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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신명기: 영원한 사랑의 법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3,527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신명기 : 영원한 사랑의 법

 

 

신명기(Deuteronomy)는 그리스 어에서 나온 말로서 “두번째 법” 또는 더욱 정확하게는 “법의 사본”을 뜻한다. 신명기는 사실 시나이 산에서 주어진 첫 번째 법의 반복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떠나 성부의 영광 안에 들어가시기 전에 당신의 모든 구원사업을 생생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듯이 모세도 자신이 죽어 백성들이 새로운 역사의 장으로 들어서기 전에 신명기의 설교를 통해 하느님의 모든 행위와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신명기는 모세가 설교한 곳과 때를 나타내는 짧은 서문으로 시작된다(1,1-5). 그리고 호렙 즉 시나이 산에서 모압 땅까지의 이스라엘인들의 행군을 역사적으로 회상하고(1,6-3,29),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당신 백성들에게 직접 주셨던 계명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호소한다(4,1-40). 여기까지가 제1설교이다. 요르단강 건너편에 세 성읍을 떼어놓고 피신처로 마련해 놓겠다는 짧은 연설(4,41-43)은 제1설교와 제2설교(5-26장)를 구분하고 있다. 신명기에서 중심이 되는 제2설교는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충성을 권고하는 서문에 이어 훈령과 규정과 법령을 포함하는 신명기 법전을 담고 있다. 이 법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의 방랑 생활을 끝내고 약속된 땅에서 농사를 짓는 정착생활을 맞이하게 됨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10계명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제3설교(27-30장)는 법의 강화와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과의 계약의 쇄신을 포함한다.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은 모세의 마지막 생애와 관련된 내용이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하고(31,14), 사제들에게 법을 기록하여 넘겨주며(31,24), 마지막 노래를 지어 들려준다(32장). 그는 열두 지파에 복을 빌어주고(33장), 느보 산 봉우리에 오른다. 그러자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땅을 보여주시고 그의 목숨을 거두신다(34장).

 

신명기에서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모세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머리 위에 가시관을 쓰고 있다. 50년 이상이나 그는 수많은 사람의 짐을 대신 져왔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나이가 흔히 들면 그런 것과는 반대로 모세는 자신의 직책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자아 포기’에 충실함으로써 모세는 하느님으로부터 “너는 요르단 강을 건너지 못한다”(1,37; 3,26; 31,2 참조)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까지 받아들인다. 모세의 깊은 슬픔, 그 지극한 희생은 자기 사랑에 대한 마지막 집착을 버리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모세는 사막에서의 방랑 생활을 마치 아들을 가르치는 아버지처럼 당신 백성들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이해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질병과 기아로 고통을 겪게 하시며, 또한 만나와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먹여주시면서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8,3)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모세의 눈은 미래를 넘어서셔 또다른 유배(29,27-28)의 암흑을 뚫고 다가올 메시아 시대까지 바라본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전역사를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위대하신 사랑의 표현으로 보았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생명과 자유를 주신다. 이스라엘을 구해주시고 먹여주시며 이끌어주신다.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용서하신다. 모든 시대를 통해 그분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반석으로 남아 계신다.

 

신명기 법전(12-26장)은 예배에 따른 생활의 여러 가지 면들(12,1-16,17), 시민 행정(16,18-18,22), 형법(19,1-21,9) 그리고 가족법(21,10-25,19)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신명기가 배교나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엄격한 규정들을 막연히 모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명기의 모든 훈령과 규정들이 사랑의 정신 아래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심문’(inquisition)이란 단어가 신명기에서 유래되고 신명기 17장 2절에서 7절까지의 구절을 인용하여 마녀 재판을 하였다는 것을 보면 그도 그럴 법하다. 그러나 잔인성만큼 신명기의 정신과 반대되는 것은 없다. 신명기의 모든 법은 인간의 인격적인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중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신명기는 신앙의 정통성에 대한 세 가지 외부의 적을 지적한다. ‘거짓 예언자’(13,2-6)에 의한 지적 유혹, 가족의 압력(13,6-11), 정치적 권력(13,12-19)이 그것이다. 신명기가 신앙을 훼손하는 사람을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얘기한다면 편협함이나 민족적 자만심에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거짓 예언자나 ‘꿈으로 점치는 자들’은 항상 하느님의 법을 희생시키고 민족적 자만심에 아첨하는 사람들이었다(미가 3,5 참조). 그러나 예레미야와 같은 참 예언자는 하느님을 위해서 정치적인 독립을 희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배교자들에 대해 사형을 내리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충성이 이스라엘의 생명줄이며, 이스라엘의 생명은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소유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신명기는 이러한 법들의 남용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책을 마련해 놓았다. 선고를 내리기 전에는 샅샅이 조사해야 한다(13,14). 증인은 판결의 집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13,9). 재산의 몰수는 허락되지 않는다(13,17 : 이 규정은 얼마나 현명한가! 재산 몰수는 헨리 8세부터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종교 박해의 주요 동기의 하나였다).

 

가나안 족들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종종 종교적인 편협성의 고전적인 본보기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전쟁에 관한 규정(20장)을 읽고 이를 오늘날의 전쟁과 비교해 보라. 신명기는 총력전을 금지한다. 인간애가 전쟁에서조차 나타난다. 약혼한 사람은 병역 의무에서 제외된다. 모든 적에게 먼저 평화를 제안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파괴는 금지된다. 가나안 족은 우상 숭배를 단념하고 정의의 법정을 세우며 신성 모독, 근친 상간, 살인, 도둑질, 잔인한 행동을 금하여 자연법의 근본을 따르도록 요청된다. 우리는 가나안 족의 우상 숭배가 사원 매춘이나 자녀를 번제하는 행위 등 모든 종류의 ‘망측한 짓’을 수반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12,31).

 

하느님의 법과 이웃 사랑을 영원히 결합시켜 놓은 것은 모세법의 찬란한 영광이다. 모세는 정의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는다. 더욱이 모세법은 ‘완전한’ 사람보다도 소외당한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는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현자조차 노예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약은 ‘노예’(slave)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도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23,15-16). 이러한 생각은 외국인(레위 19,33), 적들(23,7)에게도 적용된다. 심지어 전쟁 포로들까지도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성을 잃지 않는다(21,10-14). 품을 파는 사람, 떠돌이, 고아, 과부 등 그들 모두는 하느님의 법에 의해 똑같이 보호를 받는다(24,17). 이렇게 해서 사람의 아들인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이 마련되는 것이다(마태 25,31-36).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가 됨으로써 모세의 법은 완성된다. 주님께서 신명기의 말로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셨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마태 4,1-11).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보낸 40일은 하느님의 ‘맏배’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낸40년을 재현한 것이다. 신명기의 설교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던 모든 것을 압축해 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하실 그리스도를 바위로 모시게 된 것이다. (Pathways in Scripture에서 강동성 편역)

 

[경향잡지, 1988년 6월호, 다마수스 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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