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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의 담화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0 조회수3,463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사도행전의 담화들

 

 

베드로의 담화

 

베드로의 오순절 담화에 이어 사도행전에는, 몇몇은 베드로에게 속하고 몇몇은 바오로에게 속하는 다른 담화들이 나온다. 이 담화들은 사도행전에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묻게 되는 상당한 유사점들을 어느 정도 강조해서 보여준다.

 

성전 입구에서 앉은뱅이에 대한 치유가 있은 뒤 방문객 무리가 베드로 주위에 몰려온다. 바로 오순절 축제 때 그랬던 것처럼 사도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사도 3,12-26) 기회를 포착하여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놀라움을 이용한다. 최소한의 염려도 없이 설교자는 구악의 본문 한 쌍을 인용하여 예수의 죽음으로 넘어간다. 오순절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그는 직접적인 비난을 수반하면서 그 죽음의 책임 문제에 머무른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증언하고 그 확증으로 구약성서, 열둘의 권위 그리고 모두가 개인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실제적 사건인 앉은뱅이의 기적적인 치유를 환기시킨다. 그러한 상황에서 회개로의 초대는 헛되지 않다. “말씀을 들은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으니 장정 수효만도 오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사도 4,4).

 

바닷가 제국도시(가이사리아)에 있는 이탈리아 부대의 백인대장 고르넬리오의 초대를 받은 베드로는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생각을 유다화한 이방인들에게 짤막한 훈화”로 설명한다(사도 10,34-43). 그는 유다인이 아닌 사람들한테도 선한 뜻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부활에 즉각 다다르기 위해 성서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고르넬리오의 집에서 예루살렘의 오순절 사건이 되풀이된다. 가이사리아는 예루살렘이 아니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도 진짜 유다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 담화는 베드로의 앞선 담화와 다르지만, 거기에는 마찬가지로 유사점이 있다.

 

베드로의 담화와 소아시아에 있는 안티오키아에서 행한 바오로의 담화의 유사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의 첫 번째 선교여행에서 이방인들의 사도는 소아시아 남부 해안도시 베르게에 정박하고, 며칠 뒤 비시디아의 고원에 도착한다. 수도 안티오키아에서, 안식일에 그는 회당에 들어가 말했다(사도 13,15-41). 이스라엘의 구원역사를 짤막하게 묘사하면서 그는 잠시 다윗에 머물다가, 이어 다윗의 아들, 나자렛의 예수에 관하여 그의 관심을 고정시킨다. 예루살렘에서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 입증으로 그는 열둘의 목격 증언과 구약성서의 몇몇 본문, 정확하게는 베드로가 인용한 시편의 같은 본문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당신은 당신의 거룩한 이가 썩지 않게 하시리라”(사도 13,35). 나아가 베드로처럼, 바오로는 이 본문을 그리스어 번역문으로 읽는다. “썩는다”는 단어를 강조하면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야 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실상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생애 동안 봉사한 다윗은 잠들었고 그의 조상들처럼 “묻혀서 썩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그분은 썩지 않았다”(사도 13,36-37).

 

방법과 구조, 논거와 구약성서의 인용에서 그러한 유사점에 대해, 뿐만 아니라 “썩는다”는 말에 대한 똑같은 강조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많은 이들에게 결론은 명백하다. 즉 서로 비슷한 담화들은 그 담화를 행한 두 사도에게서 기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의 저자 루가가 착상한 것이다. 루가는 그리스인으로서 성서 본문을, 인용된 시편의 “썩는다”는 말로 처리하였다. 오직 루가만이 예수에 대해 말하면서 그분이 “유다인들의 지방과 예루살렘에”(사도 10,34) 출현하였다고 말할 수 있었다. 베드로는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 마을에”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 시대의 행동양식에 따라서 루가는 자신의 고유한 말을 베드로와 바오로의 입에 담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시대의 한정된 구조 안에서 루가에 대해 생각하도록 암시받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해결은 지나치게 배타적이다. 두 사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자료들도 있으니까. 담화의 유다적인 영역 그리고 구약성서의 본문들에 대한 환기는 이방인 독자들에게 예정된 후대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유다인들에게 행해진 진정한 담화라는 게 더 적합하다. 거의 전적으로 이방인들을 간과하는 유다인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사는 루가에 의해 제외된다. 게다가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티나에서 구약성서의 그리스 역본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충분히 드러났다. 사해 근처 쿰란의 발견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베드로가 이방인의 땅 가이사리아에서 “유다인의 땅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의 생애에 대해 한 총체적인 묘사는 루가의 복음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알다시피 베드로에게서 유래한 마르코의 복음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사도행전의 담화에는 사도들로부터 유래하여 어느 정도 자유롭게 루가에 의해 다시 취해진 자료들이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유사점은 부분적으로 사도들의 설교수법으로 설명된다. 거기서부터 후에 마르코 복음과 다른 복음들이 나왔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6년 1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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