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24) 주님과 공동체 위한 자유일 때 유익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신 많은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시험하고 우상숭배에 빠짐으로써 여호수아와 칼렙만을 제외하고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이집트 탈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탐내고(10, 6), 우상을 숭배하고(10, 7), 불륜을 저지르고(10, 8), 주님을 시험하고(10, 9) 하느님께 투덜거렸던 것이다(10, 10).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 교우들의 삶이 이와 같다고 경고했다. 바오로는 교우들이 신전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를 주님의 성찬과 비교하면서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0, 16. 17)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는다는 뜻이다. 성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친교요,그리스도인들 서로간의 친교라는 것이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그리스도인들끼리 하나 되는 잔치가 주님의 성찬이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우상숭배를 멀리하라고 하였다(10, 14). 신전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은 마귀들에게 바친 것이기 때문에 그 음식을 신전에서 먹는 것은 결국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이다(10, 19~20). 주님의 성찬에서 주님의 몸과 피에 동참한 교우들이 이교 신전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마귀들과 상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우들에게는 오직 주님의 식탁만이 있을 뿐이다. 바오로는 마귀들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으로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10, 22). 3) 교우들이 외교인들 가정에 초대받았을 때 신전에서 제사 지낸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 (10, 22~33) 코린토의 대범한 교우들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10, 23)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내세워 시장에서 내다 파는 제사 고기를 마음대로 먹었다. 바오로는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다”(10, 26)라는 구약 시편 24, 1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범한 교우들의 확신에 동의했다. 그리고 교우들이 외교인들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식탁에 오른 고기가 제사 지낸 고기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 먹으라고 했다(10, 27).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라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10, 28)라고 하였다. 식탁에 놓인 고기가 제사 지낸 고기라는 사실을 외교인에게서 들은 경우에 교우는 그 외교인의 양심을 생각해서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10, 29). 바오로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유익하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라고 하였다(10, 23. 24).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확신보다는 이웃사랑을 앞세워야 하며, 자신의 양심보다는 외교인의 양심을 존중함으로써 복음전파에 도움이 되도록 처신하라는 말씀이다(10, 32~33). 바오로는 사랑이 없는 지식을 경고했다. 사랑이 결여된 지식과 확신은 비록 그것이 양심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양심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면 공동체의 유익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웃을 배려하는 사랑이 결여된 지식과 확신은 이웃을 넘어뜨리고 결국 그리스도께 죄를 짓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공동체의 유익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는 자유일 때 유익한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방종인 것이다. 바오로는 8장 12절에서 두 번씩이나 “죄를 짓지 말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형제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바로 그들의 연약한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이는 결국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행위라고 하였다. 바오로는 1코린 8. 10장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 문제를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1, 1)라는 말로써 마무리했다. 바오로가 교우들더러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바오로 자신이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7월 27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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