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나그네를 환대하는 유다인의 관습 오래 전부터 지중해 주변 지역에서는 나그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커다란 미덕이었다. 유다인들에게도 손님 환대는 특히 중요했다. 유다인들은 낯선 사람이 마을을 찾아오면 일일이 돌아가면서 대접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선에 가까울 정도로 나그네를 후대하는 바람에 부담이 되기도 했다. 예수님은 이런 팔레스타인 지역의 풍습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대접을 받지 말도록 미리 지시하셨다.(마르 10장 참조) 사람들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잡담이나 경솔한 행동이 따르게 될 것을 염려하신 것이다. 성서에서는 자주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율법의 중요한 규정으로 소개된다. 유다인들은 보통 여섯 가지 덕목을 최고로 여겼다. 손님을 환대하는 것, 병자를 문안하는 것, 하느님께 기도하고 명상하는 것, 율법을 열심히 배우는 것, 아이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것, 이웃의 좋은 점만을 보는 것 등이다. 그 중에서도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관습을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발견하게 된다.(창세 18장 참조) 아브라함은 어느날 자신 앞에 나타난 전혀 모르는 나그네를 자기 집에 모셔 후한 대접을 했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지나가는 나그네 세 명을 보고는 뛰어나가 땅에 엎드린다. 인사를 할 때 무릎을 꿇고서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서서히 몸을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은 근동의 특별한 인사 법이다(창세 48,12 참조). 극진하게 손님을 접대하는 풍습을 드러내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오히려 나그네들에게 간청하다시피 말했다. "손님네들, 물을 길어올 터인데 발을 씻으시고 나무 밑에서 쉬어가십시오. 요기도 하시고 피곤을 푸신 뒤 길을 떠나십시오." 손님을 맞아들인 아브라함은 빵을 굽고 기름진 송아지를 잡아서 극진히 대접했다.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아브라함도 같이 먹은 것이 아니라 그들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한 것은 하느님께도 후한 대접을 해드린 것과 같았다. 왜냐하면 성서는 야훼 하느님이 나그네 세 사람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잘 대접해서 결국 하느님께 큰 상급을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에선 예로부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병든 이들 등을 보잘것없는 이들로 꼽았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단순히 지나가는 나그네가 아니라 천사들이었다. "나그네 대접을 소홀이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히브 13,2).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 또 어떤 사건을 통해서, 손님으로 오신다고 보았다. 그들에게는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는 것은 단순한 애덕 행위가 아니라 신앙 실천이었다. 나그네를 하느님의 천사로 생각해 극진히 대접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엔 우리나라에도 나그네를 잘 대접했던 좋은 풍습이 있었다. 정감 있는 인간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도움과 관심을 바라는 나그네들을 도처에서 만난다. 천사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생각해 본다. [평화신문, 2002년 10월 2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