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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지혜문학: 코헬렛(전도서) - 인생의 참된 기쁨에 대한 가르침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1 조회수4,64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구약성서의 지혜문학 5 : 코헬렛(전도서) - 인생의 참된 기쁨에 대한 가르침

 

 

1. 코헬렛이란?

 

오늘날 전도서로 불리우는 모두 12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작은 책은 본래 히브리 경전에 있어서는 코헬렛이란 명칭으로 전해졌다. 코헬렛이란 원래 ‘소집하다’,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카할(       ) 동사의 여성 단수 분사로서 비록 그 뜻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집회’, ‘회중’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구약성서 안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형성된 단어를 에즈라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에즈 2,55에 나타나는 하소페레트(서기관 직무,             )를 들 수 있다. 따라서 코헬렛이란 단어는 공동체 안의 특정한 직무, 또는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 하겠다.

 

전통적으로 볼 때 히브리 경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이 책의 이름은 에클레시아스테스(‘회중’, ‘공동체의 구성원’)로, 라틴어로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에 의해서는 콘치오나또르(‘연사’, Concionator)로 옮겨졌으며, 후에 루터는 ‘설교자’(Prediger)로 번역하였다. 여기서부터 ‘설교자’, ‘전도자’라는 의미가 부각되어 동양권에서도 한자로 ‘전도서’(傳道書)라 불리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저자인 코헬렛이 설교나 전도를 하는 대목은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본래 공동체 안의 특정한 직무를 가리켰던 코헬렛이 그 직무를 맡았던 스승에 대해 제자들이 부르던 호칭이 되었고, 마침내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현인의 이름이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이 책의 명칭은 히브리 경전의 서명인 코헬렛을 한글로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여 그대로 “코헬렛”이라 부르는 것이 옳으며,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 성서학계에서도 폭넓게 인정되고 있다. 또한 책의 저자 역시 본문이 전하는 것처럼 “코헬렛”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코헬렛은 어떤 인물일까?

 

 

2. 저자와 저술시대

 

전통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1,1의 내용인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에 따라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두 번째 임금이 되었던 ‘솔로몬’으로 여겨졌다.(1,12 참조) 그러나 책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언어학적으로 볼 때 후대에 쓰여졌던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사상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지혜사상의 핵심 내용인 현세적 인과응보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강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배시대(기원전 587-538년) 보다 훨씬 후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반면 기원전 180년경 쓰여진 집회서의 저자는 이미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의 저술시기는 솔로몬의 통치시대(기원전 975-933년)가 아니라 훨씬 후대인 기원전 3세기 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의 신원에 관해서는 책의 끝 부분에 첨가되어 있는 발문(12,9-14)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본문에서는 저자가 1인칭의 화자(話者)로 나타나는 반면, 이 부분에서는 3인칭으로 불리어지고 있는데, 내용적으로 보면 제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는 스승에 대한 진술을 담고 있다. 특히 12,9은 “코헬렛은 현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백성에게 슬기를 가르쳤으며, 검토하고 연구하여 수많은 잠언들을 지어내었다. 코헬렛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말을 찾으려 노력하였고, 진리의 말을 올바르게 기록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기원전 3세기 경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한 현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의 최종 편집자는 왜 저자를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인 솔로몬이라고 제시했을까? 이 점은 이스라엘 지혜문학의 문학적 서술방식에 의거해 이해될 수 있다. 즉 이스라엘 지혜사상의 대표적인 인물인 솔로몬의 권위를 내세워 이 책의 가르침을 전개시켜 나가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구약성서의 잠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실제에 있어 구약성서의 잠언은 기원전 10세기에서 4세기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 동안 여러 현자들에 의해 쓰여진 다양한 교훈과 가르침들이 수록된 하나의 선집(選集)이지만 그 서두에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코헬렛”은 제자(들)에 의해 스승의 가르침들이 수집되고 최종 편집되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3. 중심 주제들

 

흔히 코헬렛(전도서)을 생각하면 첫 부분인 “허무로다, 허무! - 코헬렛이 말한다 -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란 대목을 떠올린다. 왜냐하면 맺음말(12,8) 부분에서도 반복되는 세상과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저자의 토로가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새겨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코헬렛은 염세주의 내지 비관주의의 내용을 전해준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러나 최근의 코헬렛에 대한 활발한 연구 결과 이 책에 담겨있는 긍정적인 가르침, 즉 ‘인생의 참된 기쁨’이란 메시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실상 여기에는 ‘허무’, ‘하느님’, ‘지혜’, ‘기쁨’과 같은 본질적인 주제들이 이스라엘의 전통 신앙과 전통적 지혜사상과는 달리 인생과 세상사를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숙고하는 저자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1) 인생의 허무함

 

코헬렛은 먼저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외치며, 인생의 무상함을 토로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인간 삶의 현실에 대한 냉철하고도 객관적인 성찰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나는 태양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 잡는 일이다.”(1,14) 코헬렛은 자기 반성적인 부분(1,12-2,26)에서 술, 안락한 생활 환경, 많은 재물, 여러 즐거움의 수단들을 통해 쾌락을 체험해 보았지만 결국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든 수고와 결실들 역시 그에게 지속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는 허무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허무함은 결국 의인이나 악인이나, 지혜로운 이나 우둔한 이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맞이해야 할 운명인 ‘죽음’으로 귀결되고 있다. : “모두가 한 곳으로 가는 것. 모두가 흙으로 이루어졌고 모두가 흙으로 되돌아간다.”(3,20; 참조 2,16; 9,1-6.; 12,1-7)

 

나아가 코헬렛은 그가 만나는 세상사의 불가해성을 직시하고 있다. 이 세상의 일들이 일정한 질서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에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그러한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 역시 결국 허무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헬렛이 토로하고 있는 인생의 허무성과 세상사의 불가해성은 근원적으로 그의 고유한 하느님 사상에 기인하고 있다.

