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 (7) 하비루, 히브리, 이스라엘
“나그네살이 하던 민족의 투쟁 역사” - 기도를 위해 통곡의 벽 앞에 모인 유대인들. 이스라엘이라는 유대인들의 민족 정체성의 시작은 야곱에 의해 시작된다.
- 1947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사해(死海) 북서쪽 연안에 있는 쿰란(Qumran) 지구 동굴 등지에서 발견된 사해 문서 사본. 히브리어로 작성돼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살고 있던 우리들의 조상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동쪽 오랑캐’라는 뜻이다. 인터넷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동이는 중국역사에서 중국 사학자들이 중국 북동쪽과 한국, 일본 또는 그곳에 사는 종족을 이른다고 여겨지는 말이다. 중국인들은 동이뿐 아니라 서쪽에 사는 오랑캐를 서융(西戎), 남쪽 오랑캐를 남만(南蠻), 북쪽 오랑캐를 북적(北狄)이라고 불렀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주변에 살고 있는 민족들을 모두 오랑캐로 인식한 것이다. 남말 할 수 없다. 우리도 중국과 일본인들을 낮잡아 ‘되놈’과 ‘왜놈’으로 불렀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 시대에도 당시 문명지역(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주변 지역 사람들을 경멸적 의미로 지칭하던, ‘오랑캐’와 유사한 명칭이 있었다. ‘하비루’(Habiru)가 그것이다. 1887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아마르나 문서(기원전 14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에 따르면 ‘아삐루’(Apiru) 또는 ‘하삐루’(Hapiru)라고도 불렸던 하비루들은, 기원전 2000년경 안정된 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하층민 및 평화의 교란자들이었다. 주로 팔레스티나 지역에 살던 무법자, 범법자, 용병, 노예, 반란자 등이 이 부류에 속했다. 이 하비루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히브리어’ ‘히브리민족’ ‘히브리인’의 ‘히브리’(Hebrews)를 떠올릴 수 있다.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하비루와 히브리에서 모음을 빼면 ‘ㅎ’ ‘ㅂ’ ‘ㄹ’, 같은 자음만 남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많은 학자들이 히브리의 어원을 하비루에서 찾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 근동 여러 지역에서 더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하비루인들은 히브리인 처럼 고정된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갖춘 민족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비루는 특정 사회 계층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던 용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집트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비루라는 이름을 히브리인을 지칭할 때 간혹 사용하기도 했다. 히브리인이 곧 하비루인은 아니었지만, 하비루인으로 불리는 사람 중에 히브리인들도 섞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당시 강대국(이집트, 바빌로니아 등)들의 용병으로 고용돼 전쟁에 가담하기도 했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으며, 특히 이집트에서는 다른 하비루들과 함께 피라미드를 쌓는 강제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히브리’(Hebrews)는 어떤 표현일까. 히브리는 하느님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탈출기 5장 1-3절에서는 히브리인과 이스라엘인을 동일시한다. 아브라함에게도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창세 14,13). 적장을 목 베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도 스스로를 ‘히브리 여자’라고 말한다(유딧 10,12). 이후 기원전 2세기 경에 히브리는 구약성경의 언어와, 이 언어로 기록된 작품들을 의미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우리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히브리어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19세기에는 히브리라는 용어가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쇄신운동의 용어로 정착되는데, ‘히브리 유니온 대학’(Hebrew Union College), ‘미국 히브리 총회연합’(the Union of American Hebrew Congregations)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원래 히브리라는 명칭은 광범위하게,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말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으로 자청해 부른 일이 거의 없었다. 주로 이방인이 이스라엘인들에게 관해 말할 때(창세 39,14;탈출 2,6;1사무4,6)나, 혹은 이방인에게 신원을 밝히려고 했을 때(창세 40,15;탈출 3,18;유딧10,12) 간헐적으로 쓰이고 있다. 사실 유대인들은 히브리라는 용어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더 익숙하게 사용한다.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담고 있는 의미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론된다는 점이다. 야곱이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고 얻은(창세 32,29 참조) 이스라엘이라는 이 이름은 ‘하느님과 겨룬 사람’ ‘하느님께서 싸우신다’ ‘하느님께서 싸워주시기를’ ‘신들과 싸우는 사람’ ‘하느님을 위해 싸우는 사람’ ‘하느님의 정직한 종’ ‘하느님의 지배로 움직이는 사람’ 등 다양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해석들 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함의가 있다. ‘싸우다’가 그것이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 자체가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했던 유대인들로서는 ‘싸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세계사 안에서 볼 때 그 싸움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라져간 민족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야곱이 처한 환경도 그러했다. 야곱에게 있어서 가나안땅은 나그네살이를 해야 하는 이방인의 땅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나그네살이하던 땅’, 곧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았다”(창세 37,1).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가톨릭신문, 2009년 2월 15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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