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동식물] 56 - 미련하고 어리석은 타조 타조는 현재 살아있는 조류 가운데 몸집이 가장 크다. 타조라는 이름은 낙타와 비슷한 새라는 뜻이다. 타조는 긴 모가지, 튼튼한 다리, 그리고 모랫 바닥에 앉는 앉음새까지 낙타와 비슷하다. 타조의 다리는 튼튼하고 발가락은 둘이며, 부리는 짧고 편평하다. 목이 길고 머리높이가 높으며 시력과 청력이 아주 뛰어나 야생 타조에게 접근하기는 무척 어렵다. 걸을 때는 시속 4㎞ 정도이나 적이 가까이 오면 시속 60㎞ 이상 속도를 낸다. 타조는 자신의 알을 잃어버릴 정도로 주의가 부족한 동물이라 유럽에서는 '부주의'의 대명사로 쓰였다. 타조는 쫓기면 모래에 머리를 숨기고 적으로부터 도망쳤다고 생각한다. 또 중세기에는 타조가 철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타조가 소화를 돕기 위해 작은 돌을 삼키는 습성을 잘못 본 것이라 생각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타조의 깃털을 신을 나타내는 문장에 사용했다. 정의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타조는 날개가 퇴화해 날지 못하지만 달리는 속도가 빨라 시속 90km까지 낼 수 있다고 한다. 자연적으로는 아프리카 건조한 대초원, 수목이 드문 대초원, 반사막지대에서 적은 무리를 지어 살며, 여러 가지 식물성 먹이와 작은 동물들을 먹는다. 타조는 텃새이며 물을 찾아 이동한다. 일반적으로 일부다처로 수컷 한 마리가 암컷 3∼5마리를 거느린다. 수컷의 흰 장식 깃은 중세에는 기사의 헬멧 장식으로 이용됐고, 19세기에는 부인용 모자의 장식으로 판매됐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부인용 모자 장식이 사라졌으며, 현재는 깃털보다 가죽의 수요가 많아져 고급 가방, 핸드백을 만들려고 사육한다. 타조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아라비아 반도, 시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몇십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기도 하고, 얼룩말이나 아프리카의 영양류와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시리아,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옛날부터 이 새의 날개를 장식물로 사용한 것은 조각에 그 자취가 남아 있다. 구약성경에선 타조를 부정하고 어리석은 새로 보고 있다(레위 11,16; 신명 14,15). 타조는 로마와 그 외 지역에서 잡아먹기도 했으나 이스라엘인들은 음식으로 먹지 않았다. 욥기에도 아라비아에 사는 이 새의 동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욥 30,28-29). 타조가 밤에 우는 소리는 광야의 적막을 깨고 멀리 울려 퍼진다(미카 1,8). 타조의 습성은 욥기에 자세히 쓰여 있다(욥 39,13-18). 사막의 타조를 인정 없는 동물로도 언급한다. "승냥이들도 가슴을 헤쳐 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건만 내 딸 백성은 사막의 타조처럼 매정하게 되어 버렸구나"(애가 4,3). 타조가 알을 모랫바닥에 낳아서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타조는 새끼를 돌보아 들짐승의 습격도 막아준다. 타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에 서식한다. 그래서 멸망한 바빌론을 타조들이 사는 곳으로 언급한다. "사막의 짐승들이 그곳에 깃들이고 그들의 집들은 부엉이로 우글거리리라. 타조들이 그곳에서 살고 염소 귀신들이 그곳에서 춤추며 놀리라"(이사 13,21). [평화신문, 2007년 7월 1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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