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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여호수아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3,360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여호수아서

 

 

명칭

 

신명기 학파의 역사서의 제1부는 그 중심 인물의 이름을 따서 “여호수아서”라고 불린다. “여호수아”(Yehosua)라는 이름은 하느님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은 순수한 형태의 야훼 신앙을 표현해 준다. 즉 이 이름은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또는 “야훼께서 구원하시기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유배 기간 동안에, 그리고 역대기와 에즈라서와 느헤미아서에는 “예수아”(Yesua)라는 축소된 형태로 나오는데 그리스어 “예수”는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라틴어 형태는 단축형인 요수아(Yosua)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 단축형은 구약 성서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성서에는 기원전 8세기에 살았던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과 예언자 호세아가 이 이름을 지녔다. 여호수아가 호세아로 나와 있는 구절은 민수기 13장 8-16절과 신명기 32장 44절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여호수아가 아니며, 그 저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여호수아서는 기원전 1250~1225년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침입하여 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그 후 점령지를 열두 지파간에 분배한 역사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내용의 분류

 

여호수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1부는 가나안 정복에 관한 보고이며(1-12장), 제2부는 약속의 땅을 각 지파에게 분배한 기록(13-21장)이다. 제3부는 요르단 동쪽 지파들의 귀환(22장)과 여호수아의 업적을 절정으로 끌고 가는 그의 고별 연설(23장)과 세겜에서 이루어진 지파 대회 및 계약 갱신(24장)에 대해서이다. 내용을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가나안 정복(1,1-12,24)

 

a. 요르단강 건넘 (1,1-5,12)

b. 첫 정복(5,13-8,35)

c. 남부에서의 성공(9,1-10,27)

d. 남부에서의 정복 전쟁과 여러 도시들의 함락(10,28-43)

e. 북부에서의 정복 전쟁(11,1-15)

f. 가나안 정복의 완료(11,16-23)

g. 요르단강 동쪽에서 모세가 정복한 왕들(12,l-6)

h. 가나안에서 여호수아가 정복한 왕들(12,7-24)

 

2) 가나안 땅의 분배(13-21장)

 

a.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들(13,1-7)

b. 요르단강 동쪽 부족들이 차지한 땅들(13,8-33)

c. 가나안 땅의 분배(14-19장)

d. 도피성(20장)

e. 레위인들의 성읍(21장)

 

3) 요르단강 동쪽 지파들의 귀환(22장)

 

4) 여호수아의 마지막 날들(23-24장)

 

 

내용분석

 

1) 가나안땅의 정복

 

1장은 땅 정복을 위한 준비로서 땅 약속의 성취에 관한 신학적 해석을 마련해 주고 있다. 땅의 선물은 오직 하느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이 사실은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느님의 말씀인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1,6.7.9.18)는 표현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이 말은 적진을 치라는 명령 속에서도 암시되어 있다. 하느님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고(1,7), 여호수아는 그의 부하 장수들에게 땅 정복을 위해 떠나라는 명령을 전달한다(1,11). 그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이어서 여호수아에 대한 충성을 서약한다(1,16-18). 이렇게 1장은 땅 정복을 위한 마음 자세를 말해 주고 있다.

 

2-12장은 요르단강 서편 지역의 정복에 관한 기사이다. 이 부분의 중심되는 부분은 6장으로서 예리고 정복 기사이다. 처음 다섯 장(章)은 건너 가라는 명령(1장), 예리고 정탐꾼 파견(2장), 요르단강을 건넘(3-4장)에서부터 정복을 위한 최종 준비에 이르기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예리고에 이어 두번째로 이스라엘이 쳐부순 곳은 아이(Ai)라는 성읍(城邑)이다(7-8장). 그러나 이 성을 함락시키기 전에 이스라엘은 야훼께 봉헌된 거룩한 물건(헤렘)을 범한 아간이라는 사람 때문에 아이의 주민들에 의해 참패한다(7장).

