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2) 독실한 유다교 집안의 로마 시민 이름 바오로의 이름을 가톨릭에서는 ‘바오로’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바울’이라고 부른다. 신약성경에 쓰인 대로 바오로의 이름을 표기하면 ‘파울로스’가 된다(갈라 1, 1; 1코린 1, 1; 로마 1, 1). 그러나 사도행전을 보면 7, 58~13, 7에서는 ‘사울’이라고 하다가 13, 9에서는 ‘사울’ 일명 ‘바오로’라고 동일시 한 다음, 13, 13~28, 25에서는 ‘바오로’라고만 한다. 그런가하면 사도행전에 세 번에 걸쳐 소개되는 바오로의 회심체험(9, 1~19; 22, 3~21; 26, 9~18)에는 그를 일컬어 ‘사울’이라고 부른다. 사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최초로 왕을 지낸 사람이다. 당시 이스라엘과 그리스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은 흔히 이중의 이름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사도 바오로 역시 이스라엘 문화권과 그리스 문화권에 살았기 때문에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과 그리스식 이름인 ‘바오로’라는 두 가지 이름을 지녔던 것이다. 우리는 바오로와 같은 경우를 신약성경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사도행전 15장 37절에 나오는 마르코(그리스식 이름)라고 하는 요한(히브리식 이름)이나 사도행전 15, 22의 바르사빠스(그리스식 이름)라고 하는 유다(히브리식 이름)가 있다. 사도행전 13장 9절 이후에 나오는 바오로의 이름이 그 이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된 것은 사도행전의 필자가 유다인들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히브리식 이름을 이방인을 위한 선교를 위해서는 그리스식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바오로의 이름을 두고 교회에서 ‘사울’은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기 전에 지녔던 이름이고 ‘바오로’는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한 후 얻은 이름이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아전인수 격인 해석에 불과하다. 가족 바오로는 가족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지만 자신이 쓴 편지 몇 군데에서 언급한 출신배경을 보면 독실한 유다인 정통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유다인의 종교 풍습(레위 12, 3)에 따라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으로서 벤야민 지파에 속했다고 한다(갈라 1, 13~14; 필리 3, 5~6; 2코린 11, 22; 로마 11, 1). 특히 바오로가 이방도시인 타르수스 출신으로 어려서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힐렐율사의 손자로 당대 최고의 율사였던 가말리엘 아래서 율법공부를 했다는 점을 볼 때(사도 22, 3; 26, 4), 그의 부모가 얼마나 독실한 유다교 신자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사도행전에 보면 바오로의 부모가 유다인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바오로는 태생 로마시민이었다는 사실이다(사도 16, 37~38; 22, 25~29; 23, 27). 당시 약 5천만 명쯤 되는 로마 제국의 백성들 가운데 로마 시민은 50만 명에 불과했다. 즉, 100명중 1명이 로마시민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바오로가 태생 로마 시민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부모가 매우 높은 수준의 부와 명망을 누렸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혼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집필하면서 “혼자 사는 이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1코린 7, 8)라고 말한다. 이 말만 보면 바오로는 이 편지를 쓸 때 ‘홀몸’이었음이 분명한데, 이는 결혼하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고 결혼했지만 상처했다는 말일 수도 있다. 또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9장 5절에 보면 “우리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케파처럼 신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라며 반문하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보면 바오로는 아내가 있었지만 복음 전파를 위해서 아내를 두고 다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7장 24절에 보면 바오로가 “형제여러분,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하느님과 함께 지내십시오”라는 충고를 코린토 교회에 한다. 이 말은 바오로가 원래 결혼을 한했거나 아니면 상처를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바오로가 원래 결혼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결혼했지만 상처했는지를 밝히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로서의 역할을 했을 때는 ‘홀몸’이었다는 사실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2월 24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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