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실

제목 [인물] 영원한 물을 찾은 사마리아 여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5,116 추천수1

[성서의 인물] 영원한 물을 찾은 사마리아 여인

 

 

옛날 유다 나라는 지금의 팔레스타인보다는 크지만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 전체 면적도 우리나라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넓이에 불과하다.

 

예수님 시대에 제일 북쪽에는 갈릴래아 지방이 있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가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가 이방인 지역이라 알고 있는 사마리아도 본래는 유다 땅이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사마리아를 끔찍히 싫어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기원전(BC) 720년께 이스라엘의 북쪽인 사마리아는 앗시리아에 의해 침략을 당했고 후에는 바빌론에 의해 남쪽 유다 왕국도 멸망했다. 이때 앗시리아는 식민지 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즉, 피를 섞이게 해서 민족의 씨를 말려 버리려는 무서운 정책이었다.

 

이후 사마리아 지역은 잡혼으로 피가 섞이게 됐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르게 되었고 원수지간으로 지내게 된다.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을 심지어 "개 같은 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남쪽 유다에서 북쪽 갈릴래아로 갈 때 사마리아를 거치지 않고 두배나 되는 먼 길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셨다. 더위에 지친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우물가를 찾으셨다. 때는 정오였다. 햇빛이 뜨거운 사막에서는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각에 물을 길으러 나왔다는 사실에서 그 여인이 분명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여인에게 예수님이 먼저 말을 건넸다. 이방인과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던 당시의 관습으론 파격적이었다.

 

"혹시 물을 먹을 수 있습니까?"

 

가뜩이나 사람을 피해 나온 여인은 우연히 마주친 유다인의 말에 짜증난 태도를 보였다.

 

"당신은 유다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그녀는 물 한잔 내놓지 못할 정도로 열등의식에 가득찬 여인이었다. 그러자 예수님은 따뜻한 어조로 부드럽게 말씀을 이어가신다.

 

"만약 당신이 내가 누군지 알았다면 오히려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목마르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그러자 그 여인은 예수님의 말에 귀가 확 열렸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처럼 노심초사하며 도둑고양이처럼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런 물이 있다면 저에게 주십시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전 남편이 없는데요…."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은 참말이다. 넌 남편이 전에 다섯명이나 있었고 지금의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다."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사마리아 여인은 그야말로 팔자(?)가 센 여자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이혼증서만 남편이 써주면 이혼이 가능했던 당시의 법으로 보아 그녀는 분명히 흠이 많은 여자였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자신의 참다운 가치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가치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예수님을 예언자로 볼 수 있는 영적인 눈도 열리게 되었다. 단순히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만남이란 아주 우연히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열쇠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격적인 만남은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 된다. 세상이 혼탁하고 인간이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인격적인 만남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다른 이를 자신의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먼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셨다. 상처 많고 열등감에 똘똘 뭉친 그녀를 있는 그대로 한 인격체로 대해주셨다.

 

"여인아, 난 너의 고통과 상처를 알고 있다. 네 삶의 질곡의 역사를 알고 있다. 그래서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난 부족한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난 목이 마르니, 나에게 물을 한잔 주지 않겠나?"

 

그분은 아주 일상적인 어투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신다.

 

[평화신문, 2001년 2월 1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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