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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장애의 원인은 그 사람의 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772 추천수1

[성서의 풍속] 장애의 원인은 그 사람의 죄?

 

 

조선시대 명종 때 정승이었던 상진(尙震) 대감은 발을 저는 절름발이를 보면 "저런, 저 사람 한 다리가 좀 길구먼" 했다고 한다. 짧은 다리를 보지 않고 긴 다리를 봄으로써 그 사람을 낙관적이고 긍정적 관점으로 본 것이다.

 

'장애인'이란 한마디로 몸이나 마음이 성하지 못한 사람이다. 몸이나 마음이 성하지 못하고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성서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사람들에게 장애현상이 생기면 이는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해 하느님이 주신 벌로 이해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벌하시고자 할 때 눈을 멀게도 하시는 분으로 이해했다(신명기 28,28).

 

그래서 유다인 사회에서 성한 사람들에게 장애인들은 격리와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온갖 불이익과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과부, 고아, 떠돌이, 나그네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잘 돌볼 것을 성경 곳곳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성한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그러한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다리던 구원의 때가 되면 모든 장애 현상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는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는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이사 35,6참조)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씀을 유다인들은 영적으로 이해하기도 했지만 또한 실제로 육체적 장애현상도 사라진다고 믿었다.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오셔서 "눈먼 사람이 보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구원의 복음을 듣는"(마태오11,5)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신 분"(마태오 8,17)이라고 고백했다. 여기서 말하는 허약함 속에 여러 가지 장애 현상이 들어가는 것은 마땅하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소경을 만나셨다. 그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저 사람이 눈이 먼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저 사람의 죄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입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두고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하고 묻는 것은 당시의 유다인들에게 당연한 질문이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병이 들거나 장애자가 되는 것은 자신이나 조상이 저지른 죄의 결과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기의 탓도 부모의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해서다"(요한 9,1-5 참조)라고 대답하셨다. 병자와 장애자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이해는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혁명적이었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 때문에 그 사람이 장애자가 되었다고 보는 일반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 때문이라 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장애 현상과 장애인을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보신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자기에게 있는 장애 현상을 오히려 하느님의 은혜를 입는 계기로 보았다.(2고린 12,5-12참조) 결국 성서는 심각한 장애로 인간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우선적으로 돌보심을 알려주고 있다. 하느님은 사람을 겉 모습에 따라 평가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겉 모습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사람의 속마음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신다.(1사무 16,7 참조)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저마다 어떤 점에서는 모두 다 장애 현상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에 드러나는 장애 현상을 갖고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가면서 조화롭게 살려는 노력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디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몇 해 전 한 중증 장애인이 한 말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저희들이 정작 고통스러운 것은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보는 편견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평화신문, 2003년 1월 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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