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그리스도의 피는 구원과 희생의 상징 - '유다의 성작', 은, 예루살렘.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한국인의 '보신(補身)시장'은 2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만약 아시아에서 곰이 멸종된다면 그건 한국 사람 때문일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산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뱀, 개구리, 반딧불이, 가재, 잠자리 등은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야생동물에 관한 잘못된 속설과 지나친 보신문화는 생태계에도 위협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야생동물 혈액을 섭취할 경우 각종 기생충이나 잠복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건강에 치명적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야생동물 피를 그대로 섭취하다 목숨을 잃는 어이없는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예로부터 육체 안을 순환하는 피는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생명을 유지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옛날 사람들은 피를 생명이 변화된 것, 생명의 원천이라 생각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승에 의하면 피는 인간 안에 있는 신적 요소였다. 인간은 희생된 신들 피에서 창조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힛타이트인들은 피를 병이나 전쟁 등 나쁜 악의 힘과 함께 저승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 전례에서 희생된 짐승 피를 제단에 뿌리든지, 제단 네 모퉁이에 바르거나 제단에 쏟았다. 이처럼 짐승 피를 흘리는 것은 인간 피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이후 낯선 광야를 떠도는 떠돌이 목축 생활을 해야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기에 음식에 관해 까다로운 규정을 정해 두었다(레위 11장 참조). 그러나 레위기에 나오는 음식에 관한 까다로운 율법은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레위기에는 고기의 피를 그대로 먹지 말라고 하였다(레위 7,26 참조). 또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을 때에 까다로운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처럼 성서에서 음식에 대해 자세한 규정을 기록한 것은 우선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또 피를 먹지 말라는 가르침에는 생명존중 사상이 깃들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피 속에 생명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먹는 행위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모하게 피를 흘리는 것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행위로 여겼다. 인간이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함으로써 인간은 하느님 모상으로 인격과 품위를 지키고 쓸모없어 보이는 생명까지도 존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 피를 먹지 말라는 법규는 이스라엘 백성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의식주였다.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니다. 음식생활은 그 나라 생활 환경, 국민성, 의식과 종교, 문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일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성서에서 피는 속죄와 희생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월절에 집 문설주에 칠한 어린양의 피는 속죄와 구원의 힘을 갖는다. 그래서 이집트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보낸 천사들은 이 피의 표시가 있는 집에는 죽음의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갔다(출애 12,1-14 참조).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의 계약은 희생된 짐승과 피 위에서 성립되었다. 그러나 신약의 새로운 계약은 예수님 피를 통해 성립된다(마르 14,24 참조). 인간이 죄를 용서받는 것은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 죽음을 예고하시고 "이것은 내 피로 맺은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Ⅰ고린 11,25 참조)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피는 인류 구원의 상징이 된다(마태 26, 28 참조).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주님 성찬에 참여하면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의 구원과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다. [평화신문, 2004년 2월 2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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