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구약] 효도와 보편주의에 대한 모범서 : 룻기 내용 분석 판관(判官)들의 시대에 유다 가문의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 마흘론과 길룐이 기근을 피해 베들레헴으로부터 모압으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죽고 두 아들은 오르바와 룻이라는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10년 뒤에 두 아들도 자식 없이 죽게 되자 세 과부만 남게 된다. 그 무렵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어 이스라엘 땅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 모압 시골에 들려 왔다. 그래서 나오미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오르바는 나오미의 간절하고 강한 권고에 따라 자기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모시겠다고 버틴다. 그래서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간다. 양식을 구하기 위해 룻은 시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밭에 나가 추수하는 일꾼들의 뒤를 따르며 이삭을 줍는다 - 이는 추수할 때에 이삭을 모조리 거두어 들이지 말고 과부와 고아들을 위해 남겨 두라는 율법을 반영하고 있다. 그 밭에서 룻은 엘리멜렉의 친척인 보아즈를 만나는데 그는 그녀에게 많은 양식을 주는 등 친절을 베푼다. 이 친절에 대해 나오미는 룻을 보아즈에게 시집보내기로 작정한다.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여 룻은 밤에 보아즈에게 가서 자기를 아내로 삼아 줄 것을 청한다. 비록 보아즈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룻의 시아버지 엘리멜렉과 더 가까운 친척이 룻을 아내로 맞이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레위 25,25; 27,9-33; 민수 27,1-11 참조)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그가 거절하자 보아즈는 룻을 아내로 맞아들인다(신명 25,5-10 참조). 이들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오벳이라 부른다. 이렇게 룻과 나오미의 노력으로 가문의 대가 이어지고, 그 가문은 가장 위대한 명예를 얻게 된다. 이 아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요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구조 룻기의 구조는 대칭적으로 되어 있다. 1-2장과 3-4장은 각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2장 안의 세 부분은 3-4장 안의 세 부분과 병행을 이루고 있다. 첫째 부분(1,1-5)은 엘리멜렉의 가정 전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인들의 여행(1,6-7과 1,22)으로 둘러싸여 있는 둘째 부분(1,6-22)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유대에 대해(1,8-18), 그리고 나오미와 베들레헴 여인들의 만남에 대해(1,19-21) 보고하고 있다. 셋째 부분(2,1-23)은 보아즈에 대한 서론(2,1)에 이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1)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얻어 밭에서 이삭을 줍는다(2,2). 2) 룻은 밭에 나간다(2,3). 3) 보아즈는 룻에 대해 알고자 한다(2,4-7). 4) 보아즈는 룻이 자기 밭에서 일하도록 허락하며 그녀에게 음식을 준다. 그는 자기 종들에게 룻을 도와주라고 명한다(2,8-17). 5) 룻은 나오미에게 돌아와 보아즈와 만난 사실에 대해 말하고 나오미의 충고를 받아들인다(2,18-23). 3-4장의 첫째 부분은 2장과 비슷하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요소로 시작한다. 1) 나오미는 룻을 보아즈의 타작 마당으로 보낸다(3,1-5). 2) 룻은 타작 마당으로 간다(3,6). 3) 보아즈는 룻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한다(3,7-9). 4) 보아즈는 룻이 칭찬받을 만한 여자임을 알고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룻에게 음식을 준다. 그는 룻을 다른 남자들에게서 보호한다(3,10-15). 5) 룻은 나오미에게 돌아와서 보아즈를 만난 일을 보고하고 나오미의 충고를 받아들인다(3,16-18). 3-4장의 둘째 부분(4,1-17)은 1-2장의 둘째 부분(1,6-22)과 병행을 이루고 있는데, 그 내용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유대(4,14-17)와 베들레헴의 여자들과 나오미의 만남(4,14-17)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계보에 관한 마지막 내용(4,18-22)은 주제상 맨처음의 가정에 관한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룻기의 구조를 전체적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A 1-2장 a 1,1-5 b 1,6-22 c 2,1-23 A' 3-4장 c' 3,1-18 b' 4,1-13. 14-17 a' 4,18-22 이렇게 룻기의 대칭적인 구조는 설화의 통일성을 확인해 주며, 설화에 균형과 리듬을 부여해 준다. 또한 그 구조는 중요한 주제들을 돋보이게 해주며, 구성과 내용과 의미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말해 주고 있다. 정경(政經) 내의 위치 히브리어 성서 안에서 룻기는 성문서(聖文書)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 정확한 위치는 다양하다. 먼저 바빌론 탈무드에 따르면 룻기는 성문서의 제일 앞부분에 위치해 있고 그 뒤에 시편이 이어진다. 룻기는 다윗의 계보로 끝남으로써 다윗의 것이라 여겨지는 시편을 위한 길을 열어 놓고 있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룻기는 ‘므길롯(축제 오경)’ 안에 위치해 있다. 룻기는 축제 오경의 한 권으로서 추수절 기간 동안 주간 축제 날에 낭독되었다. 축제 오경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전례적’인 것으로서, 여기서 룻기는 과월절에 낭독된 아가서 뒤에 위치해 있으며, 룻기 뒤에 전도서, 애가, 에스델서가 이어진다. 