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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 성서의 세계: 포도나무, 포도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5,849 추천수1

성서의 세계 : 포도나무, 포도밭

 

 

가나안 땅과 포도나무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은 먼저 남쪽에서부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모세는 그 땅과 주민과 농작물이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정찰대를 보낸다(민수 13장). 그러면서 그 땅의 과일도 가져오라고 분부한다. 정찰대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헤브론 부근 에스골이라는 골짜기에 이르러, "포도송이 하나가 달린 가지를 잘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둘러메고"(민수 13,23) 돌아온다. 모세는 또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인들에게 풍요를 약속하면서, 그곳에는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신명 6,11). 사실 포도와 올리브, 그리고 밀을 비롯한 곡식이 가나안의 삼대 농산물이다(신명 11,14).

 

이렇게 가나안 땅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였다. 이집트에는 이미 기원전 3000년쯤부터 포도주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성서의 한 전통에 따르면, 노아가 처음으로 포도를 심고 포도주를 빚는다(창세 9,20-21). 이는 매우 일찍부터, 문명의 초기부터 근동에서는 포도를 재배하고 그 열매로 술을 만들어 마셨음을 뜻한다. 이 지방은 우리 나라와는 반대로 여름에 비가 적고 고온·건조하여 포도를 재배하기에 알맞은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포도가 근동에서부터 기후가 같은 지중해 연안 전체로 퍼져 나간다.

 

 

포도 재배

 

포도 재배 과정은 이사야가 ’포도밭 노래’에서 잘 보여준다.

 

"내 친구에게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하나 있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짜는 확도 만들었네.

그리고 나서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네"(이사 5,1-2).

 

가나안 땅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사이에 동서로 펼쳐진 이즈르엘 평야와 지중해를 따라 북남으로 좁게 뻗은 해안 평야 외에는, 거의가 높지 않은 산들이 연이어진 산악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주로 이 산악 지방에서 살았다. 그래서 많지 않은 평지에서는 곡식을 경작하고, 언덕이나 산등성이에서는 포도를 경작하였다. 포도를 심으려면 가능한 한 기름진 곳을 고르는 것이 당연하다. 가나안 지방은 또 돌이 많기 때문에 땅을 갈면서 자갈들도 잘 골라내야 한다. 그리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종자와 상태가 좋은 포도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 역시 두말의 여지없이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정성껏 포도밭을 일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른 설비들도 갖추어야 한다. 여우나 멧돼지 같은 들짐승(아가 2,15; 시편 80,14), 그리고 도둑을 막기 위해서(예레 49,9) 돌로 담을 두르거나 나무로 울타리를 쳐야 한다. 또한 우리 나라의 원두막 구실을 하는 간단한 "초막"을 포도밭 안에 세운다(이사 1,8). 그러나 위의 노래가 말하듯, 사정이 허락하면 초막 대신에 경비가 적지 않게 드는 반영구적인 돌탑을 짓는다. 수확철에는 포도밭 주인이나 일꾼이 아예 이 탑에서 살기도 한다. 그리고 탑의 일층은 포도를 짜는 확을 설치하거나 외양간으로 이용한다. 김매기 외에도(이사 5,6), 포도가 익기 시작하면 가지치기를 한다. 포도가 맺지 않은 줄기를 잘라내야, 다른 줄기들이 더 건강해져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포도를 수확하면 날로도 먹고, 일부는 끓여서 꿀처럼 진한 즙으로 만든다. 그리고 포도를 기름과 물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린 다음 압축하면 건포도가 된다. 이 과자는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여행자나 군사들의 양식으로(1사무 25,18; 2사무 6,19; 1역대 12,40 등), 또 잔치 음식으로 쓰인다(이사 16,7). 이 과자는 특히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우상 숭배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호세 3,1. 그리고 예레 7,18; 44,19 참조). 수확한 대부분의 포도는 확에 넣어 발로 밟아 짠 다음에 발효시켜 포도주로 만든다. 그렇게 하여 가나안 땅은 인접한 시리아와 함께 ’물보다 포도주가 많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포도가 주요 농산물이기 때문에 구약성서에서는 이와 관련된 법 조항들도 볼 수 있다. 우선 포도밭을 가꾸고 나서 아직 수확해 보지 못한 사람은 병역을 면제해 준다(신명 20,6). 포도 농사가 그만큼 중요하였던 것이다. 수확할 때, 한 번 지나간 것이나 바닥에 떨어진 것까지 거두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가난한 이들, 곧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레위 19,10; 신명 24,21). 포도밭 역시 다른 밭들처럼 안식년에는 그냥 놀려야 한다. 땅도 안식년을 지키는 것이다(출애 23,10-11; 레위 25,2-5). 그리고 포도밭에는 다른 종류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된다(신명 22,9. 레위 19,19도 참조). 그러나 이 규정은 늦어도 신약성서 시대에는 강제력을 상실한 것 같다(루가 13,6).

