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서 언급되는 실험기구 : 저울 신명기 25, 13은 동일한 저울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 즉 부정직한 자들은 서로 같지 않은 두 개의 추를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다가, 물건을 살 때에는 큰 추로 무게를 측정하여 정량보다 많은 양을 거두어들이고, 물건을 팔 때에는 작은 추를 사용하여 정량보다 적은 양을 줌으로써 부당 이득을 취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공정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도량형기(度量衡器)의 정확성이 요구되었을 바, 이에 대하여 성경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레위 19,35. 36; 잠언 20,10; 21,6; 아모 8,5). 서로 공정한 도량형기(度量衡器)를 사용하므로 써 이웃간에 상호 믿고 화목할 수 있는 사회가 구현된다면(레위 19,35. 36), 그 자체가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장구(長久)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신명 25,15). A false balance is an abomination to the Lord: but a just weight is his delight Divers weights are an abomination unto the Lord; and a false balance is not good (Prov. 11:1; 20:23) "야훼께서는 가짜 저울을 역겨워하시고 바른 저울추를 좋아하신다."(잠언 11,1) 일반적인 상업 활동이 활발했던 솔로몬 왕 당시 공공연하게 횡행하던 부정한 상행위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으며(잠언 16,11; 20,10), 이런 부정한 상행위가 공정한 상거래를 하는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불신을 조장하고 부당한 부의 축적을 야기하는 것이기에 종교적,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레위 19,36; 신명 25,13-15; 에제 45,10; 아모 8,5). 한편 '바른 저울추'는 '공평한 돌'이란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이는 당시의 저울추가 '돌'이었음을 시사한다(신명 25,13; 2사무 14,26). 야훼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추와 자를 표준화할 것을 명령하였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물건을 재고 달고 되고 할 때에 부정하게 하지 마라. 바른 저울과 바른 추와 바른 에바(ephah)와 바른 힌(hin)을 써야 한다."(레위 19,35-36 참조: 에제 45,10; 욥기 31,6; 아모 8,5; 미가 6,11). 아모스는 저울로 속이는 속임수를 언급하였다(아모 8,5). 악폐를 바로잡기 위하여 당국(왕)이 저울추를 측정하고 무게를 새겼다. 이런 저울추는 신성한 것으로 공포되었다. A just weight and balance are the Lord's; all the weights in the bag are his work (Prov. 16:11) "저울과 천평은 야훼의 손안에 있고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만드신 것이다"(잠언 16, 11). 여기서 '간칭'은 일반적으로 무게를 달 때 쓰는 저울을(weight, KJV)가리키는데 공동번역 성서는 '저울'로 번역이 되었다, '천평'은 원어상 쌍수로만 사용되어 두 개의 접시를 가진 '천칭'(balance)을 가리킨다. 공정한 상행위 또한 하느님의 엄중한 규례의 영역에 속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고대 서아시아에서 무게를 달 때, 그 추를 무게 주머니 속에 넣어 사용하였다(신명 25,13; 미가 6,11). 구약시대에서 치수의 측량 단위로 장대(reed), 보폭(pace), 규빗(cubit), 뼘(span, 손 너비(handbreath), 손가락(finger)이 알려져 있다. 고체의 부피단위로 갑(cab), 오멜(omer), 스아(seah), 에바(ephah), 호멜(homer)이 알려져 있다. 액체의 부피단위로 록(log), 갑(cab), 힌(hin), 밧(bath), 고르(cor), 호멜(homer)이 알려져 있다. 무게의 단위로서는 게라(gera, 1/20세겔), 1/3세겔, 베가(1/2세겔), 핌(2/3세겔), 세겔(shekel), 마네(maneh), 달란트(talent)가 알려져 있다. 달란트는 고대 그리스 및 히브리의 무게 및 화폐 단위에 달란트(talent)였다. 구약시대에 대량의 금, 은을 다는데 사용되었던 것을 보면(1역대 22, 14), 무게의 큰 단위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시대에서도 달란트에 대한 비유가 있다(마태 18, 24; 25, 1). 이 화폐의 단위(talent)가 "신뢰할 수 있는 물품"에서 점차로 "재능, 기량,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저울이 등장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안토니오에게 “아마 의아하실테죠. 