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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빛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474 추천수1

성서의 세계 : 빛

 

 

"빛이 생겨라"

 

"너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나 달이나 별 같은 어떤 천체를 보고 유혹을 받아, 그것들에게 경배하고 그것들을 섬겨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주 너의 하느님께서 온 하늘 아래에 있는 다른 모든 민족에게 주신 몫이다"(신명 4,19). 신명기 저자의 이 말처럼 해와 달과 별들은 옛날 사람들에게 종교적으로 큰 ’유혹’의 대상이었다.

 

해는 어떠한 어김도 없이 날마다 떠올라 어둠을 물리치고,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따스하게 온 세상을 비추어준다. 달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없어졌다가 나타나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면서, 은은한 빛으로 어두운 밤을 비추고 절기를 가르쳐준다. 별들은 무질서하게 흩어져있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보이고 모두 똑같아 보이면서도 하나하나 특징을 드러내면서 밤 하늘을 현란하게 장식해 준다.

 

우리 현대인들과는 달리 자연과 매우 가까운 삶을 영위하던 고대인들에게, 이러한 해와 달과 별들은 신비롭고 경외로운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은 모두 이 천체들을 신으로 여겨 섬겼다. 위의 신명기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많은 민족의 종교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천체들이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신명 17,3; 2열왕 17,16).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이다(창세 1,14-18). 그래서 해와 달과 별들은 인간의 숭배를 받는 대상이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한 분뿐이신 하느님을 찬미해야 하는 것들이다(시편 148).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아무런 조건 없이 혜택을 누리도록 그것들을 마련해 주셨다. 그래서 전도서의 저자는, "정녕 빛은 달콤한 것/태양을 봄은 눈에 즐겁다." 하고 노래할 수 있었다(11,7).

 

이스라엘인은 또 특이하게도 빛물체[發光體]들과 빛을 분리하여 생각하였다. 해가 솟기 전에 벌써 어둠을 물리치는 서광 또는 여명이 이러한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빛과 광원(光源)을 구분함으로써 다른 민족들과 달리, 빛을 발하는 천체들을 신이 아니라 피조물로 자리 매김하는 일이 더 수월하였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천체들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에 앞서,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신다. 우주에 울려퍼진 하느님의 첫 말씀이 바로 "빛이 생겨라."이다. 하느님께서 이 말씀으로 세상에 마련하신 첫번째 것이 바로 빛이다(창세 1,3). 그리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창세 1,4).

 

 

"하느님은 빛이시다"

 

이렇게 빛은 세상 창조의 근본이다. 창조는 어둠과 혼돈에(창세 1,2) 질서와 생명을 불러일으킨 하느님의 업적이다. 그래서 빛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내리신 모든 좋은 것, 행복과 구원, 특히 모든 선의 본질인 생명의 상징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빛을 보다’는 삶을, ’빛을 보지 못하다’는 죽음을 뜻한다(욥 3,16; 시편 49,20). 그리고 "어찌하여 그분(하느님)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하고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욥이 한탄하듯이, ’빛을 주다’는 ’살게 하다’를 의미한다(욥 3,20). 이리하여 어둠이 죽음과 죽음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처럼, 빛도 생명의 동의어가 된다(욥 15,5-6.18; 잠언 13,9).

 

더 나아가 사람을 행복과 구원, 그리고 생명으로 이끄는 모든 것이 빛이라고 불린다. 곧 하느님의 말씀(시편 119,105), 구약성서(2베드 1,19), 율법(지혜 18,4), 하느님의 공정(이사 51,4), 지혜(지혜 7,19), 정의(지혜 5,6), 그리고 의인들의 길과(잠언 4,18) 부모의 가르침까지(잠언 6,23) 모두 빛이 된다.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보나이다."라는 시편(36,10) 말씀처럼, 생명의 근원은 하느님이시다. 생명의 바탕이 되는 빛의 원천도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이러한 빛으로 인도하는 앞의 모든 것 역시 결국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사실 가장 먼저 창조된 빛은 다른 어떠한 피조물보다도 하느님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약성서에서 더욱 분명하게 표현되듯이, 하느님의 나라는 ’광명의 나라’로서(골로 1,12), 그분께서는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신다"(1디모 6,16. 그리고 시편 104,2; 다니 2,22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빛을 사람들에게 비추어주신다. 이스라엘인은 이 빛을 ’하느님 얼굴의 빛’이라고 부른다(시편 4,7; 44,4). 그리고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라고 시편 저자가 노래하듯이(시편 27,1), 빛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단순한 피조물의 범주를 넘어선다.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느님 본질의 일부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성서의 준비를 거쳐(2사무 22,29; 이사 10,17; 60,1.19-20; 미가 7,8), 마침내 신약성서에서 ’하느님은 빛이시고 하느님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1요한 1,5). 하느님께서는 곧 ’빛들의 아버지’로서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의 원천이시다(야고 1,17).

 

 

"나는 세상의 빛이다"

 

이렇게 빛은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개입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는 상징이 된다. 위에서 인용한 요한 서간의 신비주의적 표현에 따르면 하느님은 빛 그 자체이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는 메시아 역시 빛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민족들의 빛’으로 세우신다(이사 42,6; 49,6). 이 ’주님의 종’이 세상의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줄 것이라고 제3이사야는 예언한다(이사 42,16).

 

메시아 시대는 곧 빛의 시대이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 큰 빛을 보나이다. /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 빛이 비치나이다"(이사 9,1).

 

구약성서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빛의 상징은 신약성서에 와서 전적으로 예수님과 직결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인용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된다(마태 4,16).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마르 1,1). 특별히 요한 복음서 저자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일치를 강조한다. 이러한 일치는 ’빛’에 관한 생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때가 차기 전’(갈라 4,4) 곧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빛이 간헐적으로 이 세상에 비추었다. 자연에서 낮과 밤이 번갈아들듯이, 이 ’옛’ 시대에는 하느님의 빛과 그것에 대항하는 어둠이 인간 세상에서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교차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 ’새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이 이 세상에 항구히 비추게 된다. 하느님께서 빛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느님과 하나 되시는 그분의 아드님 역시 빛이실 수밖에 없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요한 1,9). 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8,12). 그리고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빛’의 활동은 복음을 통하여 계속된다(사도 26,23; 2고린 4,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도 이제 빛이 된다. 빛이 하느님과 그분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한 본질을 이루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빛이 한 본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5-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사람들에게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이 ’빛의 세계’로 들어간 사람들이다(에페 5,8). 이들은 이제 신약성서 여러 곳에서 강조되듯이 ’빛의 자녀들’이다(루가 16,8; 요한 12,36; 에페 5,8; 1데살 5,5). 하느님께는 어떠한 어둠도 있을 수 없다(1요한 1,5). ’빛의 자녀들’에게도 어둠은 상극이다(1데살 5,5 참조). 빛 자체이신 하느님께는 빛을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다(1요한 1,6). 그래서 늘 어둠의 위협 속에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자신이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빛’ 속에 걸어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빛’ 속을 걸어가는 것은 앞서가시는 예수님을 따름이다(요한 8,12). 그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그분의 가장 큰 계명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1요한 2,9; 3,18).

 

이렇게 ’빛의 자녀들’은 내적으로 빛을 보존하고 밝힘과 동시에, 외적으로도 자기들의 빛을 비춤으로써, 더욱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생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그들은 ’빛의 무기’를 갖추어야 한다(로마 13,12). 이 ’무기’는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또 이 복음에 따른 사랑의 삶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빛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빛의 열매’를 내놓아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에페 5,9), 곧 참된 생명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라 빛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도 생명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0년 2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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