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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담보와 보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270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담보와 보증

 

 

빌린다는 것

 

엘리사 예언자에게 어떤 부인이 와서 하소연한다(2열왕 4,1-7). 남편이 죽었는데 채권자가 와서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엘리사가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집 안에 무엇이 남아있는지 알려주시오." 하고 말한다. 기름 한 병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 여인에게 엘리사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한다. 그 지시대로 하자 기름이 계속해서 나오는 기적이 일어나 빚을 갚게 된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빚을 냈는데 그것을 갚지 못한 채 죽은 것이다. 지불 기한이 지났든 지나지 않았든, 빚을 준 사람은 채무자가 죽었으므로 그 빚을 정리하려고 나선다. 그런데 그 가난한 과부에게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채권자는 그의 아들들을 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그들을 담보로 잡는 것이다. 그 아들들은 어떠한 식으로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채권자의 소유로 넘어갈 뻔하였는데 예언자가 도와준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을 담보로 끌고 가는 행동이 당시에는 위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불법 행위였다면 엘리사 예언자가 그 채권자와 직접 담판을 지었을 것이다. 빚 준 이가 하려는 행동은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다른 방식으로 유족들을 곤경에서 구해준다.

 

사람들은 늘 유무형의 것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함께 살아간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모두 모자라는 데가 많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 이 주고받음의 한 형태가 임시로 주고받는 것 곧 빌리는 것이다. 우리말의 ’빌리다’처럼 몇몇 언어에서는 한 동사가, 도로 받기로 하고 한동안 쓰게 내어주는 것과, 돌려주기로 하고 받아쓰는 것을 함께 뜻한다. 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든 저렇게든 주고받아야 함을 가리키는 언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빌리는 것은 한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흔히 제때에 돌려받거나 돌려주는 것에 대한 안전 장치가 따르기 마련이다. 채권자의 동의 아래, 또는 법의 허용 속에 채권자의 강요로 채무자가 내놓는 안전 장치, 구체적으로는 물건이나 사람을 ’담보’라고 한다. 그리고 채무자가 빚을 갚을 것을 보장하고 또 갚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가 그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담당하겠다고 약속하는 제삼자의 행동을 ’보증’이라고 한다. 이러한 보증도 일종의 ’담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컨대 채무의 담보로 채권자에게 미리 주거나, 입찰 또는 계약을 맺을 때에 계약 이행의 담보로 내는 돈을 ’보증금’이라고 한다.

 

성서의 사람들도 서로 빌리면서 살았다. 그러면서 무엇을 담보로 내놓기도 하고 반대로 남의 것을 담보로 잡기도 하며, 남을 위해서 보증을 서기도 하였다. 이제 성서 세계의 ’담보’와 ’보증’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담보

 

"너는 이웃에게 무엇이든지 꾸어줄 경우, 담보물을 잡으려고 그의 집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너는 밖에 서있고, 네가 꾸어줄 사람이 밖으로 담보물을 가지고 나와야 한다"(신명 24,10-11). 이 법규에서 볼 수 있듯이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주로 세간 같은 것을 담보로 잡았다. 그러나 가장 흔한 담보물은 옷이었다(욥 22,6; 24,9; 아모 2,8). 그리고 옷은 대개의 경우 목에서 발목까지 이르는, 밤에는 이불로도 쓰이는 겉옷이었다(출애 22,25-26; 신명 24,13). 그 밖에 채무자의 개인적인 물건도 담보물로 이용되었다. 창녀 차림을 한 다말은 나중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받기로 하고서, 유다의 인장과 그것을 목에 거는 줄과 지팡이를 담보로 잡은 다음, 유다에게 몸을 판다(창세 38,16-18).

 

이 같은 규정이나 이야기에서 담보의 기능과 성격을 알 수 있다. 인장과 지팡이나 겉옷 자체는 값이 별로 나가지 않는 물건이다. 빌리는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담보의 크기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담보물은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에 채권자가 그 물건을 처리하여 빚의 일부나마 변상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장과 지팡이는 그 주인을 대표한다. 그리고 인구가 많지 않던 그 옛날, 특히 겉옷은 누구 것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창세 38,32-33 참조). 그래서 담보는 상징적인 성격을 지닌다. 누가 어떠한 물건을 담보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곧바로 물건 주인이 담보물을 가진 사람에게 빚을 졌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담보는 채무자가 반드시 빚을 갚겠다는 표지로 자기의 ’분신’ 같은 물건을 내놓는 가시적(可視的) 약속과 같다.

