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5) 안티오키아에 최초의 혼성교회 일으켜 우리는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사건을 개종이나 회개보다는 ‘소명’(召命), 곧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오로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박해자에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부르셔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사건 후에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형제여러분, 만일 내가 아직도 할례를 선포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박해를 받겠습니까?”(5, 11)라고 묻고 “겉으로만 좋게 보이려고 한 자들, 그자들이 여러분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려고 그리하는 것입니다”(6, 12)라고 단죄하였다. ‘할례’는 유다인들이 이방인들에 대하여 자신들의 민족적 특권을 지키기 위하여 요구했던 마지막 보루였는데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사건을 통하여 할례의 무익함을 깨닫고 그것을 과감히 철폐함으로써 그리스도교를 유다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한 세계적인 종교로 탈바꿈시키는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의 행적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사건 이후 다마스쿠스 교회를 방문하여 하나니아스를 만나 세례를 받고(22, 16) 유다 회당을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다고 한다(9, 20~22). 그후 바오로는 자신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곧장 아라비아(오늘날의 요르단 왕국)로 떠나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갈라 1, 16~17). 바오로가 아라비아로 간 목적은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그곳 사람들에게 선교를 하러 갔을 것이다. 다마스쿠스로 돌아온 바오로는 그곳에 거주하던 아라비아의 아레타스 임금의 총독이 자신을 붙잡으려 하자 광주리에 담겨 성벽에 난 창문으로 내려져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다(2코린 11, 32~ 33). 같은 내용이 사도행전 9장 23~ 25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서는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없애버리기로 공모하는 바람에 바구니에 실려 성벽에 난 구멍으로 탈출했다고 한다. 다마스쿠스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바오로는 예루살렘으로 상경해서 보름동안 케파와 야고보와 함께 지냈다(갈라 1, 18~19; 참조 사도 9, 26~31). 예루살렘 교회의 두 지도자인 케파와 야고보를 만난 후 바오로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가서 한동안(36~ 44년)선교했다(갈라 1, 19~24; 참조 사도 9, 30; 11, 25). 한편 33년경 스테파노 부제 순교 후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로 도망쳐 그곳에서 유다인과 이방인들에게 선교하여 매우 좋은 성과를 얻었다. 그리하여 안티오키아에 최초로 유다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는 혼성교회가 탄생했다. 예루살렘 사도들은 그 교회를 돌보기 위해서 키프로스 출신 바르나바(사도 4, 36~37)를 파견했는데, 바르나바는 타르수스에 머물고 있던 바오로를 데리고 안티오키아 교회로 가서 일 년 동안(44~45년) 안티오키아 교회를 돌보았다(사도 11, 19~26). 안티오키아 교회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당시 로마 제국에는 인구 50만이 넘는 도시가 세 곳이 있었다. 제국의 수도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였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유다땅이 아닌 이방 지역에 세워진 그리스도교 최초의 교회로 유다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인 혼성교회였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가 세 차례에 걸쳐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선교여행을 할 때 언제나 안티오키아 교회를 출발지와 도착지로 삼았다고 한다(13, 1~5; 14, 21~28; 15, 30~41; 18, 18~23). 예수를 믿지 않는 안티오키아 시민들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사도 11, 26). 위대한 성인 이냐시우스가 제3대 안티오키아 주교로 재직하다가 110년경 로마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티오키아에서 로마로 압송되어 순교했다. 이냐시우스 주교는 로마로 끌려가던 중에 주변에 있는 여섯 교회, 곧 에페소, 막네시아, 트랄레스, 로마, 필라델피아, 스미르나교회와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에게 편지 한 통씩을 써 보냈는데 이 편지들에는 세례, 성만찬, 교계제도와 같은 그리스도교의 기틀이 되는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가톨릭신문, 2008년 3월 16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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