 

그 다음의 성읍인 기브온은 지혜롭게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평화적으로 굴복하고 말았다(9장). 이 시기까지는 정복된 점령지가 좁은 베냐민 영토로 제한되어 있었다. 10-11장은 남부의 왕들(10,1-27)과 북부의 왕들(11,l-9)을 쳐부순 것에 관한 도식적인 기사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남부(10,28-43)와 북부(11,10-15)에서의 정복 상황에 대한 열거가 나오고, 끝으로 전체 영토 정복에 관한 설화가 덧붙여 있다(11,16-23).

 

1-12장은 매우 상이한 자료들이 모여 하나의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자료들은 대부분 베냐민 지파의 영토와 베냐민 지파의 성소(聖所)인 길갈과 관련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 아간 이야기, 인접한 유다 지파 영역으로의 소규모의 진격, 8장 30-35절에 나오는 세겜 총회, 그리고 10장 16절 이하에 나오는 두 원정 이야기 등은 예외이다.

 

예리고 정탐 설화(2장)는 어떻게 하느님의 약속(1장)이 이스라엘 군대보다 앞서며 또 어떻게 그들이 정복의 길을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를 논증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요르단강을 건너는 설화(3-4장)는 하나의 엄숙한 행진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설화의 형성 배후에는 이스라엘의 축제 의식(祝祭儀式)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축제 의식 때에 계약의 궤가 행진 대열을 따라 이동되었다.

 

4장 21-22절에는 원인론적(原因論的) 설화에 관한 좋은 예가 나타나 있다. 즉 조상들이 세워 둔 기념비들은 하느님에 대한 찬양을 확대 발전시키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녀들이 그 돌들의 의미를 물으면 부모들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열두 개의 돌들이 세워지게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한 첫 단계는 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고(5,1-9) 예리고 평야에서 과월절을 지킴으로써 제의상(祭衣上)의 의식을 갖추는 것이었다(5,10-12). 광야의 음식이던 만나가 이제 중단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부터 그 땅의 소출을 먹기 시작했다.

 

예리고 정복(6장)은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의 결과로 묘사되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종교-제의적 행진에 따라 그 성 주변을 돌자 성벽이 무너지고 그 성은 함락된다. 아간의 도둑질에 관한 기사(7장)는 ‘거룩한 전쟁’의 요소인 ‘헤렘’과 관계되는데, 이것은 전쟁을 통해 차지한 모든 물건을 야훼께 바친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실수로 인해 전 군대가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범법자는 제비를 뽑음으로써 밝혀졌다(16-18절). 이 범법자를 처형함으로써(22-26절) 이스라엘에게 닥친 위험이 제거되어 이스라엘은 ‘아이’를 재차 공격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8장).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어 살아남게 된 기브온 사람들의 약삭빠른 처신(9장)은 정복 당시에 가나안 내의 여러 곳에서 일어났던 현상 중의 한 예인데, 가나안 사람들이 평화적인 동화(同化)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항복한 사건이다.

 

10장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가나안의 다섯 왕들이 이스라엘과 기브온의 동맹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맹을 결성했는데 이스라엘은 이 동맹에 대항하는 방어전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1-4절). 그들은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우호관계를 맺었다 해서 전군을 동원하여 기브온과 대진(對陣)하고 공격을 개시하였다(5절). 기브온 사람들은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사람들(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했다(6절). 여호수아는 밤을 틈타서 다섯 왕들을 기습하여(7-15절) 그들을 사로잡아 쳐죽여 버렸다(16-27절). 이 전쟁도 베냐민 영토 안에서 일어났다. 남부 정복의 요약이 10장 28-43절에 잘 나타나 있다.

