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속의 동물들 : 들나귀 들나귀는 “野나귀” 즉 야생 나귀를 말한다. 일본에서 들 나귀의 “野”(일본어로 ‘노’로 읽는다.)와 조사의 “노”(일본어식 발음)과 잘 혼동이 된다. 동물상인이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가축 나귀를 “아프리카 나귀”로 팔며, 그것을 산 동물원이 “아프리카 나귀”로 수첩에 적은 적도 있다. 들나귀는 아프리카 나귀와 아시아 들 나귀 두 종이 있다. 아프리카 나귀에는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야에서 야생으로 자라고 있는 소말리아 나귀와 에집트 남부와 수단 등에 분포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멸종되어가는 누비아들나귀가 있다. 현재 이 나귀는 세계에서 사천삼백만 마리가 키위지고 일에 부려지는 가축인 나귀는 보통 이 누비아 나귀에서 가축화되어진 새끼로 생각이 되어진다. 아시아 들나귀는 이란, 인도, 중앙 아시아, 티벳, 몽골에 걸쳐 분포되어져 있고, 각 지역별로 오나가, 쿠란, 쿠르, 키얀, 치게타이로 불리고 있다. 구약성서 세계에 있는 시리아 지방에도 시리아 들나귀라 불리는 아종이 있지만 1920년대에 멸종하고 말았다. 이 아종은 나귀종 에서도 아주 작았으며 옛 시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잡혀온 것이 가축처럼 짐을 운반하는데 쓰여진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키워지고 있는 나귀는 대개 완고한 곳이 있지만 튼튼하며 의젓하고 부리기 쉬운 가축이다. 그러나 야생 들나귀 쪽이 광야에 살며 사람과 친숙하기 어렵고 뛰는 것도 빨라 뒤를 따라가는 것도 어렵다. “그 누가 들나귀들을 풀어 놓아 그것들을 자유롭게 하여 주었느냐? 들나귀 들을 광야에 깃들이게 하며 소금기 머금은 땅에서 살게 한 것은 바로 나이다. 인가에서 이는 소란쯤은 콧방귀로 날리는 들나귀 들을 야단치며 몰아 갈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것들은 먹이를 찾아 이산 저 산 기웃거리며 풀이란 풀은 모두 마음껏 뜯는다..”(욥기 39, 5-8) 사막과 광야에 사는 들나귀는 건조함에는 강하여 매일 물을 마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새끼 들나귀는 어미 젖으로 수분섭취가 가능하여 어미가 물을 마시러 가도 새끼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가뭄이 계속되면 역시 들나귀도 목이 마를 것이다. “노새들은 언덕 위에 올라 서서 여우처럼 숨이 가빠 헐떡이며 뜯는 풀이 없어 눈이 다 흐려졌다."(예레 14, 6) 나귀는 '히-호, 히-호'하는 듣고 있어도 숨가쁘고 고통스럽게 우는 소리 때문에 늑대처럼 헐떡거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계곡마다 샘물을 터뜨리시어 산과 산 사이로 흐르게 하시니 들짐승들이 모두 마시고 목마른 나귀들도 목을 축입니다."(시편 104, 10-11) 나귀가 가금화 되어진 것은 아주 옛 날부터다. 그처럼 옛 시대에 감당할 수 없는 야생 들나귀를 잡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들나귀처럼 광야 생활을 하는 부족 촌락에서 수 세대에 이르는 인내와 고난의 열매였을 것이다. 들나귀를 가축으로 만들기 위하여 피라밋을 만드는 것과 같은 정열을 쏟은 고대인들의 노력에 탄복할 만하다. 현재 아프리카에도 아시아에도 들나귀는 그 생태지역의 자연환경의 변화와 인류에 의한 개발과 가축으로의 길들이는 것에 의해 종의 멸종이 걱정되는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세계각지 동물원에서 수가 적어진 들나귀를 어렵게 구해 그 종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요꼬하마 금척구의 새로운 동물원에 소말리아 나귀가 들어왔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은 “왜 나귀가?”하며 별로 느낌 없이 그 앞을 지난다. 잘 보면 앞 다리 발굽에 흰 줄무늬가 있어 가축으로 개량된 나귀와는 구별이 된다. 들나귀는 가축화한 나귀와 비교해 보면 기가 센 동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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