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기쁨과 생명의 축제, 부림절 - '아하스에로스와 앞의 에스텔', 필리피노리피, 1440~50년, 콩데미술관, 프랑스.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부림절’은 모세오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유다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지키는 민족 축일이다. ’부림’이란 주사위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불’(Pur)에서 유래되었다. 에스델서에 나오는 하만이란 인물이 유다인들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할 때 그의 부하들이 주사위를 던져 날을 정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에스델 3,7-11 참조). 그런데 주사위로 택해진 유다인 멸망의 날이 오히려 기쁨과 영광의 날이 되었다. 부림절은 유다인들에게는 고통과 죽음이 기쁨과 생명으로 바뀌고, 원수 손에서 해방된 축제 날이므로 잔치를 벌이고 선물을 주고받는 축제를 벌인다. 아하스에로스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127개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었다(에스델 1장). 왕국의 수도인 수사성에는 ’모르드개’라는 유다인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용모가 빼어난 에스델이라는 양녀가 있었다. 에스델이 아하스에로스의 왕후가 되자 모르드개도 궁궐 대문에서 일을 보게 되었다. 그때 하만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궁궐 대문에서 일하는 모든 신하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그런데 유독 모르드개는 하만 앞에 무릎을 꿇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유다인이어서 하느님 이외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절하지 않는다는 신앙적 이유 때문이었다. 모르드개에게 앙심을 품은 하만은 어느날 왕에게 유다인들의 죄상을 거짓으로 보고하고 왕의 이름으로 온 지방 수령들에게 칙서를 발송했다. 유다인들을 학살하고 재산을 몰수하라는 내용이었다. 모르드개의 다급한 전갈에 에스델은 비장한 마음으로 답했다. "빨리 수사성에 있는 유다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사흘 동안 저를 위해 단식기도를 올려 주십시오. 저도 이곳에서 함께 단식기도를 하겠습니다. 그런 뒤에 어전에 나가 왕을 뵙겠습니다. 그러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에스델은 죽음을 무릅쓰고 유다인들을 학살하려는 하만의 음모를 폭로했다. 에스델의 지혜로 오히려 하만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에스델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민족을 구했다. 오늘날에도 유다인들은 에스델의 용기와 지혜로 얻은 자신들의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히브리력으로 마지막 달인 아달월(12월) 14, 15일을 ’부림절’이라 하여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에스델 왕후에 얽힌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유다인들에게 이 축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마지막에는 악이 멸망하고 정의가 승리하리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탄원을 들어주시고 그들을 살려주셨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래서 부림절은 작은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들 마음 속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기쁨의 축제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정권에게 탄압받던 유다인들은 히틀러를 하만에 비유하며 부림절의 의미를 되새겼다고 한다. 부림절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의식은 에스델서를 읽는 것이다. 에스델서를 읽기 전에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을 낸다. 이때 바치는 감사 기도는 하느님이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조상들을 구해 주시고 자신들을 살아 있게 하심을 감사드리는 내용이다. 그리고 에스델서의 규정에 따라 부림절에 유다인들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이나 술 등을 선물하고 적어도 두명 이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선물한다. 그리고 부림절이 축제와 기쁨의 날이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특별히 마련된 부림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이날만큼은 유일하게 심하게 취할 정도로 술을 먹도록 허락하고 있다. 부림절은 유다인 축제이지만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고 있다. 에스델이 일생일대 결단을 내려야하는 순간 어떤 태도와 마음 자세를 가졌는지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우선 금식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은총을 구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졌다. 연약한 한 여인으로 무섭고 두려웠지만 에스델은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자신의 소명을 수행했다. "죽게 되면 기꺼이 죽으리라"고 했던 그녀의 말에서 비장함마저 엿보인다(에스델 4,16 참조). 우리 일생은 크고 작은 결단으로 이어져 있다. 신앙의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에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에스델은 잘 가르쳐 주고 있다. [평화신문, 2003년 11월 30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