 

11장은 10장과 분명히 평행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북부의 정복 전쟁에 관한 기사는 남부의 정복 전쟁에 관한 기사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북부의 정복 전쟁을 다루고 있는 11장의 첫 부분에는 가나안의 북부 왕들이 동맹을 맺고 갈릴리의 메롬 샘터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공격하는 내용이 나타난다(1-l5절). 이스라엘은 그들을 격파한다는 단순한 요약 형태(6-9절)로 북부 정복 기사를 끝맺는다. 여기에는 하솔 근처의 도시들만이 언급되어 있다. 가나안 땅 전체가 정복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는 11장 16-23절에 나타나 있다. 2-12장 부분은 12장에서 정복된 왕들의 명단으로 끝을 맺는다.

 

2) 정복한 땅의 분배(13-21장)

 

요르단강 동쪽 지역으로부터 시작한 땅 분배에 관한 기사(13장)가 13-21장의 중심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요르단강 서쪽 지역을 각 지파 사이에 나누는 기사가 나온다(14-19장). 그 다음으로 여섯 개의 도피성(20장)과 레위인의 성읍(21장)을 열거하고 있다. 땅 정복과 마찬가지로 땅 분배에 관한 내용도 여호수아서의 중심되는 기사이다. 왜냐하면 땅 분배야말로 성조(聖祖)들의 관심의 중심이었고 또한 에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쟁점이던 약속(창세 12,7; 28,13; 출애 3,8; 여호 21,43.45)이 성취되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땅 분배가 약속에 속한 문제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있어서 기본적인 특정이다. 이스라엘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또는 야곱의 아들로서 축복의 약속을 얻게 되며 동시에 땅의 선물을 받게 된다. 하느님이 그것을 주신 것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모든 부족, 모든 혈족들이 땅 분배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3) 부록(22-24장)

 

22장은 요르단강 동편 지파들(르우벤 지파, 가드 지파, 므나쎄 지파 절반)의 귀향에 관한 보고만 포함하고 있다. 이들 지파들은 가나안 땅 정복에 참여했던 지파들이다. 제단 문제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과 의견 충돌이 있지만(10-20절), 납득할 만한 설명을 통해(21-29절) 오해는 해소된다(30-34절).

 

24장은 세겜에서 거행된 계약 갱신에 관해서이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과거의 하느님의 위대한 은혜를 상기시킨 후(2-13절), 어느 신을 섬길 것인지 그들에게 결단을 요구한다(14-15절). 백성들은 모두 야훼만을 섬기리라고 맹세한다(16-18절). 여호수아는 그들의 맹세에 대한 증인으로서 돌을 세운 뒤(27절)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계약을 체결한다(25절).

 

23장은 24장과 비슷한 내용이다. 23장은 백성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고별 인사 혹은 유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23장은 24장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더욱 긴박하게 하느님과 그분의 법규에 대해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23장에는 특히 신명기적 성격의 언어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여호수아서는 다시 한번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들을 성실하게 지키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23,14-21,45). [경향잡지, 1993년 5월호, 박광호 베드로(대구 가톨릭 대학교 교수 · 신부)]

 

 

여호수아서와 신명기 학파의 역사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와 아주 가까운 유사성을 띠고 있다.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에서 예고된 계획들이 완성된 것에 대한 서술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즉 땅의 정복(1-12장), 지파 사이의 땅의 분배(13-21장), 야훼 예배의 성립(8,30-35; 21,1-28)이 그것이다. 신명기를 특징짓는 신학적 주제, 즉 계약과 법, 성전(聖戰)은 여호수아서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양자 모두 모세의 계승가로서의 여호수아의 역할을 강조한다.

 

신명기 - 여호수아서는 창세기 -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설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히브리 경전에서 이에 뒤따르는 다섯 권의 책들(판관기, 사무엘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도 신명기적 관점에 의해 편집되었으며, 신명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를 연속해서 읽노라면 모세부터 유배까지 이스라엘 역사의 연속을 볼 수 있다. 이 연속은 다른 시대들에서 유래한 잡다한 전승들을 내포하지만, 여기에는 전체적인 구성과 신학적 관점의 통일성이 아주 뚜렷하다. 따라서 여호수아서의 편집은 유배 중의 단일한 신명기적 역사가의 편집에 의한 작품임이 틀림없다.

