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예언자 예레미야 (2) - 예레미야의 선포 메시지와 고백록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준다.... 뽑고 허물며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기 위함이다.”(예레 1,9-10)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면서 그의 입에 담아주신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당시 남왕국 유다의 백성들에게 선포해야 할 메시지의 내용을 집약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생활을 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의 경고(‘뽑고 허물며 없애고 부수며’), 하지만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구원하시리라(‘세우고 심기 위함’)는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1.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경고 1) 광야시절의 하느님 백성 먼저 예언자는 그 옛날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절실하게 체험했던 광야시절을 회상한다. 목말라하던 그들에게 물을 주시고, 배고픔에 울부짖던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내려주셨던 하느님,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 길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끌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느님을 체험하였던 광야시절! 이스라엘이 오로지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따랐던 그 시절을 예레미야는 ‘신혼시절’이라 표현한다.(2,2) 나아가 그때 이스라엘이 “주님께 성별된 그분 수확의 만물”(2,3)로써 하느님께 드렸던 순정과 사랑을 후손인 지금의 남왕국 유다 백성들도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2) 남왕국 유다 백성들의 삶 그러나 예레미야 당시 남왕국 유다 백성들의 삶은 어떠했던가? 과연 하느님의 참된 백성으로서 그분께 충실한 삶을 살았는가? 그렇지 못했던 백성들의 삶을 예언자는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2,8) 먼저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의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제사를 주관하며, 스스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사제들이 “주님께서 어디 계시는가”하고 찾지도 않을 뿐더러 그분을 몰라본다. 그리고 하느님의 율법을 날마다 읽으며 하느님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그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들을 돌보아야 할 목자(임금에 관한 규정인 신명 17,14-20 참조)들은 오히려 하느님께 반역하고 있으며, “제 부정한 이익을 돌보고 무죄한 이의 피를 흘리며 억압과 폭력을 일삼는 일에나 쏠려 있다.”(22,17) 또한 하느님께서 입에 담아주신 말씀을 그분의 이름으로 전해야 할 예언자들은 우상인 바알에 의지하여 예언하거나 “거짓 환시와 엉터리 점괘와 제 마음에서 나오는 거짓말”(14,14)만 늘어놓고 있다. 나아가 일반 백성들도 성전에서 이방 신들을 섬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들을 속이고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다.: “모두가 제 이웃을 속이고.... 약탈에 약탈을, 거짓에 거짓을 더하며 그들은 나를 알아모시기를 거절한다.”(9,3-5) 이러한 백성들의 그릇된 삶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저버린 결과임을 예언자는 지적하고 있다. 비록 이방인들이 하느님이 아닌 우상들을 섬길지라도 제 신들을 바꾸지 않는데, 이스라엘은 참된 神이신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란 영광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과 바꾸었던 것이다.(2,11) 결국 이스라엘이 저지른 악행은 生水(참된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저버린 것이며, 제 자신을 위해 마음이 갈라져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웅덩이”(2,13)를 판 것이다. 3)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깨뜨림 이러한 백성들의 삶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했던 시나이 계약을 스스로 깨뜨려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예레미야는 선포한다.(11,1-17) 본래 시나이 계약은 쌍무계약(雙務契約)이다. 다시 말해서 시나이 계약은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한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삶의 규범으로 일러주신 십계명을 지키겠다고 맹세함으로써 맺어진 계약으로써, 이제 이스라엘은 십계명의 내용인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구원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는 계약의 한 당사자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언제나 한결같이 시나이 계약에 충실하셨음을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께서는 광야여정을 마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도록 손수 이끌어 주셨고(여호수아서), 이방민족의 손에 넘어가 울부짖을 때 판관들을 통해 구원해주셨으며(판관기), 왕조시대에는 예언자들을 보내시어 그릇된 길로 들어선 이스라엘이 당신의 참된 백성으로 돌아오도록 배려하셨던 것이다(예언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우상숭배에 물들어 세상이 주는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자기 중심의,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삶에 집착하고 만다.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해 예레미야는 “사람들은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지 않느냐? 누구나 빗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이 예루살렘 백성은 한 번 빗나가면 배반을 고집하느냐?”(8,4-5)고 질타한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된 삶이 마침내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과 맺으셨던 계약을 깨뜨려버렸음(11,10)을 선언하게 된다. 4) 깨어진 질그릇과 성전 파괴 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 맞게 될 운명이 ‘깨어진 질그릇의 비유’(19장)를 통해 예고된다. 