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23 - 교활한 동물 여우 - 퓌비 드 샤반느, '세례자 요한의 참수', 1896년, 캔버스에 유채, 런던 국립 미술관, 영국.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살았니? 죽었니?" "살았다!" 이때 뒤돌아 앉아있던 술래가 아이들을 향해 쫓아가고 나머지는 모두 우르르 도망을 간다. 어린시절 동네에서 아이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놀았던 전래놀이다. 우리나라에는 여우고개라고 불리는 고개가 많다. 이런 지역은 대부분 인적이 드물고 산세가 험한 곳으로 예로부터 여우의 출몰이 잦았던 곳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여우고개는 서울의 남태령(南泰嶺)이다. 지금의 남태령은 경기도 과천과 서울을 잇는 큰 길이지만 옛날에는 한두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 이 골짜기에 천년 묵은 여우가 살았는데 사람으로 변신한 여우가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해쳤다고 해서 여우골로 불렸다고 한다. 여우는 귀가 뾰족하고 몸집은 중간 크기의 개와 비슷하다. 다리는 비교적 짧고 주둥이는 좁다. 긴 털이 특징인데 특히 꼬리 부분에 털이 많다. 여우는 쥐·토끼를 비롯한 작은 포유동물, 일부 조류, 알, 열매 등을 먹는다. 야생 여우의 배설물에서는 여우보다 몸집이 더 큰 동물의 뼈 조각도 발견되는데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썩은 고기도 먹기 때문이다. 잡식성 동물인 여우는 갓 매장한 무덤을 파헤쳐 썩은 시체를 먹기도 한다. 장례를 치르고 사흘만에 무덤을 찾아보는 것은 여우가 시체를 찾아 무덤을 파헤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여우가 무덤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횟가루와 흙을 섞어 관을 매장하기도 했다. 여우는 교활한 동물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거짓 예언자들을 폐허 속의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다(에제 13,4). 그러나 구약시대 사람들은 몸집이 가벼운 여우는 사자에게 괴롭힘과 고통을 당하는 미소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는 것을 보고 암몬 사람 토비야는 "저들이 아무리 성을 쌓아 보아야, 여우 한 마리만 올라가도 저들의 돌 성벽은 무너지고 말거야”(느헤 3,35) 라며 놀리는 장면이 있다. 삼손이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에도 여우가 등장한다. 삼손은 여우 삼백마리를 잡아 꼬리를 서로 비끄러매고서는 그 두 꼬리 사이에 홰를 하나씩 매달아 불을 붙였다. 이 여우들을 필리스티아인들의 곡식밭으로 내보내 곡식 가리 뿐 아니라 베지 않은 곡식과 올리브 나무까지 모두 태웠다(판관 15,4-5). 여우는 교활하고 의심이 많은 동물이다. 그래서 여우는 길을 가다가 힐끔 힐끔 뒤를 잘 돌아본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교활한 여우에 비유하셨다(루카 13,31-32).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를 빼앗아 살았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잘못을 여러 차례 지적하자 헤로데는 그를 옥에 가두고 목을 베어 죽게 했다(마태 14,3-12). 헤로데는 또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를 칼로 쳐 죽게 했다. 그리고는 유다인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번에는 베드로를 체포해 옥에 가뒀다.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구출되기도 했다(사도 12,6-19). 헤로데의 이런 행실을 여우에 비유하신 것이다. 시어머니에게는 곰같은 며느리보다 여우같은 며느리가 그나마 낫다고 한다. 이처럼 여우는 심술이 많고 교활한 동물이지만 또한 재치있고 지혜로운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잘 살려면 가끔은 '귀여운 여우짓'도 해야 하지 않을까. [평화신문, 2006년 11월 12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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