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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창세기: 태고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5,319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창세기 : 태고사

 

 

내용

 

모세 오경의 첫째권은 창세기로서 유다인들은 이 책의 맨 처음에 나오는 단어를 따라서 이 책을 ‘브레쉿’(태초에, 맨 처음에)이라고 불렀다. 그리스 역본인 칠십인역(LXX)에서는 이 책이 ‘게네시스’(Genesis-생성)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세계와 인류의 생성에 관하여 상세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현대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창세기의 내용은 태고사(1-12장)와 성조사(12-50장)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태고사

 

1) 세계와 인간의 창조(1,1-2,4)

2) 남자와 여자의 창조(2,4-25)

3) 원조의 범죄와 처벌 (3,1-24)

4) 카인과 아벨(4,1-16)

5) 카인과 셋의 후손(4,17-26)

6)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계보(5,1-32)

7) 천상 존재들의 결혼과 노아의 홍수(6-8장)

8) 노아와의 계약(9,1-17)

9) 노아의 후손(9,18-27)

10) 지상에 퍼진 인종들(10,1-23)

11) 바벨탑(11,1-9)

12) 셈과 데라의 후손(11,10-32)

 

성조사

 

1) 아브라함(12-25장)

2) 이사악(25-26장)

3) 야곱(27-36쟁

4) 요셉(37-50장)

 

 

태고사(1-11장)

 

창조 이전에는 암흑과 혼돈밖에 없었지만(창세1,2) 창조로 인해 빛과 질서와 “좋은 것들”이 생기게 된다. 세상의 창조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이루어진다. “창조하다” - 히브리어로는 바라(bara) - 라는 단어의 사용에 있어서, 항상 하느님만이 그 주어가 되시며 창조의 경우에 있어서는 어떠한 재료도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세상의 창조는 무슨 특별한 수고나 공들임이 없이 “생겨라!” “되어라’” 혹은 “……하라” 등의 한마디 말씀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의지를 간단히 선포하시기만 하면 되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힘이요 능력이며, 결코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는 빈말로서 그리고 공허한 메아리로서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느님 말씀의 힘과 능력은 특히 예언서에 잘 나타나 있다. 창조하신 후에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1,10.12.18.21.25.31)는 말은 창조물들은 모두 좋고 아름답고 또한 서로 서로 질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 오염 등의 현상은 원죄 이후의 인간의 죄와 이기심에 의한 것이다.

 

다른 창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말씀에 의해 창조되지 않는다.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 하느님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독특하고도 진지한 결심을 하시고(1,26), 공들여 인간을 창조하신다(진흙, 모습, 입김). 특히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모습을 닮도록 창조하셨다. 원래 히브리어로 ‘모습’이란 구체적인 ‘형상’, ‘조각상’, ‘조형 작품’을 뜻하고, ‘닮다’는 말은 ‘유사함’, ‘비슷함’을 뜻하는데 후자는 상응 및 유사성을 강조함으로써 전자를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모습을 닮다”(1,26)는 말에 있어서, 이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됨으로써 전체적인 인간 - 영혼과 육신 모두를 포함한 전체적언 인간 - 을 가리키고 있으며 그의 영적 혹은 지적인 면(인간의 영혼)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인간은 영혼과 육신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전체적인 인간이며, 인간을 영혼과 육신으로 구분하는 것은 후대의 그리스 철학의 영향이다. 하느님의 모상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의 머리로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1,26.28). 인간이 동물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말(2,19-20)도 역시 그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주권에는 동물을 죽이거나 학살하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창조주의 뜻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 양자의 음식은 땅이 주는 소출이다(1,30). 이 사실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세상은 원래 평화로웠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인간이 동물(육식)을 먹게 된 것은 범죄 이후부터이다.

 

창세기 5장 3절에 의하면 아담은 “자신의 모습을 따라” 셋을 낳았다. 이것은 하느님이 세대의 계승과 아울러 당신의 모습을 전수하도록 인간에게 허가하셨다는 사실을 뜻한다. 따라서 원죄로 인해 ‘하느님의 모습’이 상실되었다고 할 수 없다. - 노아 시대의 인간도 하느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9,6). 물론 타락 설화는 인간의 범죄로 인해 창조 때의 본성이 대단히 손상받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 안의 하느님 모상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창세기의 설화는 아무것도 명백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다(2,18). 그가 외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더욱이 혼자서는 번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27-28). 동물들 중에는 아담의 일을 거들 짝이 없었다(2,20). 일을 거든다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을 거든다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함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물들 중에는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아담의 짝이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다(2,21-22). 그 의미는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둘은 서로 하나요 한 몸이라는 것이다(2,23-24).

 

창세기 3-11장은 인류의 범죄사에 대해서이다. 하느님은 원조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는 제외하고 그 밖의 모든 나무의 열매는 따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선과 악에 대해 안다.”는 말은 모든 것에 대해 능통하고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전지 전능하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은 비록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삼라 만상을 지배할 권한을 그분에게서 받았지만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조가 그 열매를 따먹은 것은 피조물로서의 한계를 넘어 자신의 존재와 삶을 전적으로 신적으로 확대하고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한 것(3,5 참조)과 같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자존(自存)하고 자립(自立)하고 자족(自足)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죄이며 모든 악의 뿌리이다. 나중의 천상 존재와 지상의 딸들이 결혼한 죄(6,1-4)나 바벨탑의 죄(11,1-9)도 역시 이와 비슷한 종류의 죄이다.

 

카인은 질투와 증오심을 자제하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만다(4,1-8). 원죄와 더불어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그것은 살인의 죄까지로 확대되어 간다. 원죄로 인해 저주받았던 땅은 아벨의 피를 마심으로써 더욱 저주를 받아 인간이 이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더 이상 소출을 내주지 않으며, 카인은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벌을 받게 된다(4,11-12). 나아가 카인의 후손 중에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등장하게 되자(4,22) 대량 학살의 가능성까지 생기게 된다. 라멕의 복수의 노래(4,23-24)는 세상 안에 복수심과 증오심이 한정 없이 증대해 가고 죄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인간과 더불어 온 세상(인간의 죄 때문에)을 홍수로 쓸어버리신다(6,5-12). 하느님은 이러한 모든 종류의 죄에 대해 처벌하셨지만 그래도 은혜를 완전히 거두시지는 않으신다. 원조인 아담과 하와를 죽이지 않으시고 옷 입히시고, 카인을 보호해 주시고, 노아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신다.

 

[경향잡지, 1992년 4월호, 박광호 베드로(대구 가톨릭 대학 교수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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