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동식물] 63 - 힘과 능력의 상징인 잣나무
하늘 나라에 있을 나무 어릴적 시골에서 할아버지께 들은 우스갯소리다. 어떤 사람이 가게에 갔다. 손으로 잣을 가리키며 "이거 뭐요?"했다. 주인이 "자시요"하기에 잣을 실컷 먹고, 이번에는 갓을 가리키며 "이건 뭐요?"하니까 "가시오" 하기에 돈을 안내고 그냥 가버렸다는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싱거운 이야기인데 그때에는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잣나무와 소나무는 대부분 함께 자란다. 그래서 송무백열(松茂柏悅)이란 말이 생겼는데 소나무가 무성해서 그 옆에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즉 친구가 잘되고 출세하는 것을 기뻐하고 축복해준다는 말이다. 잣나무 목재는 대단히 아름다우며 재질이 가볍고 향기가 있다. 더욱이 가공이 쉬워 고급 건축재나 관으로 애용된다. 또 잣은 그냥 먹거나 기름을 짜거나 잣죽 등 각종 요리에 이용된다. 잣죽은 필수지방산이 많고 소화가 잘 되어 환자의 회복음식으로 많이 쓰인다. 잣은 성질이 온화하고 변비를 다스리며 기침 가래에 효과가 있고 폐의 기능을 돕는다. 또한 허약체질을 보호하고 피부에 윤기와 탄력을 주는 효과가 있다. 잣을 해송자(海松子)라 부르기도 하는데 신라의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잣을 갖고 가서 팔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도 잣을 명나라에 보낸 기록이 있다. 잣과 관련된 민속놀이로 음력 정월 14일 밤에 하는 잣불놀이가 있다. 내피를 벗긴 잣 열두 개를 바늘이나 솔잎에 각각 꿴 후 불을 붙여서 열두 달에 비겨보는 것이다. 잣의 불빛이 밝으면 그 달의 신수가 좋고 불빛이 약하면 신수가 나쁘다고 점치는 것이다. 잣나무는 이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회전식 원통형 인장에 새겨져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나무였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잣나무를 거룩한 나무로 간주했다. 잣나무는 상록수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잣나무를 죽은 자의 나무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잣나무에서 사후 생명의 지속에 대한 희망을 느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동번역 성경에서 잣나무는 레바논의 수려한 나무로 언급돼 있다. "너는 특사를 보내어 주를 조소하며 말하였다. 내가 나의 병거를 타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노라고. 또 높은 산을 정복하였으며, 레바논의 막다른 봉우리까지 올랐노라고. 레바논의 우람한 삼목과 가장 훌륭한 잣나무를 내가 베어 제쳤노라고. 레바논의 평온한 안식처, 그 숲과 초원을 내가 다 밟았노라고"(2열왕 19,23). 이사야 예언자도 잣나무를 레바논 영광을 드러내는 가장 훌륭한 나무로 비유하고 있다(이사 37,24). 성경에서 잣나무는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아모리인들은 그 키가 잣나무 같았고 힘이 상수리나무 같았으나, 나는 그 열매를 가지째 땄고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아모 2,9). 비잔틴 미술에서 잣나무는 생명의 나무로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잣나무는 십자가의 테두리에 붙어 있거나 또는 하늘의 예루살렘에 있는 나무로 표현된다. [평화신문, 2007년 9월 9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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