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동식물] 61 - 이방인의 축제 때 사용한 담쟁이덩굴
덩굴 관 쓰고 이교 제사에 참석 서울 명동에 있는 서울대교구 주교관 외벽에는 담쟁이덩굴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여름이면 담쟁이덩굴이 온 벽면을 푸르게 장식해 운치를 더해 준다. 담쟁이덩굴은 뜨거운 여름 한낮의 달아오른 복사열을 모두 흡수한다. 가을이 되면 검푸른색 작은 열매를 맺어 작은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이렇게 담쟁이덩굴은 사시사철 좋은 환경을 사람에게 선사하는 식물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담쟁이덩굴을 담에 올리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흙담에 담쟁이덩굴을 올리면 비가 스며들어 붕괴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담쟁이덩굴을 타고 뱀이나 지네, 해충이 집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금했다. 담쟁이덩굴은 포도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식물로 길이는 20m 가량 뻗어 바위나 담 벽에 붙어 자란다. 덩굴손은 잎과 마주나며 갈라져서 끝에 흡착근이 생기고 한 번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으며, 많은 곁가지가 난다. 가을에는 밝은 주홍색으로 단풍이 든다. 담쟁이덩굴 잎은 포도나무 잎처럼 끝이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다. 아주 어린 줄기나 포기 잎들은 완전하게 세 장으로 갈라진 것들이 많아 서로 다른 식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서양 담쟁이덩굴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 그리스에 부모 말씀을 잘 듣는 착하고 아름다운 처녀 히스톤이 있었다. 그녀는 부모가 정해준 한 청년과 얼굴도 보지 않고 약혼을 했다. 히스톤은 먼 발치에서 그의 키 큰 그림자만 보았다. 그런데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서 약혼자는 전쟁터로 나갔다. 여러 해가 지나도 히스톤이 기다리던 청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쳐서 그만 죽고 말았다. 죽음을 앞둔 히스톤은 자신을 약혼자의 키 큰 그림자가 지나간 바로 그 자리에 묻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해 봄, 히스톤의 무덤에서 담쟁이덩굴이 돋아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담쟁이덩굴은 그리움이 담겨있는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담쟁이덩굴을 지금(地錦)이라고도 하는데, 땅을 덮는 비단이라는 뜻이다. 한방에서는 담쟁이덩굴의 뿌리와 줄기를 '지금'이라는 약재로 산후 출혈을 비롯한 각종 출혈, 골절로 인한 통증 등에 쓴다. 줄기에서는 달콤한 즙액이 나와 감미료로 이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담쟁이덩굴은 병충해가 별로 없어서 농약을 치는 번거로움도 없다. 도시에서 담쟁이덩굴은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된 삭막한 담장이나 벽을 단장하고 시원하게 해준다. 성경에는 마카베오 하권에 등장한다. "달마다 임금의 생일이 되면 끌려가서 지독한 강요를 받아 이교 제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또 디오니소스 축일이 되면, 담쟁이덩굴로 엮은 관을 쓰고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행렬을 하도록 강요받았다"(2마카 6,7). 유다인들이 이방인들 축제 때 강제로 부정한 고기를 먹고 담쟁이풀로 엮은 관을 써야했으니 유쾌하게 기억하는 식물은 아닌 것 같다. [평화신문, 2007년 8월 2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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