 

2) 하느님관(觀)

 

코헬렛이 가졌던 하느님관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구체적인 구원 체험을 통하여 고백해왔던 전통적인 신앙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 하느님은 하늘 위에 존재하시는 분으로(5,1),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코헬렛은 하느님을 일반 호칭인 엘로힘에 정관사를 붙여 ‘신(神)’으로 표기한다. 이처럼 그는 하느님을 신앙적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 이성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에게 있어 하느님은 세상과 인간 삶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지만 인간의 이해력으로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그런 분이시다.(3,1; 8,17)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께 대한 인격적인 신뢰를 가질 수 없게 되며, 이는 곧 인간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신뢰의 상실을 초래하므로, 결국 모든 것이 ‘허무’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코헬렛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자체는 굳건히 견지하고 있다. 그의 믿음은 창조신앙으로부터 출발한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은(12,1)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고(3,11), 인간에게 생명을 선물로 주신 분이시다.(5,17; 8,15; 9,9)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경외해야 하며(3,14; 5,6; 7,18) 그분께서 부여해주시는 행복을(8,15; 9,7; 11,9) 집착함 없이 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코헬렛이 가졌던 신앙의 핵심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겠다.

 

3) 지혜 사상

 

코헬렛은 이스라엘 지혜사상의 큰 흐름에 있어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사상가이다. 그는 앞서 욥기(기원전 6-4세기경)의 저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전통적인 지혜사상의 핵심 내용들, 예를 들어 ‘인과응보의 원칙’(4,1-3; 7,15- 8,5-11), ‘지혜를 소유함’ 등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지혜의 가치를 비판적으로 재조명하여 그 한계성을 밝히고 지혜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여 젊은이들에게 가르친 현자(賢者)였다.

 

코헬렛은 “지혜가 많으면 걱정도 많고, 지식을 늘리면 근심도 늘기 때문”(1,18)이라는 역설적 언급을 통해 지혜를 가진 자만이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기술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지혜사상의 가르침을 논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습득한 지식이 인생의 성공이나 안전성을 확고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록 우매함보다는 지혜가 더 쓸모 있음(2,13)은 분명하지만, 많은 지혜를 습득했을 때 자신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고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코헬렛은 참된 지혜란 언제나 자유롭게 행동하시는 창조주 하느님께만 달려 있는 까닭에 현자는 자신의 지혜에 얽매여서는 안되며 하느님께서 오늘 나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코헬렛이 제시하고 있는 가르침은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머물러야 하며,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최상의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코헬렛은 ‘하느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란 이스라엘 지혜사상의 근본 원리에 대해 올바른 해석을 명확하게 한 현자라 하겠다. 나아가 그는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가’를 추구하고 있다.

 

4) 삶의 참된 기쁨

 

오늘날 많은 성서학자들은 코헬렛이 ‘마음의 순수한 기쁨’을 선포하며, ‘하느님 안에서의 기쁨을 노래한’ 현자였음을 새롭게 밝혀내었다. 인간이 누리는 ‘기쁨’은 다름 아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당신의 대답이며, 인간은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 코헬렛의 참된 메시지라는 것이다.

 

코헬렛이 찾은 일차적인 기쁨은 자신이 수행한 노고의 몫으로 주어지는 즐거움이었다.(2,10) 이것은 인간이 애써 수고한 보답으로 얻어진 내적 기쁨으로서 인간의 위업과 노고 자체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쁨의 보다 근원적인 원천은 하느님께 있음을 코헬렛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인간에게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내리시고 행복을 느끼게 하신다는 것이다.(2,24-26)

 

이러한 기쁨의 두 가지 차원, 즉 인간적 차원과 신학적 차원이 함께 언급되면서 이제 인간이 누리는 참된 기쁨은 바로 ‘하느님의 선물’임이 제시되고 있다. : “인간에게는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나는 알았다. 또 모든 인간이 자기의 온갖 노고 속에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영원히 지속됨을 알았다.”(3,12-14) 이러한 코헬렛의 관점은 다시 한번 더 5,17-19에서 반복되며 강조되고 있다.(9,7-10 참조)

 

코헬렛이 제시하는 기쁨은 쾌락주의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인간이 그의 삶 안에서 누리는 참된 기쁨을 신학적으로 해석하여 ‘하느님의 선물’이라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가르침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분명 하느님은 존재하고 계시며, 인간 삶 안에 활동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또한 모든 것을 제 때에 이루시는 하느님 안에서 인생의 참된 기쁨을 누리라는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월간 빛, 2003년 9월호,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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