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인물] 예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여인들(마르 15,40-41)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던 예수님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다. 오랜 시간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시던 예수님은 드디어 오후 세시 경에 큰소리를 내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애타게 지켜봤던 군중들은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이 죽어가는 광경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마지막까지 기도를 하며 자신의 생명을 봉헌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예수님의 운명은 철저히 버림받았다.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미 모두 스승의 곁을 떠났다. 특히 예수님은 자신이 믿는 하느님에게마저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 정말 기이한 일은 초대교회 안에서 큰 역할을 맡고 존경을 받던 사도와 제자들이 결정적 순간에 예수님을 멀리하고 줄행랑을 쳤다는 사실이다. 사도들의 대표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기 바로 전에 자기 스승께 호언장담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말이나 안 했으면 오죽 좋았을까. 베드로는 그렇게 약속한 후에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리고 하루도 못 지킬 약속 때문에 서럽게 땅바닥에 엎드려 울어야 했다. 예수님이 마지막 수난을 당하시는 동안 십자가 곁까지 따랐던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 중에도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 중에는 친지들과 예수께 충직한 여인들이 있었다. 예수님을 추종했던 제자들 중에는 오직 몇몇 여인만 곁에 머물렀을 뿐이다.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오히려 여성들의 역할이 빛이 나는 대목이다. 이들은 의연하고 충실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증인이 되었다. 이들은 예수님을 갈릴래아에서부터 따라다녔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골고타로 끌려가시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다. 또한 그녀들은 먼발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 가운데에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따라다니며 시중들던 여자들이다. 그밖에도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녀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죄인들에게 폭행을 당하시고 옷이 어떻게 벗겨지는지를 보았다. 그녀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손에 굵은 대못이 박히는 소리와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서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예수님의 임종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시킬 때도 함께 했다. 또한 안식일 다음날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기도 했다. 그녀들의 믿음과 사랑은 위대하고 영웅적인 것이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바쳐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인간적인 이해타산이나 계산이 없었다. 그녀들에게는 순수함과 희생심과 사랑의 마음만이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 여정에 마지막까지 함께한 여성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직분이나 능력, 위치 등의 세속적인 위계 질서의 사고에 젖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가치 서열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위계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나라의 위계 질서는 얼마나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사랑하고 얼마나 성실하게 추종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하게 따르는 여성들은 하느님 나라의 질서에 첫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들이다. 큰 책임을 맡은 사도들은 모두 도망쳤지만 위기상황에서 교회를 충실히 지켜내고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여인들이었다. 십자가 밑에 비참하게 서 있으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몇몇 여인들. 그녀들을 참된 교회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당시 골고타에서 그랬던 것처럼 볼품 없고 약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녀들은 주님을 끝까지 철저하게 따랐다. 그래서 그녀들은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어떤 이들은 활기에 넘치고 어떤 이들은 힘들고 느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분께서 가신 길을 충실하게 가는 것이다. [평화신문, 2002년 7월 2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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