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상징] (19) 길 :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세계 서울의 거리 이름들이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식으로 바꿔 부르다가 광복 이후에는 전부 우리 식으로 다시 바뀌었다. 충무로의 옛날 이름은 진고개였다. 광복 전에는 남산 주위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남산 아래에 있는 진고개는 자연스레 일본인들의 주 생활 무대가 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진고개를 '혼마치'라고 불렀는데 일본 상인들의 삶터였다. 그들은 혼마치를 대대적으로 개발해 서울에서 제일가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 한편 해방이 되어 이 거리는 진고개라는 옛 이름 대신 충무로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충무공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서울의 거리 이름에는 사연과 역사가 묻어있다. 길의 이미지는 성경에 매우 빈번하게 나타난다. 길이나 도로의 이미지는 근본적이고 윤리적인 주제들과 관련을 갖는다. 하느님과 인간의 행동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의 특징에 대한 심오한 사상을 길에 비유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구약성경에서 길은 하느님의 뜻과 같이,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내적 세계를 의미한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이사 55,8). 또한 인간이 가야할 인생의 길을 의미한다. "사람의 발걸음은 주님께 달려 있으니 인간이 어찌 제 길을 깨닫겠는가?"(잠언 20,24) 이처럼 성경에서는 인생의 방향과 행로를 하나의 길로 묘사한다. 사람의 생애를 길을 따라서 걸어가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역동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정적이지 않고 그 속에서 맺어진 개인적 선택들은 전체적인 인생 여정에 관계를 갖는다. 또한 하느님께 도달하는 길, 즉 율법과의 관련에 있어서 인간 삶의 방식,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3).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길을 걸으라는 요청을 거듭 듣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생명의 길을 선택하느냐 죽음의 길을 선택하느냐를 최종적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결정에 맡긴다. "이제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놓아둔다"(예레 21,8). 두 개의 길인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시편 1편)은 극명한 대조로 구성돼 있다. 이 주제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두 가지 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주제는 특별히 유명한 모세의 마지막 고별 설교에서도 잘 나타난다. 모세는 그 설교에서 백성들 앞에 축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을 제시한다. 신약에서는 좋은 길과 나쁜 길이라는 구약성경의 두 가지 길에 대한 더 분명한 의미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언급한다(마태 7,13-14). 성경에서 길이라는 상징이 정점을 이루는 곳은 예수님 자신의 증언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제 길이 되신다. 예수님은 길에 머무르지 않고 길의 목적, 즉 생명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통해 모든 인간을 위한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길을 충실하게 걷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평화신문, 2008년 10월 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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