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풍속] 해방을 제공하는 희년 법

- 축제 중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중동지방.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이스라엘 백성은 7년마다 안식년을 지냈다. 그리고 안식년이 일곱번 돌아오는 50년째에는 '희년'이라고 이름 붙인 큰 축제를 성대하게 지냈다(레위 25장 참조). 

이처럼 구약시대에는 50년마다 '해방의 해'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오십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레위 25,10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해 '희년에 관한 법'이라 부르는 독특한 법을 주셨다. 

이 희년 법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이 희년에는 사람뿐 아니라 농사를 짓는 토지의 안식도 선포되었다. 

"오십년이 되는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낼 해이니, 씨를 심지도 말고 절로 자란 것을 거두지도 말며 순을 치지 않고 내버려 두었는데 절로 열린 포도송이를 따지도 말라"(레위 25,11). 

이처럼 희년의 가장 큰 의미는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 하느님이라는 선포였다. 하느님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고 하느님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의 진정한 해방도 가능하게 된다. 

인간 해방은 다름 아닌 원래 인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주권을 돌려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토지를 비롯한 소유물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나 노예상태의 인간을 해방하는 행위들의 근본 이유는 하느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희년 법은 사회 구조나 제도나 능력에 의해 불평등해진 사람들에게 새 출발을 위한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 주었다. 이처럼 희년 법은 불평등한 사회를 개혁하는 역할을 했다. 

희년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부여해 줌으로써 부와 신분 세습에 의해 생겨나는 사회 불평등 요인을 제거해 주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희년 법에는 자유와 해방이라는 출애굽 정신이 생생하게 들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희년 법을 시행할 때마다 자신들 삶에서 출애굽 사건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희년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 백성으로 부르시고,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기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희년은 모든 사람이 해방을 체험하고 모든 것이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는 해였다. 

구약의 출애굽 사건에서 비롯된 희년 정신은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를 거쳐 초대교회 공동체 삶에서도 실현되었고, 지금 우리에게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희년 법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의 민족이라 해도 부족이나 개인별로 능력 차이가 있었다. 이로 인해 신분 차이가 나고 재산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성서에 보면 각 부족이나 가문, 개인들 사이에는 서로 많이 가지기 위한 갈등과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이 희년 법이 각 부족과 가문의 갈등과 다툼을 최소화시켜 주기도 했다. 그래서 이 희년 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형제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법이었다. 

희년 법이 비록 구약시대 법이라고 해도 개인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오히려 더 필요한 법은 아닐까.

[평화신문, 2004년 4월 18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