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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9)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1 조회수5,504 추천수1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9 · 끝)

 

 

고난과 죽음을 거친 승리 (마르15,1-37)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나는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게 끌려갔다. 내가 ‘유다인의 왕’이라고 주장했다며 공식적으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정치적인 냄새가 풍기는 고소였다. 유다인의 왕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최고의 국사범에 해당되었다. 정치권력은 로마 제국의 특권이었다. 빌라도는 공적으로 물었다. “당신이 유다인들의 왕이요?” 나는 답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합니다.” 대제관들은 발악하며 고발했다. 빌라도는 내가 변호하기를 기대했다. 악의로 가득 차서 나를 반대한 그들의 고소에 대하여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나와 나의 활동에 대하여 정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내가 인간의 존엄을 주장하고 압제받는 이를 옹호한다는 것은 로마의 권력과 같은 지배권을 통해 다스리는 어떤 권력에도 정치적으로 위협을 주는 위험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나는 빗발치는 고소를 별로 겁내지 않았다. 또한 로마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지도 않았고, 권력을 찬탈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의 위협은 좀더 근본적이었다. 권력이 시민의 것이든 그 어떤 다른 것이든 그 뿌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는 빌라도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헤아릴 만큼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관들은 그들의 권력체제에 내가 위협이 된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그들은 빌라도가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갈 것이다.

 

빌라도는 자기가 정말 혐오감을 느끼는 유다 지도자들에게 농간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크게 미심쩍어 했다. 그는 유다인들의 농간에 비위를 맞출 마음이 없었다. 그는 정치적 소요 중에 살인을 저지른 바랍바라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있었다. 바랍바를 해방절 축제에 따른 특사로 방면시키려는 무리들이 그곳에 와있었다. 빌라도는 이것이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그들이 바랍바 대신 이 ‘유다인의 왕’을 가지면 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는 제관들이 사람들을 손쉽게 설득하여 그의 제안을 거부하고 바랍바의 석방을 요구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 게다가 제관들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극성스런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별 수 없이 빌라도는 그들의 편을 들었다. 그는 바랍바를 방면하고 나에게는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처형은 지체 없이 이루어졌다. 곧바로 처형 전에 통과 절차라고 할 수 있는 끔직한 태형이 자행되었다. 거기엔 십자가형을 받을 다른 두 사람도 있었기에 시간이 다소 걸렸다. 병사들은 이 ‘유다인의 왕’을 멸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군복을 벗어 왕의 옷인 양 나에게 입혔다. 내 왕관은 급히 엮은 가시관이었다. 모욕, 참으로 역설적인 모욕이었다. 나는 그들이 꿈에도 모를 진짜 왕이었다. 그랬다. 나의 왕권은 세상의 어떤 왕권들도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의 마지막 길이 시작되었다. 그 길은 무용지물의 채석장, 즉 버려진 폐물더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는 ‘유다인들의 왕’에게 너무나 치욕적인 것이었다. 십자가의 처형이 그런 의도로 격하시킨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처형 장소도 역시 의도적으로 모욕을 주기 위한 곳이었다. 야만적인 매질과 잔인한 모욕으로 쇠약해지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상실감으로 나는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십자가 나무가 내 어깨를 짓누르자 지나가던 행인 키레네 출신 시몬에게 강제로 지게 했다. 내가 골고타 언덕에 이르렀을 때 의례적으로 죄수에게 주는 약을 탄 술을 주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내 옷이 벗겨지고 땅위에 눕혀져 양 손목에 큰 못으로 십자가 횡목 틀에 박히었다. 그리고 즉시 십자가의 종목 틀에 십자로 맞추어진 뒤 못이 발목 관절을 뚫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었다. 숨쉴 때마다 고통이 뜀박질 하듯 전달되었다. 숨이 가빠오고 정신마저 흐릿해 오는 듯했다.

 

아마 오전 9시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양쪽에 매달린 두 불행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지나가는 이들도 나를 보며 조롱하면서 성전 파괴에 대해 언급했던 내 말을 두고 빈정거렸다. 제관들과 율사들도 고소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남들은 구했지만 자신은 구할 수 없는가보구나.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보고 믿을 텐데.” 심지어 옆에 달린 이들도 고통에 악을 쓰며 나를 욕했다.

 

나는 모든 이로부터 완전히 무섭도록 소외된 채 악의 어둠 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 던져졌다. 나의 사명은 이스라엘을 불러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당신의 백성이 되도록 쇄신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사명은 삐걱거리며 중지되었다. 실패의 쓰디쓴 찌끼를 마시며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욥처럼 나는 하느님의 부재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빠께 부르짖었다. 나는 절망의 체험까지도 하느님께 다 맡겨드렸다.

 

힘에 부쳐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서 머리를 떨구었다. 내 생명이 나로부터 멀어져 가는데 … 어둠이 그리고 빛이, 온통 빛이다. 그리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기뻐하는 이로다!” 지금은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서로의 모습을 대면할 뿐이다. 그렇다. 나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셋째 마당 : 마치는 글


죽음과 계시 (마르15,38-41)

 

예수가 사망한 순간 성전의 장막이 두 폭으로 찢어지면서 성전의 중요성은 사라졌다. 이스라엘의 특권은 끝장이 났다. 따라서 하느님의 현존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었다. 십자가 처형을 책임졌던 백인대장은 십자가 옆에서 아무런 도움 없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십자가 위에서 외로이 숨을 거둔 그분을 보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유일한 표지이다. 백인대장은 죽은 예수님을 쳐다보면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 모순을 백인대장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리스도 신앙의 참된 고백자라고 할 수 있다.

 

 

장사 (마르15,42-47)

 

제자들은 예수가 체포되자 뿔뿔이 도망쳤다. 장례를 치를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리마태아 출신으로 의회 회원이며 율법에 충실했던 요셉이었다. 이 경우 십자가에 박힌 이의 시신이 밤새도록 달린 채로 있게 해서는 안 되었다. 요셉은 정식으로 청하여 예수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것은 신성모독으로 처형된 이라서 불명예스럽기에 서둘러 거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의 시신은 기름도 바를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아마포 수의로 싸서 골고타라고 불리던 사용하지 않은 채석장의 바위를 깎아서 구멍을 낸 무덤에 안장했다. 제자들이 도망쳤지만, 일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를 따라와 그의 십자가형을 멀리서 지켜보기까지 한 여제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장까지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이들 여제자들이 물론 안장의 증인이 되었다.

 

 

무덤에서 (마르16,1-8)

 

아주 이른 주간 첫 날 새벽녘, 막달라 출신 마리아와 다른 두 여자들이 무덤을 찾았다. 그들은 예수의 시신에 기름을 바르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무덤을 막았던 바위가 뒤로 굴러나 있고, 그 무덤 안에 한 ‘젊은이’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여자들에게 말했다. “나자렛 예수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가서 그분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시오. 당신들은 갈릴래아에서 그 분을 만나 뵙게 될 것입니다.”

 

여자들은 혼비백산하여 무덤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죽은 분을 기리기 위해 무덤에 왔다가 살아 계신 분의 경이로운 진실을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 ‘마르코복음의 예수 이야기’는 이번 호로 마치고, 다음 호부터는 ‘요한복음의 예수 이야기’를 연재해 드리겠습니다.

 

[월간 빛, 2004년 7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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