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성서는 어떤 언어로 쓰여졌는가? - 히브리어로 기록된 토라를 읽는 율사, 이스라엘. 자료제공=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신학교에서 처음 히브리어를 배울 때 교재를 보고 무척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지렁이(?)가 지나간 흔적과 같은 난해한 히브리어 글자를 보고 공부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현재까지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가장 많이 읽혀지는 책은 성서일 것이다. 또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가장 많은 배척을 받는 책이기도 하다. 현재 성서는 어떤 나라에서도 모국어로 번역되어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성서는 원문의 성서를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성서 머리말에 보면 어떤 원본(Text)에서 번역된 것인지를 명시하고 있다. 구약성서 원문은 대부분 기원전 10-12세기경 구약성서 시대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과 글인’성서 히브리어’(Biblical Hebrew)로 쓰여졌다. 이것은 오늘날 유다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히브리어의 모체에 해당되는데 현재의 히브리어와는 다르다. 이 언어는 아람어나 바빌론어와 같이 셈족어에 속한다. 구약성서 원문인 히브리어는 22개의 자음으로만 표기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읽을 때에는 그 단어의 뜻에 따라서 모음을 붙여서 읽었다. 자음 22자로만 이루어진 히브리어는 기원전 18세기 셈족이 발명한 언어로서 페니키아인들을 통해 기원전 10세기 희랍인들에게 전해졌다가 로마인을 거쳐 유럽 알파벳의 기초가 되었다. 그런데 구약성서 중에서 몇권(특히 제2경전)은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구약성서 제2경전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여졌다. ’코이네 그리스어’란 1세기 이후 사용되던 ’통속적 그리스어’란 뜻이다. 신약성서를 기록할 때 사용한 언어는 바로 ’코이네 그리스어’였다. 이 언어는 기원전 1세기에서 2세기에 지중해에서 두루 쓰였던 언어였다. 이 ’코이네 그리스어’는 기원전 330년경부터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가 전파된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로마제국 안에서 쓰이던 일상용어였다. 신약성서 27권은 대부분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저자가 친히 썼거나 혹은 구술하여 쓰게 한 그 원본은 분실되고 수사본들만이 전해지고 있다. 신구약 성서에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말고도 또 하나의 언어가 있다. 바로 아람어이다.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친족 관계에 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아람어는 구약성서 시대 후반부터 초대 교회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사용하던 언어였다. 구약의 경우 다니엘서와 에즈라서 일부가 성서 본문을 아람어로 기록해 놓았다. 아람어는 셈족 언어에 속하는 것으로 시리아사막 유목민들이 쓰던 언어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약의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아람어를 사용하신 흔적을 군데군데 살펴보게 된다. 그러나 성서 언어의 주종은 어디까지나 히브리어와 아람어이다. 우리는 성서 언어가 사람들이 사용하던 통속 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신구약 성서가 하느님 말씀이지만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성서 언어는 본래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 주고받던 일상적인 언어와 글이었다. 신구약 성서의 언어가 통속 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것은 하느님의 계시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이것은 곧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소중한 지침이 된다. 성서는 하느님 말씀이며 동시에 인간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서는 시대와 장소,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그러면서도 성서는 동시에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로 기록되어 있다. 성서의 역사적 성격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평화신문, 2003년 10월 5일,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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