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유다인들의 집 -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6세기초, 모자이크, 산타 아폴리나레 누오본 성당, 라벤나, 이탈리아.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예수님께서 어느날 제자들과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이 방문하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예수님이 머무는 집의 문 앞까지 사람들이 빈틈없이 들어서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어쩌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네." "여보게 지붕으로 올라가세. 거기서 이 친구를 매달아 마당으로 내려보내세." 네 명의 친구는 중풍환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려보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하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곧 요를 걷어 가지고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몹시 놀라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르 2, 1-12 참조). 유다인들이 살던 집은 어떤 지붕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처럼 벗겨서 구멍을 내고 사람을 내려보낼 수 있었을까?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집의 지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유다인들의 집 지붕을 놓을 때 먼저 대들보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그 위에 작은 나무토막들을 촘촘히 올려놓고 다시 뒤엉킨 가시나무를 두텁게 깔았다. 그리고 회반죽을 해서 가시나무 위에 덮은 뒤에 다시 흙으로 평평하게 다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손으로 뜯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며, 가족이 생활하는 터전이다. 따라서 집은 시대와 문화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가난한 유다인들은 대개 동굴이나 진흙으로 만든 집, 그리고 방 하나짜리 집에서 살았다. 동굴 집은 고대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였다. 보통 동굴 입구는 튼튼하게 만들어서 짐승들의 침입을 막았고 동굴 안쪽에는 벽을 파서 침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흙으로 만든 집은 흙벽돌을 이용해서 지었다. 가족들은 보통 가축들과 함께 방 하나에서 모두 함께 지냈다. 성서에서 밤에 빵을 빌리러 온 친구에게 식구들을 깨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청을 거절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루가 11장 참조). 이런 진흙집은 비가 오면 빗물이 샜고 벽을 쉽게 뚫을 수 있어서 늘 도둑이 침입할 위험성이 있었다. 사람들은 벽을 좀더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갈대와 골풀을 섞어서 만들거나 기둥에 진흙으로 반죽을 해서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벽도 몹시 불완전하고 뱀이나 해로운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특히 농부들의 집 문은 대단히 낮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면 몸을 숙여야 했다. 낮은 문이 야생동물이나 적의 침입을 막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네 칸짜리 방을 가진 주택에서 살았다. 부자들은 자기 집에 지붕이 있는 긴 복도를 만들었고 집 중간에는 뜰을 만들었다. 부자들의 집에서 이 뜰은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뜰을 통해서 둘레에 있는 방들에 햇빛과 공기가 통하게 되어 있었다. 주변의 방들은 뜰로 통하는 문만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이 집에 들어오거나 집에서 나갈 때에는 뜰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잔치가 있으면 주로 집의 중간에 있는 뜰에서 이루어졌다. 집주인은 카펫이나 의자들을 준비해 손님을 맞았다. 일반적으로 유다인들은 보통 새 집을 지으면 입주하기 전에 새 집을 봉헌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이 의식을 거행하면서 하느님의 축복이 그 집과 그 집 안에 내리기를 기도했다. 이처럼 유다인에게 집은 인간 뿐 아니라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장소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평화신문, 2003년 8월 3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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