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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천사 발현의 즉석 사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5 조회수2,984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천사 발현의 즉석 사진

 

 

마르코 복음에 나타난 부활의 천사

 

오늘날의 복음서 해석에서는 흔히 두 가지 중요한 경향이 제시되는데, 비록 이러한 경향들이 비가톨릭 성서 주석으로 명백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가톨릭에게도 강한 암시를 준다.

 

그 첫째는 기적적인 것, 말하자면 흔히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초자연적 일들, 그리고 천사로 명기되는 하늘의 인물에 대한 확실한 반감으로 묘사될 수 있겠다. 현대인은 복음서의 기적들을 단순화하고 ‘천사 없는’ 천사적 발현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엄밀히 첫째 경향과 연결되는 다른 경향은 마르코 복음에 대한 특별한 평가다. 이 복음서에서는 선선하고 원초적인 비전이 눈을 끌고, 다른 복음서들보다 더 신빙성 있고 참되다는 인상을 주는 생생한 기록을 읽게 된다. 말하자면 마태오 복음은 호교적인 맛을 지니고 있으며, 논증하고 입증하려고 애를 쓴다. 반면에 마르코 복음은 순수한 기록이다. 이 때문에 마르코의 객관적인 보고서를 쉽게 선호할 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서들의 기적 이야기들이 그의 이야기로 완화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것을 관찰해 볼 수 있다. 예수의 유년기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경이적인가! 천사들의 계속적인 방문이다. 어디에서 이런 기적들을 발견하는가? 마르코 복음에는 없다. 그 결과 마르코 복음은 사실을 밝혀 내고, 다른 복음서들의 기적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규범이 되고 있다. 천사의 발현을 순수하게 상징적으로 해석하려고 시도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호소한다.

 

마르코 복음에서 천사들에 대한 어떤 묘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장엄한 계획의 장식이나 배경으로 의도된 것이다. 예컨대, 예수께서 그분이 천상 영광에로 들어가심을 묘사할 때, 그분은 천사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마르 8,38). 예수께서 뽑힌 사람들을 사방으로부터 모으기 위해 그분의 천사들을 파견하실 때인 마지막 심판의 장면에서도 그렇다(마르 13,27 참조).

 

이미 후기 유다 문학은 천사들을, 비록 그러한 묘사에서 단지 배경으로 밖에 이용되지 않지만, 마지막 심판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마르코는 땅에 내려온 천사들에 대해 말할 때 볼 수 있는 천사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는 인상을 준다. 따라서 예수의 유혹과 관련,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말에 이어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는 말이 따라오게 한다(마르 1,13). 만일 악마의 유혹이 내적이었다면 - 일반적으로 그것을 해석학자들은 지지한다. - 천사들의 시중도 결과적으로 어떤 내적인 것이었으리라. 어쨌든 다시 한번 마르코 복음에서 천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묘사다.

 

그러나 일련의 묘사들과 부합하지 않는 천사 묘사가 있다. 그것은 빈 무덤에서 발현한 천사에 대한 생생하고 장엄한 표현이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더니 웬 젊은이가 흰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보고 질겁을 하자 젊은이는 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여기가 예수를 모셨던 곳이다.’ 하였다.” 여자들은 “겁에 질러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마르 15,5-8).

 

아무도 이 보고서를 단순한 짜맞춤이거나 장식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사건에 대한 보고이다. 여자들의 당황스러움도 느껴진다. 봉인된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하는 것은 정녕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이겠는가! 첫번째 반응은 “여기 이 무덤을 모독했구나.”일 수밖에 없다. 왜 그랬을까 라는 물음은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갑자기 증인으로 나타난 한 젊은이의 입에서 설명이 따라 나온다. 그의 증언은 이야기를 더욱 불가사의하게 하였다. 혼란에 빠진 여자들은 도망쳤다.

 

이 보고서에서는 ‘천사’란 말이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한 젊은이에 대해 말할 뿐이다. 흰옷은 그가 하늘의 사자라는 것을 암시하게 한다. 사실 승천 때에도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늘의 메시지를 갖고 나타났다(사도 1,10). 그리고 예수의 변모 순간에 그분의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마르 9,3) 빛나고 눈처럼 하얗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마르코의 객관적이고 순수한 복음은, 말하자면 천사 발현에 대한 즉석 사진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초자연적 사건을 말하는 것이 바로 마르코이므로, 현대의 독자조차도 의심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참되고 설명할 길 없는 발현 사실에 직면한다. 그러나 설명할 길 없는 이야기가 겸허하고 성실한 믿음으로 읽혀지기를 복음서 자체가 요구하는 순간들이 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3년 7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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