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42 - 돌무화과나무 - 돌무화과나무 열매 맛은 무화과만은 못해 가축 사료로 많이 사용했지만 단맛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으로 사용했다. 신약성경에서 세관이었던 자캐오는 키가 작아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보게된다. 최영심 작, '예수님과 자캐오', 1991년, 유리화, 서울 대치2동성당. 돌무화과나무는 팔레스티나와 시리아와 동부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나무이다. 돌무화과나무는 잎과 껍질이 뽕나무를 닮았지만 열매는 오히려 무화과를 닮았다. 그러나 그 열매는 더 작고, 숫자는 훨씬 많다. 또 나무의 여러 곳에서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열매는 어린 가지나 묵은 가지 할 것 없이, 심지어 굵은 줄기에서도 달리기도 하고 1년에 여러 번 열매를 맺는다. 열매 맛은 무화과만은 못해 가축 사료로 많이 사용했지만 단맛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으로도 사용했다. 따라서 돌무화과나무는 특별하게 관리했던 나무다(1역대 27,28). 돌무화과나무는 더위나 건조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라지만, 산악지대의 추운 기후에는 견디지 못한다. 돌무화과는 잎이나 나무에 상처를 내면 흰 즙이 나온다. 이것은 무화과나무와 공통된 성질이지만, 잎과 열매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돌무화과 줄기는 우리나라 오동나무처럼 연하고 가벼워 가공하기도 쉽다. 또 수분과 부패에 견디는 힘이 좋아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관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이집트 고분에서 B.C. 3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화과나무 미이라 관이 발견됐다. 이밖에도 가구, 문짝, 상자 등을 만드는 데 널리 쓰였으며 가벼워서 천장재로도 이용했다. 돌무화과나무는 수명이 긴 나무이기도 하다. 사막에서는 그늘이 생명을 지켜주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유목민은 그늘을 위해, 또는 식량을 얻으려 돌무화과나무를 즐겨 심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생명 나무로 숭배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다산과 풍요를 바라며 돌무화과나무 밑에 과일, 곡식, 채소, 꽃, 물 등을 바치고 제사를 지냈다. 돌무화과나무는 가나안이나 예리코 등에 아주 흔한 나무였다(1열왕 10,27). 구약성경에서 돌무화과나무 하면 아모스 예언자가 떠오른다.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로서 예언, 집필 문학 시대를 연 이스라엘 최초의 예언자였다. 아모스 예언자는 남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18km 떨어진 작은 촌락 드고아에서 태어났다. 드고아는 사방이 언덕으로 둘러싸인 유다 광야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염소나 양떼 목축업이 가능했던 지역이다. 아모스는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아모 7,14). 옛날 유다인들은 무화과나 돌무화과의 열매가 덜 익었을 때 열매 중앙부의 일부에 구멍을 내서 벌레가 알을 낳기 전에 이 구멍을 통해 밖으로 도망가게 했다. 신약성경에서 돌무화과나무는 단연 자캐오를 상상할 수 있다. 세관이었던 자캐오가 키가 작아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보게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돌무화과나무는 높이와 둘레가 커서 흔히 길가에 심어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는 녹음수였고 쉽게 올라 갈 수 있었다(루카 19,4). 또한 돌무화과나무는 크고 뿌리가 깊은 나무였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초대교회 전설에 의하면 카이로 근처 마타리아에는 오래된 돌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헤로데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할 때 이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회복했다고 해 성스러운 나무로 전해진다. [평화신문, 2007년 4월 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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