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47) 세례 통해 그리스도를 입다 그러나 비록 초대교회의 세례가 세례자 요한의 세례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그 영향은 외형적일 뿐 질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요한의 세례는 다가올 심판에 대비하여 회개를 강조한 일종의 대각성운동, 회개운동, 정풍운동이었다. 반면에 초대교회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표시, 즉 공동체에 들어오는 입교예식으로 수세자는 세례를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세례는 침수세례로 부세자가 수세자를 물속에 잠기게 함으로써 이루어졌다(마르 1, 9~11). 그리고 부세자는 수세자가 세례를 받기에 합당한 지를 참석한 증인들에게 물었다. 세례정식으로는 두 가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그리스도론적인 세례정식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는 삼위일체론적인 세례정식이 있었는데 그리스도론적인 세례정식이 더 오래되고 널리 사용되었다. 수세자는 신앙고백을 했는데 이때 “예수는 주님이시다”(로마 10, 9)라는 환성을 질렀다. 부세자는 수세자의 머리에 안수했는데(사도9, 17~19; 19, 6) 이는 성령강림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 결과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사도 2, 38; 19, 6~7).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부세자와 수세자의 관계다. 코린토전서 1장 10~17절에는 코린토 교회가 네 파로 분열된 내용이 실려 있다. 바오로는 코린토 교회가 분열된 원인이 세례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교우들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에 따라 파가 생기고 분열이 되었다는 것이다(1코린 1, 13~16). 바오로는 초대교회에서 행했던 세례의 의미를 갈라 3, 26~28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바오로는 로마 6, 1~11에서 세례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3~6절). 바오로는 로마서 6장에서 ‘세례론’의 신학을 전개한 것이 아니고 윤리적인 논증을 뒷받침하고 그릇된 세례관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세례론을 언급한 것이다. 바오로가 세례를 언급한 이유는 로마 교회의 일부 교우들이 가졌던 그릇된 세례관 때문이었다. 그들은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 20)라는 말씀을 곡해하여 “은총이 많아지도록 계속 죄 안에 머물러 있자”(로마 6, 1)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들은 세례를 구원의 표시로 보았기 때문에 한 번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구원문제는 해결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은총을 더 받기 위해서 죄를 짓자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바오로는 로마서 6장 1~11절에서 세례의 의미를 밝힌 것이다. 바오로에 의하면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상징행위라는 것이다. 바오로는 세례 때 수세자가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행위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풀이했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해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사셨던 삶을 살아야 하며 세례를 통해서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3,27) [가톨릭신문, 2009년 1월 18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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