둘째, ‘연대기적’인 것으로서, 여기서는 룻기가 제일 앞에 자리해 있고 그 뒤에 아가, 전도서, 애가, 에스델서가 이어진다. 둘째 경우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히브리어 성서의 모습이다. 여기서 룻기는 잠언 뒤에 자리해 있다. 그리스어 성서에서 룻기의 위치는 히브리어 성서의 경우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리스어 성서에서 룻기는 판관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위치해 있다. 우리말 공동 번역은 이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이 순서에 영향을 끼친 것은 룻기 서두에 나타나 있는 판관들에 대한 언급(1,1), 다윗의 등장을 준비해 주는 다윗의 계보에 대한 언급(4,18-22), 그리고 사무엘이 룻기를 썼다는 고대의 전통 등이다. 목적과 가르침 룻기는 풍부한 내용과 복합성 때문에 한 가지 목적만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룻기는 여러 가지 차원의 의미 즉,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심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룻기의 목적 중 대표적인 것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풍습을 유지하려는 목적, 율법과 일상 생활을 조화시키려는 목적, 다윗과 그 왕국을 합법화하려는 목적, 교훈적인 훌륭한 이야기를 해주려는 목적, 이방인 개종자를 격려하려는 목적, 편협한 민족주의를 거슬러 보편주의를 함양하려는 목적, 효도와 충성의 덕을 드높이려는 목적, 가정의 유대를 찬미하려는 목적, 부인들의 전통을 보존하려는 목적,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심을 증명하려는 목적 등이다. 이 모두가 룻기의 목적으로서 가능하다. 이 중에 효도와 보편주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효도와 애정 룻기에서 나타나는 주제는 보통의 일반적인 의무를 초월하는 룻의 효도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룻기가 친절한 행위를 베푼 사람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가르치기 위하여 글로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룻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아내에게서 기대될 수 있는 남편에 대한 충성스러운 헌신이 아니라, 어떤 합리적인 의무와 요구를 뛰어넘은, 외국인인 시어머니에 대한 헌신과 효도이다.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애정과 헌신뿐만 아니라, 며느리 룻에 대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애정도 이 책 전체에 나타나 있다. 룻기의 가치는 확고한 효도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시어머니의 땅으로 끈기 있게 따라온 룻의 행위는, 번영과 행복을 맞이하고 다윗 왕가의 여조상(女祖上)이 되는 영예를 누림으로써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 룻기는 룻의 인격과 모범적인 행동을 통해, 의무와 사랑의 요구를 진지하고 고결하게 존중하면 번영과 영예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동시에 올바른 행동에 대한 원칙과 그에 대한 보상은, 인종에 관계 없이 유다인과 마찬가지로 모압 여인에게도 적용됨을 보여 주고자 한다. 보아즈가 룻을 처음 만났을 때에 한 말은 룻기의 종교적인 내용을 보여 준다. “나는 다 들었다. 네가 남편이 세상을 뜬 뒤에도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시었고 고향을 버리고 부모를 떠나 낯선 이 백성에게 왔다는 말을 들었다. 네가 그렇게도 갸륵하게 행하였는데, 어찌 야훼께서 갚아 주시지 않겠느냐? 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날개 아래로 안식처를 찾아왔으니, 너에게 넉넉하게 갚아 주실 것이다”(2,11-12). 2) 보편주의 그렇지만 이 책의 강조점은 시어머니에 대한 룻의 효도 그리고 룻에 대한 시어머니의 애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룻기가 자주 강조하는 것은 룻이 이방 여인이라는 점이다.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우받고 있으며, 그녀에게서 다윗의 조상이 태어난다는 것은 폭 넓은 보편주의를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룻기에 민족적인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주의에 대한 강조가 들어 있는 것은, 룻기가 쓰여진 당시에 유행하던 배타주익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다. 흔히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큰 특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모든 나라들은 하느님의 관심과 보살핌에서 제외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배타주의적 경향에 대항하기 위해 위대한 다윗 왕의 여조상(女祖上)이 된 모압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룻기가 쓰여진 것이다. 이같이 룻기의 내용은 한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가문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로서, 이러한 내용은 배타주의(에즈 9-10장; 느헤 13장)와 보편주의(이사 66,18-23; 요나서 참조)의 문제를 지니고 있던 바빌론 유배 이후의 시대에 알맞은 것이다. 룻기는 4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이지만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는 오늘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할지를 말해 주고 있으며, 또한 편협한 배타주의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경향잡지, 1994년 3월호, 박광호 베드로(대구 가톨릭 대학교 교수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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