여기서 질그릇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리고 예언자가 질그릇을 깨뜨려버리는 행위는 하느님 말씀 듣기를 마다하고 목덜미를 뻣뻣하게 한(19,15)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방인의 손에 의해 넘어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유배생활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레미야가 행한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을 이해할 수 있다.(7장, 26장) 당시 바알에게 분향하고 다른 신들을 따라가며, 도둑질과 살인, 간음과 거짓 맹세를 일삼으면서도 ‘성전’에 와서는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안도하며 자기 기만에 빠져 있던 백성들에게 성전이 그들의 보호막이 되어줄 수 없음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 구원의 원천이라는 믿음이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인 삶 안에서 구현하는 실천적 삶임을 일깨우고 있다. 그리하여 예언자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삶의 쇄신과 변화를 강조하며 선포한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길과 너희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겠다.”(7,3) 2. 예레미야의 고백록 예레미야는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간직하였던 예언자로서 그들이 진정 참된 하느님의 백성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잘못된 삶을 질책하고 하느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말을 외면하고 조롱하였으며, 당시 지도층인 여호야킴 임금이나 성전 파괴예언에 격렬히 분노했던 사제들은 심지어 예언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박해를 하게 된다.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인간적인 고독과 아픔, 자신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행했던 예언직에 대한 회의, 나아가 하느님께 대한 원망과 함께 신앙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예언자로서, 신앙인으로서 예레미야가 겪어야만 했던 칠흑과 같은 어두운 밤 그리고 갈등과 회의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발견하고 체험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는 그의 다섯 고백록에서 만나게 된다. 첫째 고백록(11,18-12,6)에서 예레미야는 순한 어린양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반당하여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예언자는 실망과 좌절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공정하게 판단해 주실 것을 청한다. 또한 악인들과 배신자들의 삶이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에 갈등하며 하느님의 공정성에 대한 회의를 제기하나, 하느님께서는 이에 대한 위로나 해명 대신 흔들림 없는 단호한 삶의 자세를 촉구하신다. 둘째 고백록(15,10-21)에서 예레미야는 정의롭게 살아온 자신이 모든 사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처지를 한탄하면서 처음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받아먹었을 때의 기쁨과 즐거움을 회상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겪었던 고통과 상처를 호소하면서 하느님의 공정한 심판을 간절히 탄원드린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해야 함을 이르시면서 당신께서 함께 계시리라 약속하신다. 셋째 고백록(17,14-18)과 넷째 고백록(18,18-23)은 “주님의 말씀이 어디에 있나? 내려와 보시라지!”(17,15)라고 조롱하는 이들과 “혀로 그를 치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나 무시해 버리자.”라고 선동하며 예언자를 없앨 음모를 꾸미는 이들에 대해 예레미야는 다시 한번 하느님의 공정을 호소한다. 여기서는 또한 지금 그를 박해하는 이들에 대해 예언자가 가졌던 사랑이 잘 드러나기도 한다. 다섯 번째 고백록(20,7-18)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은 하느님의 꾐에 넘어가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음을 원망한다. 그리고 가장 친한 벗들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였던 예언자는 ‘뼛속에 가두어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름’을 체험하게 된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사람의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심을 확신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된다. 3. 새로운 계약의 구원 선포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타오르는 불빛이 더욱 밝게 비추어지듯이 남왕국 유다의 절망적인 상황 안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새롭게 맺으실 계약을 선포하면서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 주고 있다. 먼저 예언자는 자신의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언젠가 다가올 구원을 암시하고 있다.(32,1-15) 여호야킴 임금의 박해로 감옥에 갇혀있던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고향 아나돗의 땅을 정식 계약을 맺어 산다. 그러나 이 매매는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감옥에서 나갈 희망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왕국을 위협하던 외국군대에 의해 점령된다면 이전 맺은 계약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언자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비록 이스라엘의 잘못된 삶으로 하느님의 심판이 내리겠지만 언젠가는 하느님 백성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마침내 예언자는 백성들의 죄악에 의해 깨어졌던 계약을 하느님께서 새롭게 맺으시게 되리라고 선포한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갈려진 마음을 가졌던 이스라엘에게 한마음과 한길을 주시며 영원한 계약을 맺으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 속에 당신께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어 그들이 당신께로부터 돌아서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것이다.(32,39-40) 여기서 ‘한마음’을 주심은 곧 당신께 대한 참다운 경외를 심어 주시는 것이며, 이것은 당신께 대한 순종과 존경 그리고 사랑의 자세를 말한다. 이러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새로운 계약에 대한 전망은 마침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새 계약을 맺으심으로써 실현되게 될 것이다. [월간 빛, 2002년 10월호,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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