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물 긷기와 장 보기는 유다 여성들 의무 -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15세기, 유화, 24*17cm, 쥬앙 드 플랑드르, 루브르박물관, 르랑스 파리.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인간생활에서 물은 필수적이므로 태고시대 인류는 강변에 취락을 형성해 거주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에 있는 샘 또는 하천 등에서 마실 물을 구했기에 인공적 우물이 필요없었다. 그후 우물 파는 법을 알게 되자 비로소 들로 나가 농사를 짓거나 목축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자연수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땅을 파내려가서 지하수를 이용하는 우물을 필요로 하게 됐다. 특히 사막지대에서 우물은 생명과 관계되는 중요한 것이었다. 척박한 사막에서 살아남고 온갖 다른 부족들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려면 우물을 사수해야 했다. 성서에 보면 우물 때문에 부족간 전쟁을 치르는 일이 다반사였다(창세 26,15-25 참조). 유다 여성이 집 밖에서 하는 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물 긷는 일과 시장 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유다 남성들은 물 긷는 것을 아주 천한 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가 물을 긷는 것을 노예나 아니면 생계를 위해 물을 긷는 물장수나 하는 행동으로 치부했다. 유다 여성들은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게 여럿이 함께 어울려서 우물가를 찾았다. 한낮에는 날씨가 무더워 물 긷기가 어려웠다. 성서에서 보면 우물에서 많은 만남과 사건이 생긴다. 팔레스티나 지역 우물은 단순히 물 긷는 곳만이 아니었다. 사막을 지나는 여행객이나 가축을 치는 목자들은 자신이 마시는 것은 물론 짐승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반드시 우물을 찾아야 했다. 따라서 우물은 여행객이 목을 축이고 휴식할 수 있는 장소였다. 우물가는 자연스럽게 혼기를 앞둔 처녀와 총각이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아브라함의 종이 주인집 아들 이사악의 아내를 구하러 갔다가 하느님께 신부감을 구하는 기도를 한 것도 바로 우물가에 도착해서였다(창세 24,11-13 참조). 또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러 지친 몸을 잠시 쉬려고 앉으신 곳도 우물가였다. 여기에서 물을 길으러 나온 사마리아 여자에게 먹을 물을 청하셨다. 재미있는 것은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온 시간은 정오쯤이었는데, 보통 그 시간에는 날씨가 더워 물을 긷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 이목을 피해 물을 길으러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을 걸어오니 여인의 태도가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요한 4,1-15 참조). 유다 여인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시장에서 장 보기였다. 성서시대 시장은 주로 성문 앞 광장이나 입구 등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성문은 평소에도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다. 자연히 성문 앞은 상인들이 좌판을 벌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성문은 관청에서 일반인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가끔 성문 앞에 모여 어떤 문제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예루살렘 성문 중에는 재래 시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성문 앞 시장에는 빵과 생선을 파는 가게, 그리고 옷을 파는 포목점이나 과일과 즉석 요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했다. 시장에는 매일 찬거리를 마련하러 나오는 여인들을 위해 갓구워낸 빵부터 과일이나 치즈, 계란 등 아주 다양한 물품들이 갖춰져 있었다. 유다 여인들은 왜 매일 장을 보아야 했을까? 그것은 바로 팔레스타인 지역의 무더운 기후 때문이었다. 날씨가 덥다 보니 음식이 금방 상하고 말리거나 소금을 뿌리는 것 이외에는 달리 저장할 방법이 없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가정에서는 어떤 음식이든 하루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유다 여인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장을 봐야 했다. 이래저래 유다 여성들은 고달픈 하루를 보내야 했다. [평화신문, 2004년 11월 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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