 

남에게서 돈이나 물건을 빌린다는 것은 채무자가 어려운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담보 설정과 관련하여 채무자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법규들이 제정되었다. 먼저 원칙적으로 채권자가 아니라 채무자 자신이 담보물을 결정한다. 그래서 남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는 꾸는 사람이 물건을 내올 때까지 집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신명 24,10-11). 그리고 그 물건이 채무자가 밤에 덮고 자는 겉옷이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한다(출애 22,25-26; 신명 24,12-13). 더 나아가서 사람들이 끼니를 준비할 때마다 쓰는 맷돌 같은 것은 그 윗짝 하나라도 담보로 잡아서는 안된다(신명 24,6).

 

이러한 담보의 원래 기능과 성격이 늘 지켜지지는 않는다. 담보는 곧잘 힘있는 채권자들이 법을 거스르지 않는 한도 안에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없는 고아나 과부의 나귀나 소가 담보로 끌려가기도 한다(욥 24,3). 그리고 부동산은 본디 담보로 잡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기근 때에는 식량을 사거나 세금을 내기 위해서 밭, 포도원, 과수원,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이 벌어진다(느헤 5,3.5).

 

더 나아가서 서두의 엘리사 이야기에서처럼, 채무자의 자녀들이 담보로 잡히기도 한다(느헤 5,5 참조). 이러한 경우의 담보는 변질된 형태에 속한다. 빌릴 때가 아니라 지불 기한이 넘었을 때에 담보를 잡는 것이다. 그리고 담보물은 채권자가 그냥 가지고 있다가 채무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데, 사람을 담보로 잡을 경우에는 그를 종으로 부린다(느헤 2,5). 채권자가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채무자로 하여금 더욱 분발하여 빚을 갚도록 압박을 넣는 것이다. 빚을 갚을 힘도 없고 담보로 내놓을 식구도 없을 경우에는, 채무자가 자신을 채권자나 다른 사람에게 종으로 파는 일이 벌어진다(레위 25,39.47; 신명 15,12 참조).

 

 

보증

 

채무자가 빚을 제때에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나서서 빚을 대신 갚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법에는 보증이나 보증인에 관한 규정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증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거나 아주 드물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상생활의 일부였다. 지혜문학에서 보증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유다가 요셉의 보증인이 되겠다는 창세 43,9와 44,32, 그리고 하느님께 자기를 위하여 보증을 서주십사고 청하는 시편 119,122도 참조). 지혜문학은 오랜 세월 동안 쌓인 삶의 지혜를 축약적인 말로 표현해 낸다. 삶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가 지혜문학의 일차적 관심사이다. 그래서 실생활의 체험이 깊이 스며들어 있는 지혜문학의 말씀에서는, 도덕적/종교적 가치 판단과 무관한 행동 지침이 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보증이 그 가운데 하나이다.

 

보증은 당사자들끼리 악수를 함으로써 성립된다(욥 17,3; 잠언 6,1; 11,5; 17,18). 보증인이 자신을 담보로 내놓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내놓았다가 손해를 보고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이스라엘에서도 흔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보증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보증을 서면 고생이기 때문에(잠언 11,15) 남이 한다고 생각없이 그 일을 하여(17,18; 22,26), 깔고 자는 요까지 빼앗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한다(22,27). 그리고 어쩌다가 보증을 서게 되었으면 곧바로 당사자에게 가서 졸라서라도 그 짐을 벗으라고 촉구한다(6,1-5). 반면에, 자기가 채권자일 경우에는 담보와 보증을 확실히 해두라고 권면하기도 한다(20,16; 27,13).

 

이 마지막 권면이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증을 서는 일이 때때로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집회서는 보증에 관해서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집회 29,14-20).

 

집회서의 저자 역시 보증과 관련된 현실을 직시한다. 보증이 '성공한 사람들을 수없이 망쳐놓고 세도가들을 외국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자기를 위해서 보증을 서주었으면, 목숨을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호의를 잊지 말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착한 사람은 그러한 위험에도 여전히 이웃을 위하여 보증을 서주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보증을 오히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도로 삼다가 망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자기 능력의 한도 안에서 보증을 서고,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아줄 각오를 하라고 타이른다(8,13).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보증서는 일과 관련하여 하나의 원칙을 제시한다. "네 힘 닿는 대로 이웃을 도와주어라. 그러나 스스로 망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29,20).

 

이렇게 보증은 예나 지금이나 공동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면서도 늘 위험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집회서 29,20의 말씀을 지금도 하나의 원칙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1999년 10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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