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신약] 필립보와 에티오피아 대신의 만남 에티오피아 - 예루살렘 에티오피아 황제는 1974년에 폐위될 때까지, 다시 말해 현대에 들어와서도 몇 가지 구약성서의 칭호들로 꾸며졌다. 예를 들면 그는 ‘무적의 유다 사자’ 그리고 ‘솔로몬의 직계 후손’이라 불렸다. 이러한 칭호들은 에티오피아가 성서의 나라 · 백성과 접촉했음을 가리킨다. 또한 다른 면을 통해서도 에티오피아와 중동의 셈족 세계 사이에 유대가 있었음을 밝혀낼 수 있다. 현대 에티오피아인의 성격, 신체의 특징은 셈족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고, 에티오피아어의 근본구조는 분명히 셈어적이다. 따라서 성서가 에티오피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며 에티오피아가 이스라엘의 문화와 종교를 독특하게 보호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이러한 접촉에 대한 명백한 일화를 발견한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사절이며 모든 재물의 관리자인 한 에티오피아 내시가 순례 중 예루살렘에 갔다가 귀국길에 사륜마차 위에 앉아서 이사야 예언자의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사도 8,27-48). 마차 위에 앉아서 하는 여행이지만 에티오피아인이 예루살렘에 도달하려면 몇 주는 걸리는데 그는 순전히 종교적인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다. 다분히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성전순례라는 것이다. 여행에 종교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더욱더 하느님과 만나기 위하여 대신은 이사야 예언서를 읽었다. 이 사실은 시편의 말씀을 완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집트에서 우두머리들이 올 것이며 에티오피아는 하느님을 향하여 손을 들 것입니다”(시편 68,31). 따라서 대신의 예루살렘 방문은 구약성서와 접촉을 가리킨다. 그는 성서를 읽었고 규정대로 성전에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제물을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 모든 것은 구약성서적인 종교의식 안에서 수행되었다. 에티오피아와 예루살렘의 유대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대다. 일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고대에는 항상 큰소리로 읽었는데, 이는 오늘날도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관습이다. 게다가 고대 근동에서는 마차에 앉아 거친 길을 빨리 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마도 필립보는 에티오피아인이 성서를 읽는 것을 줄곧 따라가며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도중에 주고받은 대화는 여행을 서로의 뜻대로 몰고 갔다. 잠시 뒤 부제 선교사 필립보는 마차 위의 내시 곁에 앉았다. 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은 하느님의 고통받는 종에 대한 이사야의 어려운 본문을 같이 읽었다. 우선 필립보는 본문을 설명했고 완결시켜 주었으며,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암시할 수 있었다. “성서말씀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일러주었다”(사도 8,35). 에티오피아인은 귀기울여 들었다. 그는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관심이 더욱 커졌고 아울러 신앙이 자랐으며 결국 물가에 이르자 “내시는 ‘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 무엇이 방해되겠습니까?’ 하고 말했다”(사도 8,36). 오늘날 우리는 때때로 구약성서의 가치, 즉 유다백성에 대해 가졌고 이제 우리에 대해 가져야 하는 가치를 의심한다. 구약성서의 계시와 접촉만 했던 에티오피아인은 곧 예수님의 선포에 마음을 열었다. 그는 믿었고 곧 세례를 받았다. 구약성서를 통해 그는 신약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웠다. 그이에게 예언자들에 대한 독서는 그리스도께 가는 길이었고, 구약성서는 진정한 은총이었다. 루가의 묘사에서 에티오피아인의 회개는 유다와 사마리아의 설교에 할애된 사도행전의 두 번째 부분에 여전히 속한다. 일화는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다. 또한 종교적으로 고려해도 성전의 그늘에서 일어났다. 대신은 유다인으로 에티오피아 궁정에서 높은 직책에 올랐고 정해진 시간에 그의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갔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가 만일 유다인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개종자로 유다인들의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은 바로 필립보이다. 그는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세례 후 성령에 따라 이끌렸다. “필립보는 아스돗에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그는 가이사리아로 갔다”(사도 8,40). 루가는 에티오피아인에 대해 그가 세례 뒤 홀로 여행을 계속해야 했다고 부수적으로 말하고 있다. “내시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지만 기뻐하면서 제 갈 길을 갔다”(사도 8,39). 어떻게 그가 에티오피아에 도착했고 거기서 초기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루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리스도교 초세기 말부터 아프리카의 심장부에서 그리스도교 국가를 발견하게 되는 이 독특한 사실은 전통적으로 필립보와 내시의 만남 덕분으로 돌린다. 나아가 이 나라는 예루살렘과 직접 접촉으로 그리스도교화 하였다고 믿어진다. 에티오피아 그리스도교의 오늘날 양식은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강화된 영향을 드러낸다. 그러나 최초의 그리스도교 영향을 곧바로 예루살렘에서 받았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셈족을 특징짓는 많은 흔적과 내시의 이야기는 그것을 충분히 있음직하게 한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6년 6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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