 

 

하느님과 포도나무와 이스라엘

 

이렇게 포도는 가나안 땅의 주요 농산물로서 주민들의 삶과 밀접히 관련될 뿐만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재배의 모든 과정이 여러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풍부하다. 그래서 포도나무와 포도밭은 성서 전체에서 상징과 표상으로 애용되었다.

 

우선 포도는 가나안 땅의 풍요를 드러내는 대표적 산물이다(창세 49,1; 신명 8,8; 호세 10,1). 그리고 자기의 포도밭을 가꾸면서 외적이나 도적의 위협 없이 포도나무 밑에서 쉬는 것이 평화와 행복의 상징이 된다. 그래서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 치하의 태평 성대를 이렇게 서술한다. "솔로몬이 살아있는 동안 내내 유다와 이스라엘에서는 … 사람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마음놓고 살았다"(1열왕 5,5. 그리고 미가 4,4; 즈가 3,10 참조). 포도나무가 또 사방으로 줄기를 뻗는 모습에서, 에제키엘은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유다의 임금을 이 나무에 비유한다(에제 17,1-8). 그리고 시편 저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의 번영과 행복을 노래하면서, 그러한 이들의 아내를 "풍성한 포도나무"에 비기기도 한다(시편 128,3). 포도나무는 여자 애인이나 약혼녀를 뜻하기도 한다(아가 1,6.14; 2,15; 8,11-12).

 

끝으로 포도나무·포도밭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도 쓰인다. 포도 재배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농사이기 때문에, 구약성서의 시인들은 하느님과 그분 백성 사이의 관계를 이러한 상징으로 그리기를 즐겼던 것이다. 포도나무 또는 포도밭은 이스라엘이고 하느님은 주인이시다. 앞에서 인용한 ’포도밭 노래’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뽑으신 선택, 그리고 당신의 백성에게 들인 정성을 잘 드러낸다. 이사야는 또 하느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인 나는 이 포도밭을 지키는 이. / 시간마다 물을 주고 / 아무도 해치지 못하도록 / 밤낮으로 지킨다"(27,3).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번영을 누리게 되는 모든 역사가 포도나무로 서술되기도 한다(시편 80,9-12). 하느님께서 포도밭 주인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포도밭 일꾼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이 일꾼들이, 당신의 포도밭을 망쳐놓았다고, 곧 당신의 백성을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고 한탄하기도 하신다(이사 3,14; 예레 12,10).

 

선택된 민족의 상태도 포도나무로 표현된다. 하느님께서는 좋은 포도나무를 골라(호세 9,10) 당신 밭에 심으신다. 공력과 정성을 쏟아 그것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하신다. 그런데 이 나무는 엉뚱한 과일을 내놓는다(이사 5,2; 예레 2,21).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정의와 공정’의 열매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불의와 억압’의 열매를 맺은 것이다(이사 2,7). "들포도"만 내놓는 포도나무·포도밭은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내리시는 징벌도 이러한 상징으로 묘사된다(이사 5,3-6).

 

 

그리스도와 포도나무와 그리스도인

 

예수님께서는 구약성서의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으신다. 우선 복음 선포의 핵심인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시는 비유에 포도밭을 이용하신다. 이 "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 이 "나라"에는 회개하는 이들만 들어간다는 사실을 밝히는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 등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로써’(마태 21,33-44; 마르 12,1-12; 루가 20,9-19)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새로운 하느님 백성을 드러내신다. 소작인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예언자들을 죽여왔다. 마침내는,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분의 외아드님이신 당신마저 죽일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께서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당신의 포도밭을 맡기시리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의 영성과 신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상징은 요한 복음 15장 1절에서 10절까지의 것이다. 하느님은 포도나무 주인,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 그분을 믿는 이들은 가지이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서 자양분을 받을 때에만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0년 8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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