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풍속] 유다인의 천막생활 지금도 중동지역 사막에 가면 천막생활을 하는 베드윈족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의 삶은 천년이 휠씬 넘는 시간의 전통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그들의 소박하고 가난한 삶은 문명사회에 길들여지고 물질에 찌든 현대인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신약성서에서 보면 사도 바오로의 직업은 '천막을 짜는 기술자'였다(사도 18,3 참조). 이 천막을 짜는 기술은 사도 바오로가 선교활동을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교를 하면서 신자들의 물질적 도움을 사양하고 천막을 짜고 얻은 수입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런데 당시 천막을 만드는 기술은 고수입을 보장해주는 직업이었다. 천막은 전쟁이나 유목민들에게 꼭 필요한 생활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의 이 직업은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천막은 이스라엘 역사, 유다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유다인들에게 천막생활의 의미는 그들 조상인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약속과 그에 대한 신앙으로 일관된 생애였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약속만을 무작정 믿고 곡창지대인 하란을 떠났다(창세 12장 참조). 이제 아브라함의 삶은 안정된 집을 떠나 불안정한 천막생활로 변화됨을 의미했다. 이젠 정착 삶이 아니라 나그네 삶이 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 고향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계속 천막생활을 하였다. 천막생활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하면서 생활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브라함은 한때 이집트까지 가서 살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삶은 정착 없이 천막에 사는 나그네 생활이었다. 거처를 정하지 않은 채 유랑생활을 해야 했던 아브라함을 비롯한 유다인의 여러 조상들의 집은 천막이었다. 또 유다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까지 광야 생활에서도 천막은 대표적 거주지였다. 이처럼 천막은 유다인의 질곡의 역사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다. 천막은 유다인들에게 우선 간편함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천막은 허물었다가는 다시 세우고 뜯었다가는 다시 지을 수 있었다. 천막생활은 살림 도구들도 언제라도 쉽게 꾸릴 수 있도록 아주 소박하고 간단했다. 많은 소유물은 천막 생활에 불편하다. 유다인들은 일반적으로 나무나 짐승 가죽, 혹은 옷감처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천막을 만들었다. 살림이 비교적 넉넉할 경우에는 아내를 위해서 따로 천막을 마련하기도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천막 바닥 가운데에 모닥불로 보온을 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열두 지파가 땅을 분배받고 본격적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도 유다인들은 여전히 천막을 거처로 이용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는 천막이 성전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다. 또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여행할 때도 화려한 천막을 숙소로 사용했다. 천막은 유다인들의 소중한 안식처 구실을 했고 영성적이고 역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일년에 한차례씩 유다인의 큰 축제인 초막절이 돌아오면 사람들은 집 밖이나 옥상에 나뭇가지를 이용한 임시 거처를 만들어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선조들의 광야생활을 기념했다. 유다인들이 천막생활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여호수아 시대 이후였다. 천막생활과 나그네의 검소한 삶은 물질만능인 오늘날 사회에 더욱 필요한 영성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04년 6월 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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