 

 

야훼의 땅 약속의 성취

 

옛 신앙 고백문(신명 26,5-9;여호 24장)에 나타나 있는 구원사 묘사에 있어서 가나안 땅의 하사는 야훼의 최후의 구원 행위이다. 하느님께서 성조들에게 하신 땅의 약속은 아주 오래 전에 주어졌다. 그런데 야훼스트의 성조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약속을 체계화하고 확장시켰기 때문에 바로 이 약속이 모세 육경(창세기 - 여호수아서) 전체를 흐르는 주제가 되었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여호수아 영도하의 정복을 ‘성조들에 대한 약속’과 연관시키게 한다.

 

정복 설화는 “이 모든 백성이”(여호 1,2)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한다. “온 이스라엘”(3,1.7)이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온전히 일치단결하여 가나안 땅으로 행진해 들어갔다. 그런데 이러한 서술은 판관기 1장 1절 이하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후자에 의하면 부족들은 제각기 개별적인 노력으로 땅을 차지했으며, 정복되지 않은 땅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호수아서의 서술은 전 이스라엘에 의한 땅 정복을 묘사하는 데에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의도는 끝 부분에 아주 간결한 설화자의 말로 표현된다. 즉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이스라엘은 전 가나안 땅을 “일격에” 차지했다는 것이다(여호 10,42). 이것은 야훼의 구원 행위에 대한 후대의 이스라엘의 장엄한 묘사를 완전하게 해준다. 정복 설화의 의도는 독자에게 야훼께 대하여, 다시 말해서 어떻게 야훼께서 당신 백성을 인도하시고 영광을 차지하셨는가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야훼의 눈에 이스라엘은 항상 하나의 단일체이며, 구원 역사에 있어서 그분은 항상 전 이스라엘을 상대하신다는 것이다. 신앙의 측면에서 정복 설화들을 잘 이해하고 정리했기에, 그것은 그 내면에서부터 신앙의 각도에서 보여질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정복에 대해 언급할 때 실상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위대한 과거를 단순히 회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세대가 각기 고유한 방법으로 공식화해야 하는 야훼께 대한 일종의 신앙고백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땅 소유 행위에 있어서 야훼께서는 끝으로 “이스라엘에 평온함을 주셨다.” 이 “평온함”이란 여러 번 나타나는데, 이를 신명기의 표현 양식으로 이해해 본다면, 그 의미는 땅을 하사함에 있어서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하는 가장 위대하고 최종적인 선물을 뜻한다. 이 선물로써 야훼는 당신의 약속을 온전히 이루신다(1,13.15; 11,23; 21,44; 22,4; 23,1).

 

이러한 관점에서 21장 43-45절은 모세 육경을 마무리하는 데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렇게 야훼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모든 땅을 주셨다.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하고 정착하였다. 야훼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사방에 평화를 주셨다. 원수들 가운데 아무도 그들을 적대해 일어서는 자가 없었다. 야훼께서 그들의 손에 원수들을 붙이셨던 것이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가문에 약속해 주신 온갖 좋은 일은 하나도 그대로 안된 일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 여기서 여호수아서의 편집자는 약속과 성취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아주 포괄적으로 숙고하고 있다. 모든 것이 성취된 시점에서부터 다시 한 번 야훼의 “좋은 말씀들”(약속)을 되돌아 보고, 이들이 지금 눈에 보이게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검토해 보고 있다. 그 결과는 약속들이 하나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모두 역사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을 위한 역사 안에서의 위대한 야훼의 계획은 목표를 달성했으며, 이것이 바로 모세 육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23,14 참조). 21장 43-45절과 23장 14절에서 육경에 대한 가장 궁극적이고 포괄적인 해석이 주어져 있다.

