요나의 이러한 이야기는 그것이 예언자들의 실제 체험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역사적 실존 인물과 연결된다(2열왕 14,25). 그러면서도 더욱 교훈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더러는 한 편의 우화처럼, 갖가지 표상들로 가득한 경탄스러운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 이야기의 저자는 여러 요소를 외국의 신화들에서, 그러나 특별히 예레미야서와 같은 성서 전통에서 빌려 온다(3,8과 예레 18,11; 23,22; 25,5, 그리고 3,10과 예레 18,8.10; 26,3.13.19 비교). 

 

이러한 모든 요소는 요나서를 유배 이후의 작품으로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서 언어와 문체는 명백히 고전 히브리 말 시대 이후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메시지는 예컨대 유배에서 돌아올 당시의 제2이사야서(이사 40-55)보다 더 폭넓은 보편주의를 반영한다. 이 이야기에서 약간 귀에 거슬리는 해학은 요나서를, 에즈라 시대에 너무나 자신들에게만 갇혀 있던 유다교의 경향을 비판하는 일종의 팸플릿으로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이 소책자에서 표상이 풍부한 문학 유형은 유배 이전 역사가들의 문체보다는, 얼마 뒤에 토비트, 에스델, 다니엘서를 저술하게 되는 현인들의 문체를 상기시킨다.

 

 

4. 복음서와 요나서

 

예수님께서는 요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그의 이야기를 해석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께 기적을 요구하는 불신자들의 청을 거절하시면서, ‘요나의 징표’를 지적하신다(마태 16,4; 루가 11,29-30). 이는 그분 기적의 의미가 무엇보다도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임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요나의 징표’의 의미는 바로 마태오 복음서 안에서 발전한 내용이 증언하는 것처럼 더욱 잘 이해된다(마태 12,40).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1고린 15,4)는 가장 오래 된 신경의 표현도, 이 ‘요나의 징표’와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당신 복음이 지닌 보편적 효력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신다(마태 12,41-42).

 

요나서의 해학적 요소는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교적 예술을 하는 조각가와 화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어 왔다. 오늘날에도 요나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계속 호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특별히 흥미로운 요나라는 사람보다는, 그의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요나가 하느님에 대하여 말하는 내용, 곧 그분의 보편적이며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는 사랑이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새번역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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