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신약] 예루살렘 공의회 모든 백성을 끌어안는 보편교회 안에 때때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당연한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러한 의견차이들은 논쟁과 충돌을 거치면서 성장하고 해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점을 찾기 위해 세계공의회를 소집할 만큼 중대한 대립이 드물지 않게 있었다. 거의 모든 세계공의회가 바로 그러한 내적 충돌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제1, 2차 바티칸 공의회만은 이러한 범주에 들지 않는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신생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첫 번째의 중요한 의견차이는, 이방인들을 교회에 받아들였을 때, 유다교에서 개종한 이들이 제기하였다. 의견차이가 심각한 충돌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호소하였다. 그 결과 교회 회의가 예루살렘에서 소집되었고, 이 회의는 첫 번째 공의회로 간주될 수 있다. 안티오키아에서 충돌이 어떤 식으로 드러났는지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사도행전에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무렵 유다에서 몇몇 사람이 안티오키아에 내려와 교우들에게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사도 15,1). 이 구절은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적어도 할례에 관한 한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이 문제는 모세의 율법에 대해 깊은 숙고를 하게 했고, 다음과 같은 합의를 보았다. 즉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와 유다화한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몇몇 신도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다른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이 문제를 의논하게”(사도 15,2) 하였다.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유다계 그리스도인과 그리스계 그리스도인이 있었는데, 그중 개종한 진실한 유다계 그리스도인 사이에 차음부터 논쟁이 있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개종한 진실한 유다인 가운데는 교양있고 큰 명성을 지닌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제일 거룩한 것으로 고수하고 있었다. 사실 바리사이파에서 개종한 어떤 이들은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일러주어야 합니다”(사도 15,5). 그렇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의무적이고, 비유다인들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면서 유다화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거기서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의 한 파 외에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아마 실천적 성격의 충돌이었던 것 같으나 거기에는 혼합된 교의적 문제들, 특히 유다인의 법을 통해 구원을 받느냐 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느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회의를 열었다”(사도 15,6). ‘사도들’이란 언급이 사도들 모두가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생각하게 하지는 않는다. 사도행전은 베드로, 바오로, 야고보만 언급하고 있지만 아마 요한도 참석했을 것이다(갈라 2,9). 문제는 두 부분으로 논의되었다 “오랜 토론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사도 15,7). 그의 말은 결정적이었다. 요점은 인간의 구원은 믿음을 통해 완성되며, 모세의 율법은 “우리 조상들도 감당하지 못했던 멍에”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장엄한 선언이 뒤따른다. “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주 예수의 은총으로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사도 15,11). 순간 회중은 조용해졌고,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인들 그 가운데서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사도 15,12) 보고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적들과 놀라운 일들은 (베드로의) 설교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보고 뒤에 사도 야고보가 말을 하였다. 베드로가 떠난 후부터 그는 예루살렘의 주교였다(사도 12,17). 생활태도가 아주 엄격한 야고보의 가르침과 설교에는 예수와 닮은 점이 있었다. 그의 주장은 베드로의 주장과 비슷했으나 실천면에서 중용의 길을 제안했다. 즉 야고보는 유다 그리스도인들과 동등하게 된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상황에서는 괴롭힘을 받을 수 있음을 걱정하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유다적인 것 몇 가지를 제안했다. 회중은 동의를 표하고 결론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음 몇 가지 긴요한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점을 더 지우지 않으려는 것이 성령과 우리의 결정입니다. 여러분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지 말고 피나 목 졸라 죽인 짐승도 먹지 마시오. 그러고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이런 몇 가지만 삼가면 다 잘될 것입니다”(사도 15,28-29).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도행전의 사본에 따르면 이 결론과 약간 다른 가르침을 얻는다. 즉 거의 모든 고대 사본 안에는 네 가지가 언급되는데, 이 가운데 소수의 사본은 세 가지 금기사항 -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않는 것, 간음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살인하지 않는 것 - 만을 요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금기사항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의무적인 것이기 때문에 유다인의 법과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간음하지 말라’ 또는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금지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요구 - 이것은 지나치거나 제한적이기에 있을 법하지는 않지만 - 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별히 모세의 율법(루가 18,20)에 따라 무가치하고 혐오스러운 혼인계약을 금지하려는 것인지는 토론거리다. 그렇다면 - 확실하게 보인다. - 이런 금지는 스캔들과 논쟁을 피하기 위해 더 옳고 적절했던 것이다. 최근에 발견된 더 오래된 필사본은 다음의 세 가지 규정을 언급하고 있다. 즉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말라.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먹지 말라. 피를 마시지 말라.” 잘 말려진 바와 같이 이 세 가지 규정은 유다인의 눈에 혐오스러운 것들이기에 개종한 이방인들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살면서 바로 그 문제로 논쟁을 피해야만 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모든 사도가 참석하지 않았고 전세계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세계공의회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탁자에서 두 개의 대립된 의견, 나아가 두 민족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 세계공의회였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7년 1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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