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37) 사도직 부정하는 적대자들과 논쟁 코린토 후서에 등장하는 적대자들은 코린토 교회 내부의 사람들이 아니고 밖에서 들어온 유랑 선교사들이다(2코린 11, 4). 그들은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를 떠난 뒤에 코린토에 와서 선교한 이들로 추천서를 갖고 이곳저곳 옮겨 활동했다. 그들이 코린토에까지 와서 활발히 선교한 사실로 미루어 아마도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이다(2코린 11, 22~23). 적대자들은 바오로 사도와 같은 계열에 속했지만 코린토 교회에 와서는 크게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에 의해 세워졌고, 바오로는 교회를 떠난 후에도 편지를 써서 교회를 돌보았다. 따라서 바오로에 비해 인기가 떨어진 적대자들이 시기, 질투, 경쟁심 때문에 바오로의 사도직을 부인했던 것이다.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적대자들을 상대로 일대 논전을 펼치면서(2코린 10~13장) 자신의 과거 행적과 현재의 심정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바오로는 자신이 세우고 복음을 전한 교회에 엉뚱한 이들이 들어와서 온갖 모략과 중상으로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야말로 바오로의 사도관과 인간성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편지라 하겠다. 화해의 봉사자 : 2코린 2~7장 사도라 하면 으레 예수님의 12제자와 바오로를 생각한다. 본디 “제자”와 “사도”는 다른 개념이다. 이승의 예수를 따라 다니던 이들이 제자들이요, 부활한 예수를 뵙고 그분에게서 부활선포의 사명을 받은 이들이 사도들이다. 바오로는 역사적인, 예수에 의해 제자로 발탁되지 않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사도이다(갈라 1, 1 ; 1티모 1, 1). 사도로 부름을 받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 바오로는 자기 자신을 자랑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코린토 교회에 나타난 적대자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신의 출신(2코린 11, 22)과 능력(2코린 12, 1~6)을 자랑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 들어온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교 선교사들로부터 가짜 사도라는 비방을 받았다. 코린토 교회 신자들 대부분은 이들에게 동조하였고 특히 남자 신자 한 사람으로부터는 심한 모욕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오로는 화해편지(2코린 1~9장)에서 사도직을 언급했는데, 사도직은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직분인만큼 영광스럽지만(2, 14~4, 6) 반면에 사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고난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한다(4, 7~7, 4). 사도직이 영광스러운 직분임을 드러내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 2, 14 :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 ▲ 2, 16 :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향내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내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러한 일을 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 2, 17 :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장사하는 다른 많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실한 사람으로,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하느님 앞에서 또 그리스도 안에서 말합니다.” ▲ 3, 6 :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 3, 18 :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 4, 4·5 : “그들의 경우, 이 세상의 신이 불신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사도직이 고통스러운 직분임을 암시하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 4, 8·9 :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신문, 2008년 11월 9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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