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58) “율법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코린토후서에 나타난 적수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갈라티아 교회에 들어온 적수들에 대하여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오로의 적수들은 교회 밖의 적수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생겨난 적수들이었다. 이 적수들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는 바오로를 능가했고, 많은 추종자들을 얻기도 했다. 그들은 열광적으로 활동했으며 권위 있게 처신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도 다르지 않으리라고 주님 안에서 확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교란시키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5, 10)라고 바오로가 언급한 것을 보면 적수들이 상당한 권위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갈라티아 교회에 들어온 적수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지만 바오로가 2장 4절에서 지칭한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로 이방인 출신 교우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한 유다계 그리스도인 전도사들이라 하겠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 여러 곳에서 이 적수들을 언급했다(1, 7·9 4, 17 5, 2-3 10, 12 6, 12-13). 바오로가 갈라티아 지방에 여러 교회를 설립하고 떠난 후 적수들이 그 교회들을 방문하였는데 그때 그들은 “다른 복음”(1, 6-9)을 전하였다.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와 야고보와의 관계를 내세우며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에서 할례와 율법을 수용해야 하는 필요성을 부각시켰던 것이다(2, 4-5·11-14 4, 21-31). 적수들은 오직 할례를 통해서만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고 또 그로써 예수님을 통해 이룩된 메시아적 축복이 모든 민족에게 주어지리라는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고 주장했다(3, 1-29). 바오로는 적수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오로에게 있어서는 복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이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를 요구하는 자는 복음의 진리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2, 5·14). “그러나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2, 16). 바오로는 이러한 자신의 가르침을 아브라함의 경우(3, 6-29)와 하가르와 사라의 경우(4, 21-31)를 실례로 들어 입증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 갈라 4, 1-20 5, 1-15 그리스도교 신앙의 ‘마그나 카르타’라고 불리는 갈라티아서는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제도 · 관습 · 율법 등을 배격하고 오직 복음만을 신앙의 본질로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서간을 “혁명적인 문서”라고까지 했다. 그것은 그때까지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바오로 사도가 이를 뒤집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그 내용으로 하는 복음을 믿음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복음의 본질을 해방과 자유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살았던 진정한 자유인이다. 그래서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갈라 5, 1)라고 타이른다. 갈라티아서에는 ‘율법’이라는 낱말이 자주 사용된 것만큼 ‘자유’라는 낱말도 자주 나타난다. 신약성경에 41번 나오는 ‘자유’라는 낱말이 바오로 서간에만 28번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갈라티아서에만 11번 등장한다. ‘자유’ 라는 명사가 4번(2, 4 5, 1·13·13), ‘자유롭게 하다’ 동사가 1번(5, 1) 그리고 ‘자유로운’ 형용사와 ‘자유인’ 명사가 6번(3, 28 4, 22·23·26·30·31) 나온다.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12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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