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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44: 죄인이 하느님 자비로 ‘의인’으로 간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4 조회수3,029 추천수1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44) 죄인이 하느님 자비로 ‘의인’으로 간주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갈라 2, 16).

 

“여러분 가운데서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1코린 6, 11).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 30).

 

바오로가 문서상으로 ‘의화론’을 처음으로 언급한 곳은 갈라티아서 2장 15~21절이다. 바오로는 갈라 2, 15~21에서 유다교의 특정한 집단을 상대로 그리스도교 구원의 신앙을 옹호하고 관철시키기 위하여 의화론을 전개한 것이다. 의화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죄적 죽음을 보시고(로마 3, 25; 4, 25; 5, 9) 죄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심으로써 죄인들을 의롭게 하셨다는 것이다(로마 4, 7~8; 8, 33~34). 따라서 ‘의롭게 함’ ‘의롭게 하다’ ‘의롭게 되다’로 표현되는 의화론에 담긴 의미는 죄인이 하느님의 자비로 의인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 교리를 개신교에선 하느님 의로움의 전가설(轉嫁說)을 내세우고 의인론·인의론·칭의론이라 했고, 가톨릭에선 하느님 의로움의 주입설(住入說)을 내세우고 의화론·성의론이라고 했다. 즉, 개신교는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식으로 의화론을 풀이했고, 가톨릭은 하느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의롭게 만드신다는 식으로 풀이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바오로의 의화론을 서로 구분하여 달리 이해하는데 이는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무죄선언은 창조적인 힘을 지닌 말씀으로 따라서 하느님께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면 실제로 그는 의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6세기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후 가톨릭과 개신교는 상대방의 의화교리를 단죄한 후 한 500년 동안 싸움을 벌여왔다. 그러다가 1999년 10월 31일 오전에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에서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인 카시디(E. I. Cassidy) 추기경과 루터교 세계연맹의 크라우제(C. Kranse) 회장이 의화교리에 관한 합동선언문에 서명했다. 1518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제국의회에서 교황특사 카예타누스 추기경과 마르틴 루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그 자리에서 500여 년 만에 가톨릭과 루터교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광주대교구 김희중 주교님이 옮긴 합동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한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의화의 토대와 전제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죽음 그리고 부활이다. 그래서 육화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정의(Righteousness)가 되심을 뜻하며,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이 정의에 참여하게 된다. 우리의 어떠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수락되어,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된다. 곧, 죄인들로서 우리가 얻게 되는 새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선물로 부여하시고 공로로도 취득할 수 없는, 용서하고 새롭게 하는 자비의 덕임을 말해준다”(15~17항)

 

가톨릭과 루터교의 합동선언문이 의화교리에 대한 완전한 일치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두 교회가 처음으로 공식 인준한 문서라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본보기가 된다 하겠다.

 

[가톨릭신문, 2009년 1월 1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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