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12 - 하느님의 봉사자가 된 까마귀
베네딕토 성인 생명의 은인 - 베네딕토 성인은 까마귀 덕분에 독살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전해진다. 베네딕토 성인이 활동했던 이탈리아 수비아코 수도원 입구. 잘 잊어버리는 사람에게 흔히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고 농담을 한다. 까마귀가 건망증이 심하다기보다는 "왜 까맣게 잊었느냐"는 뜻으로 발음의 유사성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까마귀는 작은 동물을 공격해 눈을 쪼아먹고 썩은 고기를 즐겨 먹는 새다. 본래 까마귀는 잡식성으로 인가 부근에 집을 짓고 곡식이나 열매, 작은 짐승 등을 주로 먹는다.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 색깔이고 '까욱까욱'하고 우는 거친 울음소리도 유쾌하지 않아 흉조로 알려졌다. 그래서 산촌과 어촌에 사는 사람들은 주위에서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며 부지런히 쫓는다. 반대로 북미 인디언이나 게르만 족은 까마귀를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새로 귀하게 여겼고, 영국 황실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겨 사육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까마귀를 결코 길조로 여기지 않지만 옛날 설화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흉조가 아니었다. 견우와 직녀 설화를 보더라도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오작교를 만들어 주는 것은 까마귀와 까치다. 까마귀와 인연이 깊은 인물은 베네딕토 성인(480~547년)이다. 성 베네딕토는 1964년 10월24일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년 재위)에 의해 유럽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된 분이다. 그를 상징하는 문장은 깨어진 컵, 까마귀, 종, 그리고 숲 등이다. 그의 문장 안에 까마귀가 포함돼 있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탈리아 수비아코에서 3년 동안 동굴 생활을 하며 은수자 로마누스가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지냈다. 그의 성덕이 주위에 널리 알려져서, 그는 비코바로(Vicovaro)에 있는 한 수도자 공동체로부터 그들의 원장이 돼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했다. 그런데 이후 그들은 베네딕토 성인의 엄격한 규칙에 반대해 마침내 성인을 독살하려고 공모한다. 베네딕토 성인이 독이 든 포도주 잔에 십자성호를 긋는 동안 잔이 깨지고 독이 든 빵을 먹으려는 순간 까마귀가 날아와 그 빵을 물고 가 목숨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베네딕토 성인은 다시 수비아코로 돌아와서 수도원을 세웠고 이곳은 당시 그리스도교 영성과 학문의 중심이 됐다. 성경에서 까마귀는 검은 깃털과 동물의 시체를 먹는 습관(잠언 30, 17)으로 부정하고 가증한 흉조로 전해진다. 율법에서 까마귀는 부정한 짐승으로 규정해 유다인들이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레위 11, 15). "올빼미와 고슴도치가 그곳을 차지하고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리라. 그분께서는 그 위에 '혼돈의 줄'을 펴시고 '불모의 추'를 내리시리라"고 해 저주받은 땅을 까마귀가 머무는 땅으로 언급했다(이사 34, 11). 까마귀가 활동하고 있는 땅은 썩은 시체가 많은 땅이고 저주받은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까마귀가 사람에게 유익한 도구,'하느님의 봉사자'로 사용된 예도 있다. 그중에도 곤경에 처한 엘리야 예언자에게 까마귀가 음식을 날라다준 이야기는 유명하다. 엘리야는 아합 왕을 피해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그런데 까마귀들이 엘리야에게 아침 저녁으로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1열왕 17, 6 참조). 한편 까마귀는 새 중에서 가장 효성이 지극한 새로 알려져 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성을 일컫는 말 가운데 ‘반포지효 (反哺之孝)란 고사성어가 있다. 반포란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는 뜻이다. 또한 새끼 까마귀는 어미 까마귀가 앉은 윗가지에 앉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의 눈을 까마귀가 쪼아 먹는다(잠언 30, 17)고 했는가보다. [평화신문, 2006년 8월 13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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