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20 - 용맹스럽고 신성한 동물 말 - 마테우스 메리안(Matthaus Merian, 1593~1650), '닫혀진 홍해와 이집트인의 죽음', 채색동판화, 독일. 가을을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천고마비 계절이라 한다. 왜 하필 말일까? 말은 워낙 운동량이 많고 몸 움직임이 부지런해 여간해서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말마저도 살이 찌는 계절이라 하니 얼마나 좋은 때인가. 얼굴이 긴 사람을 말에 비유하는데 이것은 말의 치열이 길기 때문이다. 말은 전 세계에서 널리 사육하고 있는 중요한 가축 중 하나다. 옛날에는 인간 식량을 위한 사냥 대상이었지만 후에 군마나 밭갈이에 긴요하게 이용됐다. 최근에는 주로 승마로 이용한다. 말의 몸은 달리기에 알맞도록 네 다리와 목이 길다. 말은 고대부터 농업과 수레를 끄는 교통수단으로 사용했으며 후에는 전쟁에서 사용했다. 말은 다른 동물에 비해 용맹성이 뛰어나다. 전쟁터에서 진격 북소리와 나팔 소리가 나면 다른 동물은 겁에 질려 도망가지만 말은 북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용맹하게 달린다. 동양 풍속에서 말은 제왕 출현의 징표였고 초자연적 세계와 교류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고구려 시조 주몽도 말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혼인 풍속에서 신랑은 백마를 타고 갔다. 이것은 말과 관련된 태양신화와 천마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말은 태양을 나타내고 태양은 남성을 의미한다. 흔히 말띠 해에 태어난 사람은 웅변력과 활동력이 강해 매사에 적극적이라 생각했다. 말에 대한 한국인 관념은 '신성한 동물'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신성한 존재, 하늘의 사신, 중요 인물 탄생을 알리고 알아볼 줄 아는 영물, 죽은 사람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 등 희망을 가져다주는 인물들이 타는 동물로 인식했다. 말은 성경에서 모든 전쟁 중에 등장한다. 성경에서 말은 용맹과 전쟁, 재난을 상징한다. 말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인 뜻대로 신속하게 잘 달려가는 것이다. 나귀에 비해 몇갑절 더 주인 뜻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호흡이 맞는 말과 기수는 마치 한몸처럼 움직인다. 고대 전쟁부터 근세까지 말은 기병으로 사용됐다.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선 필수적인 것이었기에 말은 군사적 힘과 국가적 안전의 상징이 됐다(시편 20, 8). 기마부대는 오늘날 전차부대에 비유할 정도로 전투력이 높아 전쟁에서 중요하게 활동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하느님은 군마를 그리 높이평가 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임금은 군마를 늘리거나, 그것을 늘리려고 백성을 이집트로 돌려보내서는 안 되었다(신명 17, 16). 이스라엘 군대는 기마와 병거를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신명 20, 1).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님은 기마와 병거보다 우월하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느님은 파라오 기마와 병거를 수장시키시고 한명의 군인도 살아남지 못하게 하셨다(탈출 14, 28). 말이 가진 특징으로 공격성과 완고함, 미련함을 들 수 있다. 구약 성경은 종종 이 특징들을 이스라엘 백성에 비유해서 언급했다. 예를 들면 예레미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을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지 않고 싸움터로 내닫는 말에 비유했다(예레 8, 6). 백성들 풍기문란을 "그들은 욕정이 가득한 살진 수말이 되어 저마다 제 이웃의 아내를 향해 힝힝거린다"고 꼬집었다(예레 5, 8). 또한 건장한 말을 찾아 헤매는 암말처럼 이방국가와의 동맹을 추구한다고 비난했다. 죄인들과 우둔한 자들을 채찍을 맞아야 하는 말의 미련함에 비유하기도 했다(잠언 26, 3). [평화신문, 2006년 10월 2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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