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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의 편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2,54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바오로의 편지

 

 

바오로는 그의 편지 안에 살아있다

 

서기 180년 7월 17일, 남자 셋 여자 셋 모두 여섯 명의 그리스도인이 재판을 받기 위해 카르타고 지방 총독 앞에 출석했다. 실리 지방의 순박한 사람들인 그들이 뒤집어쓴 범죄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총독의 눈은 피고인 가운데 하나가 지니고 있는 가방에 쏠렸다. “그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고 총독이 그에게 거칠게 묻자, 그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바오로의 책과 편지들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들 생활의 실천적 규범은 바오로의 편지였고, 그의 말씀으로 강해진 그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 순교자들은 바오로의 규범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들은 바오로의 편지에서 특별한 힘과 성 바오로를 발견했다.

 

구약이나 신약성서의 어떤 저자도 바오로처럼 많은 저작물을 남긴 사람은 없다. 비록 그 저작물의 수는 정확하게 모를지라도, 그 점은 모든 신자가 알고 있다. 이미 동방교회의 대설교가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당시에 자신의 설교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경기장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달렸고 또 어떤 말들이 일등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면서도, 성 바오로가 쓴 편지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통탄한 적이 있었다. 오늘날 이 말은 계속 되풀이된다.

 

사실 이것은 한번 알면 잊어버릴 수 없을 만큼 간단하다. 네 복음서에 이어 사도행전이 있고, 신약성서 마지막에 난해한 묵시록이 있다. 사도행전과 묵시록 사이에 21통의 편지가 있고, 이 가운데 14통의 편지, 즉 전체 편지 중 3분의 2가 바오로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이 14통의 펀지 순서는 언뜻 보기에 지나치게 마음대로인 것 같다. 이렇게 순서를 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개인 - 디모테오, 디도, 필레몬 - 에게 보낸 편지는 다른 교회에 보낸 편지 뒤에 있다. 로마 교회, 고린토 교회,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 같은 좀 긴 편지의 모음은 이어서 첫자리에 배치하였다. 이 가운데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는 시작 부분에 놓여있다. 네 개의 긴 펀지 가운데 로마서가 가장 마지막에 쓰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고대 사람들은 이러한 순서로 로마 교회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을 개연성이 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바오로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바오로의 편지 시리즈는 마감된다.

 

논리적으로 볼 때 이렇듯 끝에 배치함은 곧 초세기에 의심과 논란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임의적인 순서는 다만 오늘날 성서에서 편지들을 더 쉽게 알게 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지 바오로의 사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추적하는 데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이 편지들의 연대순은 각 편지를 이해하고 사도의 생각을 한층 깊이 꿰뚫어보는 데 가장 많은 도움을 준다.

 

가장 오래된 것은 데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두 통의 편지이다. 이 두 편지는 신약성서 최초의 저작물이고, 52년에 쓰였다. 오늘날의 살로니카(Salonica)인 데살로니카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오로는 자신의 설교가 거기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불러일으켰는지 느꼈다. 하나를 쓴 뒤 곧바로 다른 하나를 썼는데 이 두 통의 편지는 여러 문제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세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즉 55-58년에 그는 네 통의 긴 편지를 썼다. 두 통은 고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로, 그곳에서 일어난 남용을 꾸짖을 뿐 아니라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 신자들을 지도하기 위해서 썼다. 특히 고린토 교회에 보낸 첫째 편지에는 신생교회의 생활에 관한 훌륭한 고찰들이 있다. 거의 동시에 그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짤막한 편지와 특히 유다화한 사람들이 일으킨 문제 때문에 로마 교회에 보내는 긴 펀지를 썼다.

 

이 여섯 통의 편지를 바오로는 선교사로서 잠시 있었던 자신의 선교지에서 썼다. 그리고 정확하게 세 통은 행선지가 같은 이름으로 쓰여 있는 두 통의 편지가 입증하듯이, 그가 다른 곳보다 애정을 가지고 있던 도시이며 오랫동안 일을 한 고린토에서 보낸 것이다.

 

62-63년에 로마의 감옥에서 그는 통상 ‘옥중서간(수인서간)’이라 불리는 네 통의 짧은 편지를 썼다. 필립비 교회, 골로사이 교회, 에페소 교회, 그리고 필레몬에게 보낸 편지다. 감옥의 벽은 그의 통찰력을 어떤 식으로 바꿀 수도 축소시킬 수도 없었고, 그 감옥생활을 하던 기간에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신비를 묵상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다. 옥중서간이 더욱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두 통의 펀지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교회의 사목자들을 위한 수많은 권고가 발견된다. 이 때문에 이 편지들은 사목서간이라 불리며, 실제로 우리에게 옛 교회의 아주 중요한 구조에 관한 흥미로운 묘사를 제공한다.

 

이렇게 나누어본 네 그룹에서 우리는 바오로의 논리적이고 점진적인 맥락을 큰 어려움 없이 추적해 볼 수 있다. 그의 신학적 생각에는 분명히 발전이 있었다. 그의 생각들은 아주 오래된 편지 안에서 성장하고, 긴 편지 안에서는 심화되고, 옥중서간에서는 각별한 서정적 높이에까지 이른다. 편지를 읽어나가면서 필자 바오로가 성장하고 거대해지는 것을 볼 때 그것은 분명 하나의 발견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와 함께, 그의 믿음과 열정 안에서 성장하도록 신비스럽게 초대받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우리는 성 바오로 편지의 수를 줄이는, 즉 바오로의 이름으로 되어있는 어떤 편지들을 다른 사람들(사도의 생각과 또한 그의 문체와 특성을 잘 알고 있던 제자들이나 저술가들)에게 돌리는, 고대나 현대의 어떤 학자의 가정(假定)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논증들은 우리에게 전혀 확신을 주지 못한다. 외적이고 내적인 논증들로 유효성이 확인된 견고하고도 항구한 전통을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말들과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히브리인에게 보낸 편지는 바오로의 명백한 논점이 드러나는 다른 13통의 편지들 가운데 어떤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7년 9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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