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가나안의 토착신, 바알 - 월신, 바알, 일신, 팔미라 출토, 루브르 박물관 소장, 파리.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성서에 보면 예언자들이 "야훼냐? 바알이냐?" 하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바알(Baal)은 어떤 신인가? 바알은 본래 풍년신으로서 가나안과 페니키아에서 많이 숭배했던 우상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특히 바알이 비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을 때 이들은 바알을 섬겼다. 바알은 ’주인’ 혹은 ’소유자’란 뜻을 가진 토지의 주인이며 풍요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바알을 섬기는 방법은 특이했다. 낮에는 바알을 섬기는 성녀들이 밤에는 창녀로 변하여 신전에서 참배자들과 음행을 하면 바알신이 성적으로 흥분하여 그의 아내와 성관계를 가질 때 비가 내린다고 믿었다. 이처럼 가나안의 토착민들이 믿고 있는 종교는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늘, 땅, 폭풍 등 자연현상을 신격화한 존재들을 신으로 믿었다. 그런데 이들의 종교는 이스라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왕국이 형성된 때까지 약 200년간을 판관시대라고 부른다. 이 판관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유목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정착하고 자유로운 연합체에서 하나의 통일왕국 체제로 넘어가는 갖가지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에 있는 가나안 여러 종족들과 싸움에서 살아 남아야 했다. 그리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가나안의 농경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가나안 종교와 이스라엘 야훼 종교간 갈등 문제였다. 이스라엘이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남는 문제는 가나안 종교와 싸움에 달려 있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종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삶 전체에 걸려 있는 문제였다. 가나안 토착민들의 예배는 마술로써 신들에게 영향을 끼쳐 땅의 비옥함과 풍작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유목 생활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지의 비옥함에 직접 의존하거나 풍요와 연결된 농업적 향연과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농사의 성공을 가져오게 하는 바알 종교의 매력에 끌렸고 많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예언자들은 야훼냐, 바알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백성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가나안의 바알 종교와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은 인간과 신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달랐다. 이스라엘 신앙에 따르면 하느님의 힘은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다. 하느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놀라운 힘으로 자기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해 내시고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특히 바알과는 달리 야훼 하느님은 성적 의식을 통하여 경배받지 않고 풍요의 주인이시기는 하지만 자연 세계의 변천 과정에 종속되는 풍요의 신은 아니다. 그러나 바알 종교는 사람이 신들을 마술로써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에 대한 돈독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버리고 그 주변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는 행동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근본적으로 외부 적군의 군사적 압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도덕적, 영적 상태가 부패한 데 있었다. 이스라엘은 신앙이 약화되고 도덕적으로 부패하게 될 때는 항상 적군의 침략을 받아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을 섬기면서도 하느님 야훼로부터 떠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야훼 하느님을 군사적 위기에 도움을 주는 분으로 생각했으며, 바알은 농사의 성공을 이루게 하는 신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야훼와 바알을 나란히 섬기는 데 큰 갈등을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판관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혼합주의 경향을 잘 반영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 종교 형태는 오늘날에도 가장 위험하고 유혹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미신과 우상에 대한 유혹이 강하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03년 9월 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