 

그렇지만 신명기가 도달하는 이러한 위대한 결론에는 숨어 있는 ‘경고’의 목소리를 감지해야 한다. 야훼의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그분의 위협들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불순종할 경우에는 위협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23,11-13)는 것이다. 이러한 염려는 신명기 저자가 땅의 하사(은혜)와 시나이에서의 계명 수여(법) 사이에 있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1,7 이하; 22,5; 23,6 등).

 

 

여호수아서의 교훈

 

먼저 여호수아서는 야훼께 우리에게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모든 약속들은 그 어느 것도 효력을 상실하지 않는다(21,45)는 사실을 말해 준다. 즉 그분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그분의 성실하심을 증언하고 또 찬양하고 있다.

 

모세 이후 ‘계약’이란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여호수아의 활동은 그것을 실제로 드러내 보인다. 즉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의지에 순종할 때 하느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신명기계 편집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현재의 역사를 심판하는 기준이다. 다시 말해서 북왕국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함락과 남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불행은 계약에 대한 불충실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불행한 반역은 다른 신들에 대한 경배와 다른 나라들과의 동화(同化)에 의해 그 절정에 달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호수아서에서는 적들과 그에 소속된 모든 것을 완전히 전멸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느님의 땅에 대한 약속과 성취는 후대에도 희망을 제시해 준다. 나라는 남북으로 분열되고 적들의 침략으로 인해 북부는 벌써 멸망했고 남부도 머지 않아 멸망할 지경이었다. 이러한 불행 가운데서도 신앙은 새로운 실현을 기대하는 약속에로 부풀었으며 평화를 갈망하였다. 여호수아서의 역사가 바로 그 상(像)을 제시해 주고 있다(1,13.15; 21,44; 22,4; 23,1; 이사 14,3; 28,12). 이스라엘의 몰락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보증에 의해 유지되었으며, 유배 시대의 에제키엘은 미래의 부족들 사이에 있을 회복된 땅의 분배에 관해 말하고 있다(에제 47-48). 이렇듯이 복지(福地)를 소유하거나 상속받는다는 것은 메시아적 및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에제 36,12; 37,25; 이사 57,13; 60,21; 65,9), 하느님을 신뢰하는 시련을 겪은 이들의 기다림을 표현한다(시편 25,13; 37,3.9).

 

땅에 대한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신약 성서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5) -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는다.”는 말씀이 마태오 25장 34절, 고린토 전서 6장 9-10절과 15장 50절,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 21절에 나타나 있다. 히브리서는 “하느님의 평화” - 가나안에서의 평화는 이에 대한 예시(豫示)일 뿐이다 - 에 대해 준비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4,8; 묵시 14,13).

 

여호수아에게 맡겨진 역할은, 하느님의 한결같은 구원 행위를 잘 설명해 준다. 거룩한 역사의 모든 단계에 있어서 하느님의 계획은, 모든 백성을 대신하는 한 사람의 어깨에 놓여 있다. 여호수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상속에 초대하시는 ‘이스라엘의 일치’를 표현한다. 그의 승리는 선택된 공동체를 위한 하느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드러내 준다. 또한 그의 이름 자체도 성서적 전통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즉 민수기 13장 16절에 의하면 모세는 자기 후계자의 이름을 “호세아’(해방)에서 “여호수아”(야훼는 해방)로 바꾸었다. 이 개명(改名)은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 - 성서는 항상 이를 ‘구원’이라 정의한다 - 에로 불리움 및 참여를 뜻한다. 또 다른 해방들도 뒤이어질 것이고, 하느님께서 다른 여호수아 즉 당신의 아들 예수 - “예수”는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그리스어식 표현이다 - 를 보내실 때까지 더욱 결정적인 다른 종류의 해방(바빌론에서의 해방 등)에 대한 희망이 전개될 것이다. [경향잡지, 1993년 6월호, 박광호 베드로(대구 가톨릭 대학교 교수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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