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이스라엘 남자들의 최고 신부감 얼마 전 신문에서 남성들이 결혼할 때 여성의 미모를 능력이나 성격보다 앞에 둔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젊은이들의 외모지상주의가 내용보다는 겉 꾸미기에 급급한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것 같아 씁쓸하다. 또한 젊은이들은 결혼은 무엇보다 현실이라 생각하고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것을 결혼의 우선 조건으로 고집한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배우자 감으로 남성은 능력과 직업이, 여성은 미모와 집안이 중요한 조건이 된다. 그런데 중국 산서성에서는 뚱뚱할수록 일등 신부감이라고 한다. 이 지방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신랑이 신부를 맞기 위해서는 신부 댁에 돈을 내야 하는데 체중이 무거울수록 그 금액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의 처녀들은 많이 먹어서 가급적 뚱뚱해지려고 애쓴다. 뚱뚱한 여성일수록 건강하고 일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젊은 남녀들의 배우자 감 선호도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그 기준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좋은 아내를 얻고자 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서 갖는 모든 남자들의 공통된 희망일 것이다. "훌륭한 아내를 가진 남편은 행복하여라, 그는 곱절은 오래 살리라."(집회 26,1) 훌륭한 아내를 가진 사람은 장수의 행복도 누린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가장 큰 기쁨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아내와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것이다. 곱절로 오래 산다는 표현도 부부의 화합이 건강의 샘이며 좋은 아내는 남편의 건강을 늘 잘 보살피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가정 안에서의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인생의 최고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남성들은 자신을 위해 '일생 동안 악의 없이 선한 삶을 살아줄 완전한 아내'를 찾고 싶어한다. 성격이 포악한 아내나 싸우기 좋아하는 성격 고약한 여자를 아내로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완전한 부인'이 되려면 어떤 자격조건이 있어야 했을까? 어떤 점을 가진 신부를 최고의 며느리 감으로 꼽았을까?(잠언 31장 참조) 요리와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아내, 농담이나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보내는 아내, 그리고 무엇을 꼭 해야 되는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사업에 대한 식견도 있으며 지혜롭게 사고 파는 방법을 아는 아내를 좋은 아내로 꼽았다. 그러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하느님께 대한 깊은 경외심을 갖고 남편에게 ‘알맞은 조력자’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아내가 훌륭한 아내이다. 성서는 반대로 좋지 않은 아내상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다. 부인이 바가지 긁는 것을 남편 머리에 빗방울을 계속 떨어뜨리는 것으로 비유했다(잠언 19, 13).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잠언 21,19)고 하면서 아내의 부드러운 성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다. "입이 험하고 수다스러운 아내는 진군을 알리는 나팔과 같아서 이런 여자와 사는 남자는 전쟁의 와중을 헤매는 것과 같다."(집회 26,27) 어리석은 아내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이 있는데 특히 말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다. 즉 수다스럽고 험한 말을 하며, 사람들 사이에 이간질을 하는 아내는 결국 자신의 남편에게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아내의 정숙함이란 우선 말과 행동에서 나타난다. 어리석은 아내는 혀를 잘못 놀려서 재앙과 불행을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좋은 아내는 큰 행운이다.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이 행운을 받는다."(집회 26,3) 성서에서 지혜롭고 정숙한 아내란 아름다운 용모와 착한 품성, 교양 있는 말과 행동, 자제력을 갖춘 여인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아내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주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이 행운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경외함이 좋은 아내를 얻는 길이 된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너무 외적인 조건에 집착해서 배우자를 고르는 세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차피 외모는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성격이나 천성은 웬만해서 바뀌기 어렵다. 이혼의 사유가 예나 지금이나 '성격 차이'가 제일 많은 것은 한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좋은 아내나 남편을 얻기를 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좋은 남편, 아내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평화신문, 2002년 12월 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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