왜 내가 3천 더커트를 마다하고서 일부러 더러운 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지를”(You'll ask me, why I rather choose to have a weight of carrion flesh than to receive three thousand ducats)라고 말한다(4막 1장). 포셔가 샤일록에게 “사실 그렇소. 그러면 살을 달 저울은 준비되어 있소?”(It is so. Are there balance here to weigh the flesh?)라고 말한다(4막 1장). “한 여름밤의 꿈”에서 디미트리스가 “저런 피라머스에다 이런 디스비, 저울에 달면 먼지 하나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제기 저런 남자 역이 다 어디 있나, 여자 역도 저렇고, 피장파장이구만.”(A mote will turn the balance, which Pyramus, which Thisbe, is the better : he for a man, God warrant us; she for a woman, God bless us) 말한다(5막 1장). “리처드 2세”에서 정원사는 “두 분의 운세는 지금 저울에 앉혀 있습니다. 임금님의 저울 접시 안에는 임금님 자신과 무게를 더욱 가볍게 하는 몇몇 총애를 하는 신하들이 앉아 있을 뿐인데, 볼린브루크 쪽은 그분 자신 외에도 이 잉글랜드의 귀족들이 모두 올라앉아 있어 리처드 임금님보다는 훨씬 무거울 수 밖예요.”(Their fortunes both are weighed. In your lord's scale is nothing but himself and some few vanities that make him light, but in the balance of great Bolingbroke, besides himself are all the English peers, and with that odds he weighs King Richard down.)라고 말한다(3막 4장). “끝이 좋으면 다 좋다”에서 국왕은 버트럼에게 “그녀의 손을 붙드시오. 그리고 자기 것이라고 말해 주구려. 그녀를 버금가게 해 주겠소. 동등한 신분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어울릴 수 있게 해 주겠소.”(Take her by the hand, and tell her she is thine: to whom I promise a counterpoise, if not to thy estate a balance.)라고 말한다(2막 3장). “헛소동에서”에서 마가레트는 히로우에게 “이제 곧 더욱 답답해지실 걸요. 남자의 무게로”('Twill be heavier soon by the weight of a man)라고 말한다(3막 4장). “착오희극”에서 에드리너는 루시아너에게 “그와 같은 고난을 자기 자신이 걸머지게 되면 우린 남 못지않게, 아니, 남들보다 더 큰 소리로 울부짖게 마련이지”(But were we burdened' with like weight of pain, as much or more would we ourselves complain)라고 말한다(2막 1장). 평형(equilibrium)은 라틴어로 aequus(같은)와 libra(천칭)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원래 평형은 저울(weight, balance) 등에서 무게를 달 물체와 추가 균형을 이루어서 수평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열평형, 화학평형, 방사(放射)평형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평형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statikos(정지한, 평형의)에서 statics(정력학, 靜力學), hydrostatics(유체 정력학)과 같은 단어가 생겼다. 영국의 역사가, 평론가, 정치가였던 머컬리(Macaulay, T. B. 1800-1859)는 그의 평론집(Ranke, 1851)에서 “잇달은 전쟁은 유럽의 균형을 위한 전쟁이었다.”(The war which followed was a war for the equilibrium of Europe)라고 서술하였다(2장). 미국의 캘빈주의 신학자, 목사였던, 에드워즈(Edwords, Jonathan 1703-1758)는 그의 저서인 자유 의지(Freed Will)에서 "Where there is absolutely no preferring or choosing, but a perfect continuing equilibrium there is no volition"라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equilibrium'은 이럴까 저럴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해머톤(Hamerton)은 그의 저서(Intelligent Life, 1875)에서 "It is best to preserve our minds in the state of equilibrium"라고 서술하였다. 여기서 'equilibrium'은 정신이나 감정이 잘 균형된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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