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이야기] (37) 영웅의 탄생
항쟁의 깃발을 높이 올리다 - 마카베오는 ‘쇠망치’라는 뜻이다. 별명만 들어도 유다 마카베오의 외모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마카베오는 근육질의 남자였다. 용맹도 남달랐다. 성경도 유다 마카베오에 대해 “먹이를 보고 으르렁거리는 힘센 사자 같았다”(1마카 3,4)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은 전쟁에서 승리한 마카베오를 묘사한 페트로 파울로 루벤스의 작품.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미국 텍사스에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 이론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주위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오늘날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지구촌 한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그 예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하는 유대민족의 저항도 아주 작은 우발적 사건 하나에서 출발한다. 영웅 마카베오의 등장도 나비 효과의 전형적 한 예인 셈이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에 처해졌다. 태어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 수도 없었다. 하느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목숨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사제 마타티아스는 그러나 신앙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을 이끌고 예루살렘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모데인)로 이주를 한다. 그런데 왕의 신하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했다. 쉽게 물러설 마타티아스가 아니다.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1마카 2,21-22) 하지만 당시 유대인 중에서도 배교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 중 한 명이 마타티아스가 보는 앞에서 직접 다른 신을 모시는 제단에 제물을 바치려 했다. 이 모습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1마카 2,24) 그래서 그 자리에서 그 유대인을 죽인다. 단순한 우발적 살인이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마타티아스와 그 가족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에게 신앙을 버릴 것을 강요하던 왕의 신하들까지 그 자리에서 죽이고 산으로 달아났다. 항쟁의 씨앗이 뿌려졌다. 마타티아스는 이후 게릴라전을 통해 몇 번의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던 마타티아스가 늙어서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그래서 아들들을 모두 불러 유언을 남긴다. 유언을 듣기에 앞서 마타티아스의 다섯 아들에 대해 살펴보자. 이들에 의해 훗날 본격적인 항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맏아들이 요하난, 둘째가 시몬, 셋째가 유다, 넷째가 엘아자르, 막내가 요나탄이다. 이중 셋째의 별명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마카베오’다. 마카베오는 ‘쇠망치’라는 뜻이다. 별명만 들어도 유다 마카베오의 외모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근육질의 남자였다. 둘째 형 시몬이 학자형이었던 반면 유다 마카베오는 어릴 때부터 장군감이었다. 용맹도 남달랐다. 성경도 유다 마카베오에 대해 “거인처럼 가슴받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허리에 차고 전투할 때마다 칼을 휘두르며 진영을 보호하였다. 그는 사자처럼 활약하였으니 먹이를 보고 으르렁거리는 힘센 사자 같았다”(1마카 3,3-4)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가 마카베오를 비롯한 5형제를 불러 놓고 유언을 한다. “얘들아, 용감히 행동하고 율법을 굳게 지켜라.… 이방 민족들과 맞서 싸워라. 너희는 율법을 지키는 이들을 모두 모아 너희 겨레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이민족들에게 복수를 하고 율법이 명령하는 것을 잘 지켜라.”(1마카 2,64-68) 5형제 특히 셋째 마카베오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어떤 각오를 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하는 5형제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항쟁에 뛰어들게 된다. 마타티아스가 죽었다는 소식은 왕의 귀에도 들어갔다. 당장 토벌군을 보낸다. 첫 토벌군의 대장은 아폴로니우스였다. 유다 마카베오는 이 군대를 간단히 물리쳤다. 그러자 왕은 이번에는 군사령관 세론을 직접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다 마카베오의 용맹에 밀려 퇴각했다. 왕은 이제 마카베오 5형제의 힘이 만만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 5형제를 나뒀다가는 제국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왕은 당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신경을 써야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작은 반란군 무리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체면이 설 수 없었다. 그래서 5형제 군대를 괴멸시키기 위한 대규모 군대를 편성했다. 예루살렘을 비롯한 가나안 땅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쟁의 판도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상인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상인들은 늘 이길 가능성이 높은 쪽에 붙는다. 그래야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전쟁이 난다는 소문을 듣고 돈(금과 은)과 족쇄를 가지고 진압군 진영으로 몰려 갔다. 전쟁이 끝난 후 유대인 포로들을 돈으로 사고, 그들에게 족쇄를 채워 노예로 팔기 위해서였다. 상인들뿐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도 진압군의 승리를 예상했다. 당연했다. 진압군은 보병 5000명에 정예 기병 1000명이었다. 이에 대항하는 마카베오 5형제의 병력은 3000명에 불과했다. 기병도 없었다. 또 진압군은 갑옷 등 무장이 완벽했다. 게다가 병사 대부분이 전투 경험이 풍부한 용병들이다. 하지만 마카베오 5형제의 병사들은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갑옷과 칼 등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두 군대가 부딪힌 곳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엠마오 평원이었다. [가톨릭신문, 2009년 11월 22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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